내가 조지아에 있었을 때 -28.
여행객을 환영하는 도시라면 어디든, 그 중심지에서 특별한 역할을 수행하는 구역이 있다.
촌스러운 표지판으로 둘러싸여, 싸구려 기념품과 걸으면서 먹을 수 있는 음식을 파는 가게들이 주르륵 붙어있는 시내의 번화가. 전형적이고, 뻔하고, 바가지가 판을 치고, 촌스럽다고 하더라도 그 도시의 간판 그림이자 실제 관광 산업의 중심지. 도시에 살고 있는 시민들은 굳이 찾아가진 않지만 그들이 자국을 소개할 때 가장 먼저 대는 곳이며, 찾아오는 여행자 역시 그가 아무리 고즈넉한 산책을 좋아한다고 해도 그곳을 빼놓고 지나다닐 수는 없는, 그런 곳 말이다.
트빌리시의 경우 시오니 성당이 그렇다. 정확히 말하자면 성당 바깥의 반경 500미터 정도가, 트빌리시를 찾는 여행자들의 환상과 필요를 충족시켜 주기 위한 준비를 갖추고 있다.
먼저 조금 떨어진 리버티 광장에서부터, 시오니 성당으로 걸어가 보자.
리버티 광장 혹은 '자유 광장'은 쇼타 루스타벨리 대로의 시작점으로서, 관공서와 호텔, 명품 매장, 작은 공원과 관광버스 정류장이 모여있는 회전 교차로다. 분홍빛 줄무늬를 지닌 관공서 건물과 교차로의 가운데에는 멀리서도 빛나는 황금 동상, 그리고 항상 빙글빙글 돌고 있는 낡은 차들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여기에서 모퉁이에 커다란 던킨 도넛이 있는 골목으로 들어서면 환전소와 기념품점, 여행사 사무소, 과일 가게가 이어진다. 보도 바로 옆에는 머리 위에 근교 지역 광고판을 단 택시들이 한 줄로 서서 손님을 기다린다. 개들은 여기저기 늘어져서 잠을 자고 있다.
아이스크림이나 츄르츠헬라를 하나 사서 가로수 그늘이 진 울퉁불퉁한 도로를 조금 걸어가다 보면,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생긴다. 이쪽으로 내려가면 골목 양쪽으로 관광객들을 위한 사진 메뉴판과 테라스 좌석을 내놓은 식당이 가득하다. 하나같이 힌칼리나 하차푸리의 사진이 붙어있고, 밖에 나온 점원들이 자신들의 와인 저장고를 자랑하고 있다.
식당에서 좀 더 내려오면 이번엔 바닥과 벽에 펼쳐진 색색깔의 카펫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코카시안 카펫 갤러리'라는 카펫 전문점이다. 상당히 의외인 사실이지만, 조지아나 코카서스의 특산품 목록에서 카펫과 러그도 발견할 수 있다. 조지아산의 경우 주로 시그나기같은 동쪽의 카헤티 지역에서 만들어진다. (그래서 시그나기의 상점가에서는 카펫이 깃발처럼 펄럭인다!) 트빌리시는 카펫을 생산하진 않지만, 옛날부터 페르시아의 상인들이 와서 온천에 몸을 담그곤 했던 도시다. 그 과거를 이어받은 이 카펫 전문점은 빈티지 페르시안 카펫부터 조지아 국내에서 생산된 카펫과 러그, 안장 덮개 등을 판다.
가게 점원들은 지나가던 관광객들이 사진을 찍거나 뒤적거리며 살펴보는 것에 개의치 않는다. 그들은 호의적인 무관심에 가까운 태도를 취하고 있지만, 한번 말을 걸면 유창한 영어로 이것은 아제르바이잔산 카펫, 저것은 조지아의 카헤티 지역에서 장인이 직접 만든 것이라고 친절하게 가르쳐준다.
카펫에 문외한이더라도, 이 카펫 더미 사이에서 잠시 머물다 보면 이 카펫들이 각기 다른 고향에서 온 것임을 어렴풋이 알아챌 수 있다.
터키와 아제르바이잔산 카펫들은 '페르시아 카펫'하면 흔히 떠올리는 화려하고 복잡한 무늬가 많다. 모자이크 같은 다양한 색깔들과 부드러운 곡선이 그리는 공작새나 꽃 덩굴이 보는 이의 마음을 어지럽힌다.
한편 삼각형과 마름모로 이루어진 도트 아트 같은 문양은 대부분 조지아산 카펫이다. 그 단순한 모양과 발랄한 색깔은 페르시아의 것에 비하면 투박하지만 그 꾸미지 않은 솔직함이 보기 좋다. 그리고 여기에는 왠지 모르게 북쪽의 뉘앙스가 있다. 눈이 미처 따라가지 못할 정도로 꺾이고 얽힌 곡선으로 보는 사람을 사로잡아 만화경 속 세계로 끌어들이는 아라비아의 환상성보다는, 무뚝뚝하고 거칠지만 소박한 즐거움이 남아있는 북쪽 들판의 현실감.
그리고 유달리 자주색, 그러니까 잘 익은 포도색, 말하자면 와인의 색깔이 많다. 이 나라에는 정말 도처에 와인의 암시가 가득하다. 조지아 사람들의 피도 비슷한 색이 아닐까.
(아르메니아의 카펫은 기분 탓인지는 몰라도 좀 더 선명한 붉은색이다.)
널찍한 카펫은 수백 달러부터 시작하고 무게와 부피도 만만찮은지라 대부분의 관광객은 우물쭈물거리다가 만다. 나 역시 그렇게 가게를 떠났다. 하지만 지금도 두고두고 후회하고 있다. 올해 내 방 인테리어를 다시 하면서 카펫을 알아보았는데, 이젠 어떤 카펫이나 깔개를 보아도 성에 차지 않았다.
다음에 가면 꼭 작은 러그를 하나 사 와야지. 돌돌 말아서 캐리어 가방에 꼭꼭 넣어서.
한동안 발길을 잡아끄는 이 카펫 천국에서 고개를 들면, 드디어 시오니 성당의 단아한 상아색 옆모습이 보인다.
시오니 성당은 트빌리시의 다른 성당들처럼 정사각형의 작은 공터 한가운데 있다. 이 공터가 마치 결계 같은 역할을 하는지, 미사 시간이 아니면 성당 가까이에 스스럼없이 다가가는 사람은 많지 않다. 특히 관광객들은 대부분 밖에서 조금 기웃거리거나 멀찍이서 지켜볼 뿐이다.
이 작고 견고한 교회가 화려하고 위압적인 장식으로 가득한 높은 성당보다 훨씬 들어가기 힘든 것은 왜일까?
성당이 있는 공터로 내려가지 않고 쭉 직진하면 자갈이 깔린 조그만 광장이 나온다. 주말 오후가 되면 이곳에는 가벼운 목재 마차처럼 생긴 노점상들이 들어서서 꿀과 견과류, 각종 향신료, 와인을 판다. 플라스틱 컵 가득 담아주는 산딸기나 포도를 먹거나, 아이스크림, 아이스커피를 마실 수도 있다.
내가 있었을 때는 운이 좋게도 트빌리시의 가을 축제, '트빌소바' 기간이었다. 트빌소바의 주요 이벤트는 강 건너편인 리케 공원에서 진행되었지만 그 떠들썩한 기운이 넘쳐흘러 구시가지 곳곳을 알록달록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트빌리시 구시가지는 언제나 관광객들이 넘치는 거리지만, 사실 트빌리시에서 관광객이 많아 봤자 다른 번잡한 대도시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곳에서 보내는 늦은 오후는 느긋한 활기로 가득하다.
모자를 비뚜름하게 쓴 멋진 할아버지가 카페테라스에 앉아 커피를 마신다. 그 발치에는 커다랗고 새까만 개 한 마리가 노곤노곤하게 졸고 있다. 해가 지기 전부터 와인잔이 맞부딪히는 소리. 어디선가 또 노랫소리가 들린다. 가판대에서 시식한 야생꿀의 진한 뒷맛.
그리고 나는 낯익은 냄새에 발걸음을 멈췄다. 집으로부터 아주 먼 곳에서 맡은, 이 낯익은 냄새.
밤이다.
나는 여행지에서 언제나 같은 나라 사람들을 의식적으로 피해 다니곤 했다. 이곳까지 찾으러 온 나의 온전한 고독 - 자랑스러운 외로움, 단절된 자유를 빼앗아가는 듯한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군밤이라면 피할 이유가 없지. 아이스크림 트럭 앞에 한 아저씨가 커다란 가마솥을 두고 서 있었다. 나는 그에게 그 안의 내용물을 이미 알고 있으니, 한 봉지를 달라는 의사를 표했다. 아저씨는 잠시 한 손으로 나를 가로막더니 손가락을 세게 펴보였다.
3분만.
그 3분이 얼마나 길었는지! 내가 조바심이 나서 자꾸만 옆에서 기웃거리는 가운데 아저씨는 뚜껑을 열었다. 가마솥 뚜껑 아래에는 내 예상대로 군밤이 자글자글 가득했다. 아주 좋은 냄새가 났다.
나는 여기서나 저기서나, 여전히 노랗고 단단하고 달콤한 밤을 까먹으며 숙소로 돌아오는 길을 걸었다.
햇빛이 비스듬한 오후에서 하늘이 연보랏빛으로 가라앉고 알전구의 빛이 떠오르는 저녁 무렵엔 시오니 성당 앞은 웃음소리와 발소리, 와인잔이 부딪히고 포크와 나이프가 잘그락거리는 소리로 가득하다. 식당들이 테라스를 경쟁적으로 확장하는 바람에 서로 마주 본 식당들 사이의 통로는 아주 좁아서, 앞을 지나는 사람들은 서로 몸을 비틀고 지나가야 한다. 가끔 옷이 백팩에 걸려 낑낑대지만 그러다가도 눈이 마주치면 눈짓으로 인사를 나누며 기분이 상하지 않았다고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