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산타 유치원'(우에하라 유이코)
크리스마스트리의 계절입니다. 사람들이 모두 생김새가 다르듯, 트리도 비슷한 듯 저마다 모양, 형태, 색깔, 느낌이 모두 다릅니다. 매년 보는 트리인데도 늘 새로우면서, 트리가 전하는 감정은 비슷합니다. 한 끗 차이로 식상하다고 느껴질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이상하리만큼 그 한 끗 차이로 쉽게 넘어가진 않습니다. 추운 계절을 온화하게 데워주는 효과까지 주는 트리의 따스움에, 가짜인 걸 알면서도 진짜 나무인 듯 그 생명력이 전해져요.
쏟아지는 트리의 향연 속에서 가만히 트리 하나하나를 바라보았습니다. 그 앞에 잠깐 서 있는 동안만큼은 신비하리만큼 어떤 영상 속에 잠시 빠져든 것 같습니다. 어린 시절의 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던 마음들, 그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무분별하게 짜인 영상으로 잠시 재생됩니다. 그리고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포함한 12월은 어떤 시간들일까 상상의 나래를 펼쳐봅니다. 빠르고도 느리게, 돌아오고 다가올 크리스마스를 생각해 보며 저희 아이들의 최애 그림책을 이 감성 속으로 초대해 보겠습니다.
우에하라 유이코의 '산타 유치원'입니다. 산타 유치원의 단체 사진 같은 모습이 표지를 장식합니다. 자신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이, 일 년에 한 번만 볼 수 있는, 사실 못 볼 지도 모를 산타 할아버지와 함께 옹기종기 앉아있는 모습에 저희 아이들도 매료되었습니다. 우리에게는 낯설고도 먼 할아버지지만, 이 유치원 아이들과는 두터운 친밀감이 느껴져 부럽기도 합니다. 저런 유치원이 있다는 것을 몰랐을 때는 아무 생각이 없었을지라도, 이제 이 유치원이 있는 걸 알았으니 어떻게 하면 다닐 수 있을까, 괜한 궁리도 해 봅니다.
순록을 돌보고, 짜인 시간표에 따라 수업을 듣습니다. 내가 경험한 것과 비슷한 듯, 묘하게 새롭습니다. 어린 시절, 해리포터 시리즈를 보면서 느꼈던 신비로움과 동경이 함께 불타오르는 듯해요. 호그와트 마법학교의 학생이 되길 열망했던 그 기억과 구현된 상상의 세계가 손에 잡힐 듯 잡히지 않아 아쉬웠던 마음까지 떠올라 절절해집니다.
산타 할아버지를 도와 편지를 분류하고, 선물을 포장하는 작업까지 바쁜 하루를 보내는 아이들이에요. 유치원생들이 이렇게 정교하고도 섬세한 작업을 할 수 있다니, 그럼에도 고단해 보이기는커녕, 오히려 온화함만 가득한 아이들의 모습이 참 대단해 보여요. 산타유치원의 교육목표가 무엇일지 문득 생각해 보게 됩니다. 산타를 육성하는 곳일까, 그렇다면 단순히 선물을 전달하는 것을 뛰어넘은 인류애와 그에 걸맞은 인성, 품위를 갖춘 사람이 되는 것으로 키우는 곳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제가 기억하는 가장 설레는 시간입니다. 크리스마스 당일도 좋았지만, 저는 이브가 그렇게도 설렜습니다. 잠이 오지 않아 어렵게 잠들었는데 몇 번을 깼던 기억이 나요. 선물이 과연 있을까, 어떤 선물이 있을까, 한참을 뒤척였습니다. 열심히 하루를 보내고 누운 아이들은 세상 곤히 잠든 듯 하지만, 흐트러진 이불과 머리맡에 놓인 산타모자, 각자 침대에 걸린 양말들을 보니 누군가는 뜬 눈을 지새우고 있을 수도 있겠다 싶어요.
드디어 크리스마스 당일이 되었습니다. 다른 아이들을 위해 수많은 일을 봉사했을 아이들에게도 하나씩 선물이 들려 있습니다. 그리고 거대한 만찬을 위해 옹기종기 둘러앉았습니다. 사실 오랜 기다림과 설렘의 크기에 비하면 조금 허무하기도 합니다. 선물 받고, 맛있는 것 먹고, 끝. 그 이상 그 이하도 없이 고점을 향해 오르던 12월이 갑지가 뚝 하락합니다. 하지만 그 공허함과 남겨진 마음 때문에 설렘의 가치는 빛나는 듯합니다. 작은 선물을 받고, 함께 조금은 특별한 음식을 많이 먹는 날. 일상에서 '조금'의 향기를 가미한 하루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과 살아갈 힘을 주는지, 그 힘은 엄청납니다.
크리스마스로 들썩이는 나날들. 하지만 그 하루는 언제나 조용히 스쳐 지나가요. 그럼에도 우리가 여전히 이 계절을 기다리는 이유는 아마도 그 하루를 통해 과거와 미래가 동시에 내 마음을 두드리기 때문이 아닐까요. 올해의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설렘과 오래전 내 어린 시절의 따뜻한 기억들이 한 자리에서 만나 서로 인사하는 순간. 그것이 해마다 춥디 추운 휑한 겨울을 기다리는 이유, 그리운 산타유치원을 하나씩 마음속에 품고 사는 이유일 거예요.
트리 앞에서 몸을 옮기자 꿈에서 깬 듯 몽롱합니다. 어린 시절, 다가올 미래, 산타유치원 속 세계, 이 세 곳의 공간들을 넘나들며 사유하다 보니 옅은 미소 속에 노곤함이 얇게 깔립니다. 긴장이 풀리고 스르르 안온해집니다. 바짝 올라갔던 어깨가 느껴져서 의식적으로 힘을 풀어봅니다. 다가올 날들에 대한 마음이자, 이미 지나간 날들에 대한 그리움으로 가득한 이 감정들마저 내려놓아 봐요. 오늘도, 그리운 산타유치원을 향해 마음 한 조각을 띄우기에 좋은 바다를 만들고, 물길을 터 봅니다. 내가 만든 작은 물길 위에서 그 조각이 어디로 흘러갈지 지켜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따뜻한 저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