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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진 Aug 10. 2022

희귀병 환자가 되었다 2: 이게 도대체 무슨 병이람

발작성 야간헤모글로빈뇨증이 도대체 뭐람

 발작성 야간헤모글로빈뇨(Paroxysmal nocturnal haemoglobinuria [Marchiafava-Micheli]). 그게 나의 진단명이라고 했다. 처음 범혈구감소증상이 있음을 발견한 검사 이후 약 3주 만에 온갖 테스트를 다 해보고 나온 결과였다. 바쁜 대학병원의 짧은 면담 시간 동안에는 산정특례 대상자가 되었다는 것과 이후 치료 방향에 대한 안내만 간신히 받았으므로, 이것이 대체 무슨 요상한 병인지 알아내는 일은 집에 돌아온 나의 몫이었다.


발작성 야간헤모글로빈뇨증이 도대체 무슨 병이람?

   

 대부분의 정보는 질병관리청에서 운영하는 희귀 질환 헬프라인 사이트에서 얻을 수 있었다. 정의는 ‘적혈구가 용혈 되어 밤중에 검은 콜라색의 소변을 배뇨하는 질환’. 백만명당 15.9명에서 발생하고, 신체가 감염과 같은 스트레스 상황에 놓일 때 용혈이 발생하여 여러 종류의 혈구가 감소됨에 따라 피로, 창백함, 가쁜 호흡, 황달, 용혈성 빈혈, 범혈구감소증이 나타난다.


 살면서 백만명당 몇 명이라는 식의 확률 당첨을 꿈꿔본 적이 있으나 이런 식의 당첨은 아니었는데. 이 엄청난 확률의 주인공이 되게 해준 병의 원인은 그럼 도대체 뭐란 말이냐. 원인의 간단한 요약은 ‘적혈구 막단백인 glycosylphosphatidylinositol(GPI) 생성에 관여하는 PIGA(Phosphatidylinositol glycan class-A) 유전자의 돌연변이’였다. 그리고 자세한 설명은 다음과 같았다.

   

 비정상적인 줄기 세포가 스스로 복제하여 골수 세포 내에 PIGA 유전자의 돌연변이를 생성합니다. 이후 적혈구 안에서 변이 된 PIGA 유전자를 가진 세포가 성장하는데 이를 PNH 적혈구라고 부릅니다. PNH 적혈구가 보체계(complement system) 내의 정상 적혈구를 보호하고 있는 막단백을 손상시켜 정상 적혈구가 공격을 받게 되고, 이로 인해 발작성 야간헤모글로빈뇨가 발생합니다. 이러한 적혈구의 이상은 후천적이지만 조혈모세포 수준에서의 돌연변이에 의한 것이기 때문에 적혈구뿐만 아니라 과립구, 림프구, 혈소판과 이들 줄기세포에서 유래하는 전 혈구계에 영향을 미칩니다.   

  

 나름 생명공학을 전공한 지식을 총동원해보자면, 그러니까 단백질이라는 것은 유전자의 염기서열에 따라 복제되는 것인데, 그중에서도 적혈구의 막단백질의 염기서열이 되는 PIGA라는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겨서, 그렇게 변이 된 서열을 읽어 만들어진 단백질로 이루어진 PNH 적혈구가 몸 안에 생성되는데, 이놈이 돌연변이인 것도 모자라 정상 적혈구를 공격하기 때문에 적혈구 수치가 정상치 이하 수준까지 떨어졌다 이 말인 듯하다.

    

 이상의 내용만 보면 적혈구에만 이상이 있어야 할 것 같은데, 어째서 나의 혈소판 수치까지 그토록 낮은 것인가. 이 부분은 ‘OMIM - Online Mendelian Inheritance in Man’이라는 인간 유전자 및 유전 질환 온라인 카탈로그 사이트에 나와 있는 좀 더 자세한 PHN 적혈구 정보에서 얻을 수 있었다. PIGA 유전자는 단순히 적혈구의 막단백 생성에만 관여하는 것이 아닌, 적혈구, 백혈구(림프구 포함) 및 혈소판을 포함한 모든 조혈 줄기 세포의 생성에 영향을 끼친다고 한다. 즉 앞서 적혈구 막단백이라고 설명된 ‘glycosylphosphatidylinositol(GPI)’이 세포막 중에서도 수십 개의 단백질을 세포 표면에 부착시키는 지질 부분이고, 이 부분의 생합성에 필요한 단백질을 암호화하는 것이 PIGA 유전자인데 이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일어나니까, GPI를 고정하는 단백질이 결핍된 조혈모세포들이 생성되어 정상 조혈모세포의 수를 낮추는 것이다.



PNH 단백질의 생성과 그로 인한 정상 조혈모세포 파괴 과정 모식도. CD55와 CD59 단백질은 적혈구 세포막을 구성하는 단백질이다. 사진 출처는 맨 아래에.


 같은 사이트에서 얻은 또 다른 정보는, PNH와 재생 불량성 빈혈 사이의 연관성을 연구한 모 연구에 따르면, 재생 불량성 빈혈이 정상 조혈은 억제하지만 PNH 세포 클론은 이러한 억제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한다(오 마이 갓). 그러니까 나처럼 재생 불량성 빈혈을 동반한 발작성 야간헤모글로빈뇨의 환자는 정상 세포가 잘 만들어지지도 않는데 돌연변이에게 그나마 있는 정상 조혈모세포도 공격받고 있다는 말로 해석된다. 왜 적혈구와 혈소판 수치가 그토록 낮았는지 이제 잘 알겠다. 와중에 백혈구 수치는 정상인 것이 천만다행, 매우 감사한 일이었다.

     

 그 외에 임상적인 정보는 앞서 확인한 희귀 질환 헬프라인 사이트의 정보와 유사했다. 모든 연령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젊은 성인기에 진단되고, PNH를 가진 사람들은 감염이나 신체 활동과 같은 신체의 스트레스에 의해 용혈이 유발될 수 있으며 이러한 증상은 반복적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이로 인해 다양한 유형의 혈액 세포가 결핍됨으로써 피로, 쇠약, 비정상적으로 창백한 피부, 숨 가쁨, 심박수 증가와 같은 징후와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그리고 PNH가 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감염 및 비정상적인 혈액 응고(혈전증) 또는 출혈에 걸리기 쉬우며 백혈병 발병 위험이 증가한다고 한다.


 현재 나는 치료에 들어간 지 한 달여가 되었고, 일단 적혈구와 혈소판 수치를 올리기 위해 긴급 수혈을 받고 이후 약 2주 간 스테로이드제를 복용하였다. 그런데 혈색소 수치는 좀 올라왔지만 아직 정상 수치 아래고, 무엇보다 혈소판 수치가 계속 18000에서 20000 정도밖에 되지 않아(정상 최소치가 24000) 면역억제제를 함께 복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약물 처방, 즉 ‘사이클로스포린(CsA)’ 약제 치료는 재생 불량성 환자에게 가장 일반적으로 이뤄지는 치료 요법이라고 하고, 다만 나는 안타깝게도 차도가 크게 없어 또 다른 약물치료제인 ‘항흉선글로불린(antithymocyte globulin: ATG)’을 시도해보려고 하고 있다. 그런데 이 약물은 주사제이고 투여 경과를 지켜봐야 해서 일주일 정도 입원을 해야 한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 일단 사이클로스포린 약물을 복용하면서 입원 병실이 나기를 기다리고 있다.


무슨 이런 병에 다 걸렸을까. 이것이 지금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매주 한 편씩 제 투병기를 올리고 있습니다. 저도 처음 겪는 일이라 얼떨떨하고 조금 무섭기도 하지만, 일기로 기록해가며 이겨 내보고자 합니다. 다소 특수한 정보이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도 담겨 있습니다.



* 사진 출처: Sahin, Fahri & Comert Ozkan, Melda & Gokmen, Nihal & Yilmaz, Mumtaz & Oruc, Nevin & Gurgun, Alev & Kayikcioglu, Meral & Güler, Ayse & Gokcay, Figen & Bilgir, Ferda & Ceylan, Cengiz & Bilgir, Oktay & Sari, Ismail & Saydam, Guray. (2015). Multidisciplinary clinical management of paroxysmal nocturnal hemoglobinuria. American journal of blood research.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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