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 어디서부터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다. 난 그저 즉흥곡을 연주할 준비를 마친 어느 피아니스트처럼, 건반 앞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앉아 있을 뿐이다. 내 안에 어떤 건반이 건드려졌기에, 내가 이 글을 쓰려하는지 당최 알 수 없다. 몇 년 만에 다시 집어 든 한 책, 날 운명처럼 독서와 글쓰기의 길로 이끈 신비한 책의 첫 페이지를 펼쳤던 것이 원인이 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그 책은 10년 전 어떤 우연한 손길에 의해 내게로 왔다. 그 손길은 한 시골 교회 장로님의 손길이었는데, 대체 왜 그분은 교회 청소년 모임에서 그 책을 우리들에게 선물로 주셨는지 난 지금도 알 수 없다. 그 책을 받은 다섯 명의 아이들 중 나만 그 책을 완독 했다. 나만 글쓰기를 시작했다. 또 왜 내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운명을 바꾸려는 무례한, 그리고 근원부터 미련하기 그지없는 그 일을 하고 있는지는 정말 모를 일이다. 난 일의 시작부터 거슬러 올라가 보고자 한다. 하여, 이 일이 대체 내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지금 하려 하는 이 즉흥곡의 연주가, 특히나 그 내용적인 부분이 내 인생에서 어떤 의미를 차지하고 있는지 밝혀내려 한다. 그 일은 수수께끼를 푸는 것보다 신비스러운 일이 될 것이다. 인생이란 어느 때나 불가해하고, 또 인생의 어느 단편에서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아름다운 화음을 내기도 하는 법이니까. 파이프 오르간의 그것처럼 말이다.
아, 그곳은 젓갈 냄새가 흐르던 공장 옆 개천이 가끔은 우람한 소리를 내며 활기차게 굴러가는 곳이었다. 옥구슬 소리. 작은 꽃들이 부딪히는 소리. 그 활달한 냄새에 온갖 벌들이 침에서 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몰려드는 곳. 그곳에, 하얀 판자로 지어진 3층 예배당 건물이 있었고, 장의자들이 어둠 속에서 가지런히 도열해 있던 2층 본당에는 내가 있었다. 흐린 하늘의 빛이 은밀한 숲의 빛처럼 새어드는 창문 옆으로 머리를 감싸 쥔 채 그 모든 소리를 간직하고서 나는 앉아 있었다. 난 18살이었고, 그때가 내 새로운 시절이라면 시절이었을 것이다. 갑자기, 익숙하게 알고 있던 모든 세계로부터 동떨어져 이 세상의 경이를 다시 새롭게 하나씩 체험해야 했으니까. 그땐, 나는 무척이나 외로웠다. 시골로 이사 간 뒤, 전학 간 학교도 한 달 만에 자퇴했을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도 날 반겨주는 사람은 없었으니까. 교회 사람들은 새로 집에 온 동생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듯했다. 티 내지는 않았지만 나는 그런 움직임을 달갑게 여기지는 않았다. 부모님도 내게 힘이 되어 주지 않았다. 부모님은 새로 온 동생을 돌보기 바빴으니까. 난 말 그대로 방치되었다. 좁은 방에 처박혀서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일만이 내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책! 교회의 장로님이 선물해 줬던 그 책 말이다. 내가 독일 문학, 궁극적으로는 문학에 큰 관심을 가지도록 이끌어주었던 그 책 말이다. 솔직히 이 글을 적는 지금, 책의 내용도 자세히 기억나지 않을뿐더러, 책의 중점조차 말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기에 난 책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알은체 할 수 없다. 다만 상기할 만한 것은 그 책이 내 인생에 새로운 장을 열어주었다는 것이다. 아무튼, 난 책을 들고 언덕 위의 나무 아래로 가서 책을 자주 읽었다. 책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처럼. 꼭 그들처럼 책을 머리 위에 펼쳐놓고 잠자는 시늉도 해 보았다. 집에서 안 좋은 꼴을 보는 것보다야 밖에서 그렇게 하는 것이 백배 천배 나았다. 당시 나는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었다. 수능도 동시에 준비하고 있었다. 부산에 있는 국립 대학교에 가서 역사 교사가 되려 했다. 어린 시절부터 역사를 참 좋아했기 때문이다. 엄마는 없는 돈을 빚내 가며 수학 과외도 시키고, 나는 군말 없이 과외를 받았다. 그렇게 그때의 내게 있어서 독서와 공부는 그 비중을 엎치락뒤치락해 가며 나란 마차를 19살까지 이끌었다. 엄마는 그때까지도 내가 별다른 반항을 하지 않고 학창 시절을 마무리할 줄 알았고-고등학교를 자퇴한 것을 내버려 두고서 말이다-사람들의 큰 눈에도 그렇게 보였다. ‘목사님 집 장남은 자퇴하고 입시는 잘 돼가남?’ 이것이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였다. 내가 어떤 사람이건, 어떤 연약함과 감정을 가졌건, 어떤 관심사가 있건 그들에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다만 ‘제가 또 헛짓거리 하지 않고 무사히 대학에 가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다.’-그 일은 내가 5살 때부터 줄곧 있었던 일이었다-참 어리석은 제도이자, 어리석은 교육이었다. 지금도 대학 내 많은 실향민 문제를 안고 있는 문제를. 사람들은 10년 전에는 문제인 줄도 몰랐다. 더군다나 이곳은 시골이 아닌가. 거기다가 진짜 문제는, 내가 고3이 되고, 수능을 5달 정도 남겨두었을 때 발생했다. 내가 느닷없이 미술을 하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 나는 인터넷 강의를 듣는 시간에, 소설의 내용을 공책에 그리곤 했다. 공부를 하기에는 내 정신이 너무 산만한 탓이었다. 또 감정이 북받쳐 올라서, 나는 이 제도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 나가 새로운 대륙에 발을 디디고 싶어서, 이렇게 말하고 말았다. ‘나! 미술 할래요! 미술!’ 말의 대가는 참담했다. 그날 밤새도록 엄마와 심한 말다툼을 해야 했고, 나는 밤새 잠들지 못하고 내 운명을 저주했다. 시골에 처박혀서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집에서까지 큰 아들로서의 권한을 빼앗긴 나의 운명을 말이다. 그 목소리의 외침이 엄마에게 텔레파시로 닿은 것이었을까. 그다음 날 엄마는 내게 학원을 알아보러 가자고 말했다. 살아오면서 단 한 번도, 더욱이 이런 문제에 있어선 내 뜻대로 결정이 기운 적이 없었다. 그런데 엄마는 그 유보된 결정들을 모두 한꺼번에 해결해 내게 선물로 안겨주겠다는 듯한 태도로 말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
다음날, 우리는 30분에 한 대씩 오는 농어촌 버스를 40분 타고 가서 마산 합포동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내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되고, 운명적인 일들을 하게 될지는 나는 알지 못했다. 난 그날도 책을 품에 품고 버스에 올랐다. 버스가 25분쯤 가선, 차 유리창 사이로 사선의 누런 햇빛이 스며들었는데, 나도, 책의 페이지도, 차에 타고 있던 사람들의 일부도 누렇게 물들었다. 그 장면이, 낮은 갈색 벽돌, 흰 시멘트 건물들이 일렬로 서 있고 나무들도 그렇게 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마음에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었다. 앞으로, 약 2년간 지겹도록 볼 풍경인지도 모른 채. 또 나는 내가 유일하게 행복했던 시절을 생각해보고 있었다. 그 시절은 5살 때로, 나도 사람들과 관계가 좋고 부모님도 그러할 때였다. 그때 우리 가족은 마산 합포동 바로 옆동네인 장군동에 살고 있었다. 장군동 언덕배기 한 교회의 컨테이너 박스에서 우리 가족은 생활을 꾸려나갔다. 이후에 닥칠 환란들에 비하면 태풍 메미는 잠잠한 수준이었다. 나는 웬일인지 그 시절을 생각하며, 기묘한 느낌에 빠져있었다. 다시금, 행복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내 삶에 행복이 찾아올 수 있다는 느낌이었다. 엄마가 인터넷에서 알아보고서 찾아간 학원, 그 학원이 있는 건물의 3층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갔다. 나는 멀뚱히 엘리베이터 바깥으로 보이는 산동네를 쳐다봤다. 곧 우리는 3층에 도착했다. 원장 선생님은 좁은 사무실에 엄마와 나를 앉혀 놓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그는 나더러 상위 10퍼센트의 재능을 가졌다고 사탕발림 가득한 말들을 늘어놓았다. 그리고 디자인으로 시작해서 회화로 전과를 하면 된다며, 대학 제도에도 없는 말을 사실처럼 꾸며 말했다. 엄마와 나는, 얼른 대학에 가서 회화를 하고 싶었던 나는 그 기적의 말 한마디에 속아 넘어가서-엄마는 사람의 말을 잘 믿는 편이다-그 자리에서 학원을 등록했다. 사실 내가 미술을 하게 된 데에는 뒷얘기가 있었는데, 이 모든 일이 뜬금없이 하루아침에 이뤄진 일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생 때도 여러 번, 그리고 중학생, 고등학생 때도 한 번씩 나를 미술을 시키려 했다. 그때는 기회가 닿지 않아 하지 못했을 뿐이다. 아무튼 나는 학원을 다니게 되었고, 5층으로 올라가 아이들의 얼굴을 보았다. 아이들은 해맑은 흰 물고기들 같았다. 물 밖으로 나오기 직전의 가장 신선한 빛을 지닌 물고기들 말이다. 그들은 각자의 언어로 떠들고 있었고,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나를 쳐다봤다. 그중 한 여자아이와 눈을 마주쳤지만, 나는 얼른 눈을 내리깔았다. 내 얼굴은 그 순간 붉어졌다.
그 아이의 이름은 주희였다. 검은 단발머리에, 흰 바탕에 남색 카라 깃과 줄무늬가 있는 예쁜 교복을 입은 아이였다. 나는 맨 뒷자리에 앉아 그 아이를 힐끔힐끔 쳐다보았다. 그림을 그리다가도 쳐다보고, 책을 읽다가도 쳐다보았다. 쉬는 시간에 몇몇 아이들은 내가 있는 자리로 몰려왔고, 내가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고 기겁을 했다. 나는 그들의 말에 제대로 대꾸도 해주지 않았다. 모든 숨 쉬는 시간조차 아까울 정도로 독서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책을 삼키고 싶었다. 어느 가을날, 하늘에서 노란 은행 비가 내려온 거리가 은행잎으로 덮였을 때, 나는 아이들과 밥을 먹으러 가고 있었다. 아이들은 책만 읽는 내게 같이 밥을 먹으러 가자고 말해주었고, 나는 밥을 주문하면서도 책장을 넘기고 있었다. 그런 나를 주희는 유심히 봤다. 아이들이 떠들 때, 햇살이 반짝하면서 내 책장 위로 떨어졌고, 그 다음번에는 내 얼굴로 떨어졌다. 나는 손으로 눈을 가리면서 반대쪽을 우연히 쳐다보았는데, 멀찍이서 날 빤히 쳐다보는 주희의 고동색 눈동자를 볼 수 있었다. 두 사람의 눈동자는 한 직선 위에서 잠시 동안 머물렀고, 아이들은 계속 말하거나 웃고 있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