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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2

by 커피탄 리

그럼에도 나는 곧잘 쓸쓸해져서, 학원 앞거리를, 그 낙엽과 은행잎이 수북이 쌓인 거리를, 보행자선을 따라 어디까지고 걸어갔다. 늘 걸을 때에는 손에 시집을 들었던 것 같다. 시인이 될 것도 아니었는데, 걸으면서 시를 암기하고 낭송했다. 걸음은 홍등가를 지나, 여러 낡은 골목을 지나, 나를 어느 작은 항구의 등대로 이끌었다. 갈매기들이 등대로 가는 다리 난간에 일렬로 앉아 있는 곳, 거기서 점점 하얘져가는 푸른 바다를 쳐다보는 곳, 그곳으로 걸음은 나를 이끌고 갔다. 나는 주희를 생각했다. 그 아이가 내게 왜 말을 걸어주지 않는지. 왜 나를 쳐다보기만 했는지. 그것은 그저 내 착각이었는지. 유심히,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생각만으로는 답을 내릴 수 없어서 몹시 괴로워했다. 그럴수록 독서에 더 천착했다. 그 무렵쯤에는 괴테에 빠져 있었다. 괴테의 전집은 거의 다 읽었던 것 같다. 호머나 버질, 그리스 희, 비극의 선구자들의 연극도 열심히 읽었다. 그 책들이 내게 상상력과 감수성을 주었을지는 모르나 사랑은 주지 못했다. 내가 극작품을 열심히 읽으면 읽을수록, 현대의 사랑은 내게서 점점 멀어져 가는 것 같았다. 나는 아이들과 대화를 하면서, 내가 하는 이야기를 아이들이 알아들을 수 없고, 아이들이 하는 이야기를 내가 알아들을 수 없다는 점을 깨달았다. 세계의 본질에 점점 가까워질수록, 현대를 살아가는 세계의 구성원들과는 점점 멀어지는 것을 체감했다. 언어는 꼬이고 꼬여서 쓸 수 없게 된 전선처럼, 서로에게 와닿지 않는 한 쓸모가 없었다. 마치 18세기의 어휘를 구사하는 남자가 21세기의 여자의 손을 잡을 수 없듯이. 나와 주희는 꼭 그런 꼴이었다. 적어도 내게는 그런 것 같았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갔다. 수시 철이 다가왔다. 아이들은 수시에 6개 학교를 지원한 반면, 뒤늦게 시작한 나는 만만한 곳으로 4군데밖에 넣을 수 없었다. 우리 아버지는 나와 내 화구들을 차에 싣고 전국 구석구석으로 부지런히 차를 모셨다. 그러나 아들은 기대한 결과를 가져오지 못했다. 사실 고3 6월에 입시를 시작한 순간부터 재수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다른 친구들은 수시를 잘 본 아이들도 있었고, 그렇지 못한 아이들도 있었다. 주희는 그렇지 못한 축에 속했다. 그들은 수시 결과가 나올 때까지 조마조마하며 기다렸다. 주희는 서울권에 3군데나 학교를 지원했는데, 한 주에 3개가 다 나올 예정이었다. 수시 결과를 기다리면서도 아이들은 학원에 나왔는데, 정시를 준비하기 위해서였다. 정시는 수능을 치고 한참이 지난 1월까지도 이어졌기에, 아이들의 긴장감과 피로도가 배로 달하게 되는 싸움이었다. 그들은 정시의 압박 속에서 수능을 치렀다. 수도권에 있는 대학교에 가기 위해서, 정시에서 좋은 성적은 필수적이었다. 나는 그해 수능을 치지 못했다. 바보 같은 변명이지만, 학교도 안 다니고, 학원 아이들하고도 입시 정보를 공유하지 않은 채 혼자 시골에 있어서, 수능 신청 날짜를 놓친 것이었다. 나는 저절로 재수가 확정되었다. 당시 나는, 수능 제도는 바보 같은 짓이라고 단정했다. 혼자 동굴 속에 틀어박혀 책만 읽어서 뇌가 굳어버린 탓이었는지, 책과 사상과 내가 알고 있는 책 속 세계와 관계없거나, 그걸 모르는 것은 어리석음이라고 판단했다. 거리에서는 지나치게 문화와 사회를 비판했으며, 문화적 혁명을 일으키는 것이 사명이자 유일한 길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게, 수능은 뿌리부터 뽑아 바꿔야 할 첫 번째 악이었다. 나한테 그러한 분노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 분노는 나의 신세와 남들에 대한 깊은 열등감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자존심은 있었을지 모르나 자존감은 없었던 시절의, 책의 사고로 무장한 가짜 자존감을 들고 당당한 척 했으나, 당당하지 못했던 시절의 이야기였다. 여하튼 랬던 내가 수능을 달갑게 받아들인다는 것은 그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럼에도 대학에 가기 위해 수능이란 관문을 통과해야 했다. 그해 겨울에는 눈이 내렸다. 눈이 잘 오지 않는 지방에, 눈이 내렸다. 학원 아이들은, 눈 덮인 거리를 걸어서 학원 건물로 들어갔다. 그 틈바구니 속에 책을 손에 든 내가 있었다. 수능이 끝난 뒤, 우리는 더 붙어 다니며, 더 가까워져서 그림을 그렸다. 야구도 하고 목욕탕도 갔다. 밥도 먹었다. 물론 남자애들끼리였다. 그때는 그렇게 마음만 먹으면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더 복잡해지고 모든 것이 낯설어진 지금, 날마다 내뱉는 탄식이다. 주희는, 주희는 결국 정시를 준비해야 했다. 서울권 대학에서 수시가 다 떨어지고, 그 애는 울면서 학원 계단에 앉아 있었다. 나는 한 번도 다가가 보지 못한 그 애에게 용기를 내어 다가가 보았다. 무슨 말을 했더라? 굉장히 오글거리는 말을 했던 것 같다. 그 애를 위로한답시고 말이다. 내 말을 듣고 둘 다 얼굴이 빨개졌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위안이 그 애에게 힘이 되었던 것 같다. 그 뒤로 학원에서 그 애가 웃음을 찾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나는, 그 애가 회복되었다는 사실보다도, 그 애를 조금 더 알게 되고, 그 애에게 영향을 미친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주희는 서울에 꼭 가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서울로 갈 아이들은 그들끼리 묶여서 수업을 들었고, 주희는 토끼 같은 눈을 초롱초롱하게 뜨고 입시에 임했다. 거기에는 어떤 열정이 있었는데, 10년 가까이 지난 지금까지도, 내가 그 애를 생각할 때 떠오르는 열기다. 크리스마스도 우리 입시생들은 학원에서 보냈다. 학원 3층 로비에 있는 크리스마스트리에서는 빛이 반짝였다. 그러나 종이를 살 때 빼고는 갈 일이 없는 3층 로비에서 우리가 얻을 기쁨은 없었다. 크리스마스트리는 크리스마스트리일 뿐이었다. 우리들에게 전체적으로 깔려 있는 엷은 절망은, 성탄절은 우리와 상관없는 날로 보이게 했다. 해가 바뀌어 나는 5층 디자인 반에서 3층 회화 반으로 옮겨졌다. 재수를 할 거면 아예 회화에서 시작하자는 부모님과 나의 결정 때문이었다. 회화 반으로 가기 전에 원장님에게 물었다. “선생님, 지금 회화로 재수하면 서울대 갈 수 있나요?” 원장 선생님은 갈 수 있다고 대답하셨다. 나는 그 말을 덥석 물었고, 그걸로 부모님을 설득했다. 부모님은, 우리 가엾은 부모님은 입시를 열심히 준비할 것이라는 내 말에 속아 카드를 꽂으셨다. 그럼에도 나는 손에서 책을 놓지 않았다.
1월의 어느 날, 주희가 디자인 반에서 회화 반으로 날 찾아왔다. ‘감성 사냥꾼’이라는 별명으로 날 놀리면서 말이다. 그녀는 내가 회화 반에서 행복해 보인다는 말도 덧붙였다. 디자인 반에서는 늘 인상을 쓰고 책만 읽고 있었으니 말이다. 나는 그리던 그림을 멈추고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라보며 웃었다. 그녀는 날 잡아 이끌고 우리가 처음 말을 나눴던 계단으로 갔다. 계단은 유리창으로 둘러싸여 있었는데, 어두운 저녁 하늘에는 눈보라가 휘몰아치고 있었다. 5층 계단의 조명은 고장 난 듯이 깜빡거렸고, 바람이 계단을 밟고 마구 올라오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은, 밥을 먹으러 갔을 시간이었다. 우리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면서도 계단에 앉아 있었다. 어떤 말을 나눴는지, 웃기도 하고 눈물을 흘리기도 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리고 조명이 더 급하게 깜빡거리기 시작했을 때, 내가, 주희의 뺨에 입을 맞췄다. 그러자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주희가 고개를 돌려 내 입술에 입술을 댄 것이었다. 부드러웠다. 햇살을 받는 따뜻한 물결에 휩싸이는 것 같았다. 그러면서도 입술에서는 쌀쌀한 저녁 달 냄새가 났다. 이후 우리는 다시 만나지 않았다. 부끄러움 때문이었을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 해도 난 똑같은 선택들을 했을까? 일주일이 지난 뒤, 주희의 정시 합격 소식이 들려와 그녀는 가족과 친구와 환희의 품으로 돌아갔고, 어두운 한구석에 살던 나는 거기에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부터 내 진정한 재수시절이 시작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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