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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상-4

by 커피탄 리

분홍빛 구름처럼 내게 다가왔던 문학은, 해가 저물고 하늘이 남빛으로 변해가면서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난 대학에 갔다. 대학에서는 그림을 그리게 될 것이었다. 내가 있는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기 위해 문학을 내려놓았다. 하지만 주희를 그리워하는 마음은 내려놓을 수 없었다. 대학에서 벚꽃 비를 맞으면서도, 새롭게 알게 된 신입생들과 대화를 나누면서도 내 머릿속에는 주희에 관한 생각밖에 없었다. 주희는 세 번째 학기를 맞고 있겠지. 주희는 무얼 하고 있을까. 새로운 친구도 많이 사귀었겠지. 어쩌면 남자친구도. 재수를 준비하면서 휴대전화 번호를 다 지워버려 주희의 번호가 없었다. 그렇다고 가만히 있자니 죽을 것만 같았다. 아직 새벽 공기가 차가운 어느 봄날 아침, 나는 서울로 가는 버스를 탔다. 다짜고짜 오른 버스에서 내내 주희 생각을 했다. 하늘 위로 지나가는 구름들도 주희 같았고, 산에 언뜻언뜻 보이는 꽃들도 주희 같았다. 버스는 4시간 40분여를 달려 고속 터미널에 도착했다. 서울은 어릴 때 살았던 경험 빼놓고는 처음이었으므로,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사람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 많은 사람들이 터미널을 빠져나가 하나같이 택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점심을 대충 먹고, 얼른 주희의 학교가 있는 곳으로 갔다. 국민대학교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2시 20분쯤이었고, 몇몇 아이들이 학교를 빠져나오고 있었다. 학생들에게 묻고 물어 예술대학 건물이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주희가 언제 그곳을 오갈지 알 수 없으므로, 나는 그저 그 근처를 서성거려야 했다. 캠퍼스를 거니는 많은 커플들을 부러워하면서 학교 벤치에 앉아 있었다. 강아지풀 같은 것을 뜯어 입에 물고 뜯기도 하면서. 핸드폰으로는 할 것이 없었다. 급하게 집에서 나왔으므로 들고 온 책도 없었다. 시간을 마냥 보낼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고, 언제까지고 그렇게 기다려야 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그 시간에도 끝은 있었다. 머리를 위로 올려 상큼하게 묶은 주희가 내 앞을 지나기까지. 오랜만에 주희를 본 내 눈은 양옆으로 요동쳤고, 심장은 빠르게 뛰었다. 나는 주희의 손을 잡으려고 손을 내밀려했는데, 그 순간 내 몸은 석상처럼 굳고 말았다. 주희 옆에 웬 곰 같은 남자가 한 명 서 있었기 때문이다. 놀란 주희는 내 이름을 불렀지만, 나는 등을 보이고 도망치고 말았다. 그 길로 캠퍼스 정문을 벗어났다. 달리고 계속 달려서 근처에서 가장 번화한 곳까지 달렸다. 그때까지 내가 뭘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지 못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가로등에서 펄럭이는 한 전시회의 현수막을 보게 되었다. ‘렘브란트 특별전’이었다. 뭐라도 붙잡아야 했다. 세상에도, 내 자신에게도 애써 태연한 척해야 했다. 나는 누가 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호흡을 가다듬고 똑바로 걸었다. 전시회장에 도착했을 때, 내 심장은 전보다 안정되었다. 폐장하기 전인데도 사람들이 꽤 많이 보였다. 나는 거금 15000원을 내고 전시장 안으로 들어갔다. 화이트 박스는 어두침침한 공간 속에서 조명으로 꾸며져 있었다. 몇십 점의 그림들이 있었으나, 이상하게도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안쪽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주희의 놀란 모습이 자꾸만 아른거렸다. 그러나 내가 그 그림을 본 순간, 놀란 주희의 얼굴도 일시에 사라져 버렸다. 그 그림은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시므온>이었다. 루벤스의 그림을 보고 네로가 경외감을 느꼈던 것처럼, 나도 그 자리에 있는 벤치에 털썩 주저앉고 말았다. 난 그제야 깨달았다. 왜 내가 미술학과에 왔는지를. 나는 ‘그’를 위해서 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할 운명이었던 것이다.
다시 학교로 내려와서 최선을 다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교우 관계에도 신경을 썼다. 내가 잘 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진심으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길 원하는 마음에서였다. 그 사이 몇 번의 전시회를 학교에서 열게 되었고, 내 그림은 그때마다 극찬을 받았다. 나는 나도 모르는 형태를 그렸고 나도 알지 못하는 색채를 썼다. 그 형상들과 색채들은 내가 알지 못하는 사이 조합되었고 최적의 상을 만들어냈다. 그가 내 그림을 통해 그 자신을 드러내도록 날 도와주셨던 것이었다. 적어도, 그 시절을 회고해 보건대, 그랬다고 나는 믿는다. 3학년이 되던 해, 코로나가 시작되었다. 그 해 모든 대면 수업은 취소되었고, 미술과 학생들은 집에서 그림을 그려야 했다. 나는, 내게는 어떤 바람이 불었는지 몰라도 서울에 가고 싶었다. 서울에 가서 더 큰 물에서 그림을 그리고 싶었다. 그때는 학점도 우수했고, 그림 실력도 자신 있었기에. 또 책도 전처럼 읽지 않았고, 글도 쓰지 않았을뿐더러, 주희에 대한 생각에도 전처럼 빠져들지 않았기에. 내가 더 큰 곳으로 도약하기에 최적의 시기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최악의 수였다. 서울로 올라간 나는 2개월간, 처음 보는 룸메와 살다가 4가지 신경정신질환을 얻게 되었다. 머릿속에서 환청이 들렸다. 하루에도 수백 번이 들렸다. 병원에서는 강박장애라고 명명한 질병은 내게서 신앙의 끈을 끊어버렸다. 내 머릿속에 울리는 환청은 하나님을 모독하고 있었다. 하나님을 모독하는 자는 영원히 사하심을 얻지 못한다는 말을 성경에서 보아 알고 있는 내게는 최악이었다. 그 2달 사이에 아주 많은 일이 있었다. 그러나 그 일들을 서술하기에는 내 마음이 버티지 못할 정도이다. 주저앉다 못해 아예 바닥 밑 깊숙한 곳까지 파고들었다. 나는 멸망했다. 그 이후로 다시 떠도는 생활이 시작되었다. 신이 날 버렸다고 생각했다.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곧잘 젊음이 넘치는 거리에 가 있었다. 거기서 병나발을 불며, 절망 속에서 고개를 숙인 채 거리를 거닐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젊음이 부러웠다. 다른 사람들의 인생이 부러웠다. 나는 이제 끝이라고 생각하자, 천국 문턱에도 갈 수 없다고 생각하자 모든 것이 캄캄해졌다. 나는 ‘누구보다 하나님을 잘 섬겨왔다고 자부했는데, 그간 그렇게 많은 기도와 찬송과 감사를 드렸는데,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난 거지’하며, 내 출생을 저주했다. 머릿속에서는 여전히 하나님을 욕하는 소리가 들렸고, 머리에선 열이 났고, 머리를 때 버리고 싶었다. 의사 선생님은 내게 하고 싶은 일을 하라고 했다. 그 일이 마음을 편하게 해 주리라고 했다. 떠오르는 것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글을 쓰는 일, 그것이었다.
난 다시 글을 썼다. 그러나 내가 썼던 글을 10대 시절의 글과는 달랐다. 그때는 어두웠어도 맑음이 있었다. 내일이 있었고, 희망이 있었다. 23세 때의 내 글쓰기에는 절망만이 가득했다. 끝도, 탈출구도 없는 절망만 내 글과 글을 쓰는 마음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아, 그때 왜 홍 선생님을 생각할 수 없었을까. 그때 그가 있었더라면 내 친구가 되어 줄 수 있었을 텐데. 그때 왜 주희를 떠올리지 못했을까. 그때 주희를 떠올렸더라면,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를 얻을 수 있었을 텐데. 나는 술을 선택했고, 담배를 선택했다. 옛날에는 외로움과 고독을 몰아내기 위해서였더라면 그때는 술과 담배의 본질적인 면을 탐했다. 그리고 여자,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했으므로 쾌락을 자주 좇았다. 쾌락 중에서도 가장 말초적인 쾌락을. 나는 종종 여자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때마다 주희를 생각하며 흐느꼈다. 난 초라했고 비루했다. 첫사랑의 기쁨에 어린 송아지처럼 몸을 부르르 떨었던 눈 오던 날의 나를 생각하면, 그때의 나는 너무나도 초라했고 비참했다. 그 겨울날에도 눈이 내렸다. 어느 날, 나는 아버지가 운영하시는 다대포의 작은 교회로 갔다. 해가 질 무렵이었고, 겨울 찬바람이 거리를 휩쓸고 있었다. 눈이 오지 않는 지역이었으므로 눈은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내가 교회 문을 열려고 할 때, 싸라기눈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나는 눈을 무시하고 허름한 건물의 계단을 타고 3층까지 올라갔다. 아버지한테 받은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가 담요를 뒤집어쓰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속삭이듯이 말했다. “나는 당신을 잘 따랐다고 생각했는데,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그는 아무 대답도 없었다. 너무나도 화가 나고 답답해서 소리를 치며 기도했다. 마음이 조금은 해소되었어도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그때, 한 이미지가 떠올랐는데, 내가 시집을 들고 거닐던 시골 마을의 개천이었다. 다음날 당장 그리로 향했다. 겨울이어서 식물들은 생기를 잃고 서 있었다. 개천에는 물도 별로 없었다. 어둡게 붉은 해가 마을과 교량과 풀들과 하천을 물들이고 있었다. 나는 잠시 모든 것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말도, 생각도, 심지어 눈을 굴리는 일조차 하지 않았다. 눈물이 굴러 떨어졌다. 뺨을 쓸어가는 매서운 찬바람과 달리 아주 뜨거운 눈물이었다. 그날 저녁에 5년 만에 다시 성경을 펼쳤다. 아무렇게나 펼친 성경 말씀은 내게 어떤 한 구절을 보여주었다. 창세기 28장 15절이었다.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내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그리고 마음속에 한 줄기 음성이 들려왔다. “지금도 너와 함께 한다.” 나는 혼란스러웠다. 왜 그때 나타나시지 않고 지금 나타나셨는지, 알 수 없었다. 그 음성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 밖에는 길이 없음을 잘 알고 있었다. 신이 있다면, 정말 살아있는 전능한 신이 있다면, 그 신이 내게 내준 단 한 가지 길이라면, 무엇보다도 확실할 것이었으니까. 그날 이후 나는 날개를 다시 조금씩 펼쳐 나갔다. 날개가 없어서 날지 못했던 것이 아니라, 나는 방법을 잊어버렸고 또 날개가 있다는 사실을 잊고 있었기 때문이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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