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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모든 Apr 27. 2018

축소주의를 아시나요.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아.


자아가 형성될 무렵 문득 궁금해졌다. 죽는 순간이 왔을 때 내 인생은 무엇을 위해 존재했느냐고 질문을 받는다면 나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까. 대학을 나오고 전문직에 종사하기도 했지만, 십여 년이 지난 후에도 도무지 내 존재의 이유가 될 만한 답을 생각해낼 수가 없었다. 하지만 서른을 기점으로 떠난 영국 워킹홀리데이에서, 어느 날 우연히 닭고기 샌드위치를 먹다가 그 답을 찾게 되었다.      




이 냄새는 뭐지?     


닭고기 샌드위치에 함께 들어간 야채의 향으로 가려지지 않는 고기 누린내가 코를 자극했다. 차마 버리지는 못 해 다 먹기까지 몹시 힘들었다. 이 날이 시작이었다. 며칠 뒤에 돼지고기를 사다가 고추장 양념에 볶아먹었다. 이번에는 고추장으로 가릴 수 없는 돼지 누린내가 났다. 여태껏 아무렇지 않게 먹어왔던 것인데도 이상하게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텔레비전을 보고 식욕이 돋아서 소고기로 로스티드 비프를 해 먹었다. 이번에도 허브 향으로 가려지지 않는 고기 누린내가 나서 도저히 다 먹을 수가 없었다. 개인적인 취향의 문제로 고기를 멀리하고 싶은 충동이 처음 일어났던 때였다. 삼십 평생 맛있게 먹고 다녔음에도 불구하고. 하지만 생각해보면 그동안 한국에서도 고기 육수나 비계, 순대 등을 접할 때 느꼈던 미미한 그 맛이 유독 그 시기에 극대화돼서 느껴졌던 것 같다.      





대체 왜 그랬을까?     


조리를 잘 못해서 그런 것일까? 원래부터 고기는 향신료로 가릴 수 없는 기본적인 누린내를 갖고 있는 것일까? 고기의 품질이 안 좋아서였을까? 나이가 들어가며 내 입맛이 바뀌어서 그런 것일까? 나는 이러한 여러 가지 궁금증을 안고 육식문화에 대해 파고들기 시작했다.          





인류가 만든 최악의 대량생산 시스템, 축산업의 폐해      


일차적으로는 세계의 육고기 수요가 많아지며 가축이 대량 생산되면서, 고기의 품질이 저하될 수밖에 없는 대량 축산 시스템에 대해 알게 되었다. 평생을 좁디좁은 우리 안에서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항생제 가득한 사료를 먹으며 온갖 성인병에 걸려 잔인하게 도축되는 과정을 여태 모르고 살았던 것이 죄악처럼 느껴졌다. 그런 과정 속에 얼마나 병든 고기를 먹고 있었는지 알게 되었다. 그것이 그대로 내 몸을 이루리라는 것을 알지도 못한 채 먹어왔던 것이다.      


하지만 더욱 나를 경악하게 하는 현실은 이런 대량 생산되는 축산환경 자체가 지구를 심각하게 오염시키고 있다는 것이었다. 가축이 내뿜는 메탄가스는 대기를 오염시키고, 분뇨는 몇십 년이 지나도 회복되지 않도록 토양을 오염시킨다. 가축이 먹어치우는 곡식은 세계적으로 1/3을 차지하며, 인류에게 식량으로서 얻어지는 곡물의 양이 부족해지자 유전자 변형 식품인, 일명 GMO를 만들어 인간은 또 자신들의 건강을 위협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인간의 욕구 충족과 거대한 자본을 위해 존재하고 있고 지구를 파괴시키고 있었다. 고기의 누린내로 시작된 궁금증이 이제는 환경문제로까지 확장되었다.          





지구를 위하여       


인간이 자초한 환경오염에 대해 알아갈수록 내 마음의 불씨가 하나 일었다. 해가 갈수록 눈에 띄게 악화되는 기상변화를 피부로 느끼고, 플라스틱 섬이 생기는 등 병들어 가는 지구를 볼 때마다 환경을 위해 무언가를 해야만 한다는 사명감이 스멀스멀 올라왔다. 물론 규모가 큰 환경단체에 매달 얼마씩 기부하며, 환경을 위해 최소한은 하고 있다고 위안을 삼고 지낼 수 있다. 또, 매주 바다에 나가 쓰레기를 줍는 등의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도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매 순간순간의 생활습관을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노력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생활습관을 바꾸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의 현업은 간호사다. 쉽게는 생활습관만 바꾸면 치유될 수 있는 질병이 죽음의 문턱까지 가도록 악화되는 경우를 많이 보았다. (흔히 생활습관병이라고도 한다.) 이미 고착된 생활습관을 바꾸는 일은 어쩌면 다른 나라로 이민을 가는 일보다 어려울 것이다. 때문에, 자신의 가치관을 위해 식습관을 바꾸고 소비습관을 바꾸는 일은 그만큼 많은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중대한 결심이다. 하지만 결심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꾸준히 실천하는 일이고, 이를 위해서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범위 내에서 아주 작은 것부터 바꿔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나는 축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아직은 나조차 생소한 단어, ‘축소주의’는 단어가 주는 뉘앙스만큼 어렵거나 묵직한 주제는 아니다. 어쩌면 누구나 벌써 실행하고 있는 개념일 수도 있다. 축소주의는 영국인 브라이언 케이트만에 의해 처음 시작된 일종의 생활방식으로 고기, 해산물, 유제품 등 동물성 식품을 '적게' 먹는 운동이다. 동물성 식품이나 동물성 제품을 '일절' 사용하지 않는 완전 채식, 즉 비건의 '축소 버전'이라고 보면 된다.      

축소주의자(Reductarian)들은 한 명의 완벽한 채식주의자보다 열 명의 축소주의자들이 동물복지와 환경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이 더 크다고 믿는다. 완전하게 채식을 하지 않아도 일주일에 한 번 혹은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육식을 허용하며, 너무 가혹하게 자신을 옥죄이지 않는다면 죄책감 없이 충분히 동물복지와 환경에 기여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렇게 실용적인 태도의 채식 '위주'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세상은 더욱 쉽고 빠르게 친환경적인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오늘의 내가 할 수 있는 것부터 해보자.      


영국에서의 축소주의는 채식문화를 중심으로 시작되었지만, 축소주의는 다방면에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이루어져야 만 한다. 환경을 위해 플라스틱을 줄이는 노력은 할 수 있지만 도저히 채식만은 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지 않겠는가. 축소주의는 할 수 있는 분야에서 할 수 있는 범위만큼 환경에 해가 되는 것들을 줄이자는 생활방식이기 때문에 개인이 부담 없이 해나갈 수 있는 만큼만 노력하면 된다.      

축소주의와 유사한 개념으로 떠올리게 되는 미니멀 라이프도 축소주의에 속한다고 보면 된다. 미니멀 라이프는 일상생활에 꼭 필요한 물건으로 생활하는 라이프 스타일로 현대인들에게 비움의 미덕을 말하고 있으며, 미니멀 라이프를 실천하는 사람들은 인생에 있어서 본질적인 것에 집중하며 행복을 느낀다. 축소주의는 환경을 위한 윤리적인 사명감이 좀 더 내포되어 있고, 의식주 문화 및 환경에 관련된 다양한 분야로 그 생활방식이 확대될 수 있다.          





이 작은 내가, 이 지구를 위할 수 있다니  


서른 남짓, 어느 날 문득 고기 누린내에 대한 호기심에서 시작된 나의 축소주의는, 이 지구의 아주 작은 일원일 뿐인 내가, 지구를 위해 활동하며, 얼마나 긍정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지 희망을 품게 해주었다.

나는 워낙에 다방면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다. 환경문제는 서로 다른 여러 분야가 얽혀있다. 나는 그 하나하나의 문제에 모두 축소주의를 천천히 실천하고 싶고, 이미 있을 다른 축소주의자들과 삶의 이야기들을 공유하고 싶다. 나는 축소주의자이다. 환경을 위해 무언가 조금이라도 하고 있다면, 당신도 이미 축소주의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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