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생활에서의 축소주의 마무리
식단일기
지난 두 달 남짓, 축소주의에 관한 글을 쓰며 식단일기를 작성해왔다. 원래는 고기, 생선은 한 달에 두 번, 그리고 그 밖에 모든 동물성 식품을 축소해서 먹고 있는지 달력에 작성해보기로 했었는데, 웬걸! 하루 걸러 하루, 달력에 돼지코 모양과 생선 모양이 그려지고 있지 않은가. 그 꼴을 보아하니 부끄럽기 그지없었다. 고기던 생선이던, 한 달에 두 번이면 족하다고 생각해왔는데 나는 아직 내 초기의 다짐만큼 준비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동물성 식품은 첨가되어 있는 음식이 너무 많아 카운트하기 어려울 때가 많았다. 버터나 우유는 안 들어간 곳이 없었고, 하다못해 김치 하나를 먹더라도 멸치액젓이 포함되어 있다 보니 달력에 육식 및 어식 표시를 해야 하는지 애매한 상황에 놓이게 되어, 차라리 식단일기를 작성하여 내 식습관을 되돌아보는 시간을 갖기로 했다.
식단일기를 작성하다 보니 한눈에 얼마나 자주 무엇을 먹고 있는지 볼 수 있게 되었고 나의 새로운 목표와 의지를 다잡을 수 있었다. 애초에 계획했던 축소주의 플랜에서 내가 잘 지키고 있었던 것은 '집에서 고기를 조리하지 않기'였다. 남편과 나, 2인 가족인 우리는 평균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 내지 두 번 외식을 한다. 바꿔 말하면 5회나 6회는 집에서 저녁을 조리해먹고 있고, 그 메뉴에는 실질적인 육질을 포함한 음식은 거의 없다. 다만, 엄마가 보내주신 고기만두, 반찬으로 해 먹는 멸치나 아직 남아 있는 황태포 정도는 집밥 메뉴에 포함된다. 또한 라면과 같은 인스턴트는 가끔씩 먹고 있다.
회사 밥과 축소주의
채식 위주의 생활을 결심하며 가장 어렵고 애매할 때는 바로 회사에서의 점심식사와 동물성 식품을 가려먹어야 할 때이고, 이 부분들이 내 초기 축소주의 플랜을 무너트린 주범들이기도 하다. 초기에는 회사 식당에서 고기나 생선 반찬을 담지 않겠다고 자신 있게 선포했지만, 평균 김치포함 세 가지 정도의 반찬으로 나오는 회사 밥을 먹다 보니, 고기나 생선 및 동물성 식품을 제외한다면 정말 먹을 것은 밥 밖에 남지 않는 상황이 온다. 예를 들어, 닭볶음탕, 배추김치, 요구르트 드레싱 샐러드, 쌀밥, 부대찌개가 오늘의 메뉴라면 고기가 포함되어 있는 닭볶음탕과 부대찌개는 먹을 수가 없고, 또 유제품과 액젓 등의 동물성 식품이 포함되어 있는 샐러드나 김치까지도 먹을 수가 없어 결국 쌀밥만 먹게 되는 수가 있다.
물론 도시락을 싸가거나 집에 와서 점심을 해결하는 방법도 있지만, 일주일 내내 이 방법을 쓴다면 내가 느끼는 피로감과 스트레스는 더 커진다. 그리하여 점심 메뉴는 눈감아주기로 했다. 원래 부대찌개와 같은 정체불명의 햄이 들어있는 음식은 선호하지 않아서, 위와 같은 메뉴가 나온다면 찌개는 애초에 먹지 않아도 된다. 또 닭볶음탕을 담을 때도 고기는 딸려오는 만큼만, 메인으로는 감자나 야채 위주로 담는 요령을 부리기로 했다. 너무 '무'반찬 상태가 되지 않도록, 고기의 육질도 내 혀가 원하는 최소한으로만 축소하자는 유연한 입장을 갖기로 했다.
동물성 식품
동물성 식품을 가려먹는 것은 정말이지 쉬운 일이 아니다. 그것들을 포함한 식품은 미처 내가 신경을 쓰기도 전에 어디에나 널려있기 때문이다. 완벽해 보이는 채식 식단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꼭 한 두 가지 정도 고기의 흔적이 남겨져 있을 때가 있다. 예를 들면 정제 설탕 혹은 흰 설탕과 같은 조미료는 외식을 하게 되면 어디에나 들어갈 가능성이 있다. 정제 설탕은 언뜻 보면 육식도 채식도 아닌 중립의 위치를 지키고 있는, 그저 조미료로만 생각되지만, 사실은 하얀 색깔을 내기 위해 동물의 뼈가 사용된다고 한다. 물론 모든 정제 설탕이 그렇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런 설탕이 존재하기 때문에 모든 흰 설탕은 동물의 뼈를 포함할 가능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고, 이는 성분표에 표기되지 않는다. 회사 식당 등을 이용하므로 나도 하루에 한 번 꼴로 바깥 음식을 먹는 입장으로써 설탕에 포함된 그 동물의 뼈가 광우병이 걸려있지 않길 바랄 뿐이다.
동물성 식품은 어디에나 있다.
위에서도 언급한 김치에는 생선의 액젓이, 파스타 면에서는 달걀이, 와인과 맥주에도 제조과정에서 동물성 단백질이 쓰이고, 바질 페스토에서는 치즈가 감자튀김에서는 동물성 기름이 쓰인다. 간식으로 자주 먹는 과자나 아이스크림, 빵에서도 동물의 지방과 유제품이 빠짐없이 사용된다. 즉, 완전 채식인 비건들이 얼마나 대단한 의지로 살아가는지 박수를 쳐주고 싶다. 차라리 몰랐다면 마음은 편했을 텐데, 알게 되면 알게 될수록 현재의 나의 상황에서 동물성 식품을 피해 가는 것은 떨어지는 비를 한 방울도 맞지 않고 피해 가는 것과 비슷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느낌이 든다.
내가 축소주의자가 아닌 채식주의자로 살기로 다짐을 했다면 동물성 식품 때문에 좌절하는 때가 많이 왔을 것 같다. 토마토 파스타와 발사믹 소스 샐러드, 피클만 먹어도 채식을 한 느낌인데 파스타 면에 들어있는 달걀 때문에 완벽한 비건식을 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면 뭔가 패배자가 된 기분이 드는 것이다. 외식을 할 때 애써 샐러드를 골랐는데, 그 위에 치즈와 삶은 계란이 예쁘게 토핑 되어 있다면, 왠지 채식인 듯 채식 아닌 채식 같은 식사를 한 찜찜한 기분이 들 것이다. 참고로 나는 밥과 국을 더 선호하는 사람으로 샐러드를 외식메뉴로 정하기까지 참으로 대단한 결심이 필요한데 말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 나 자신에게 엄격해져서 치즈나 계란을 남기고 식사를 마친다면, 음식물 쓰레기를 생성함으로써 환경에 더 안 좋은 일을 하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기 때문에, 현재 나의 상황에서 동물성 식품을 완벽히 피해 가는 것은 어렵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피해가기 어렵지만 어떤 음식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알고 있는 것과 꾸준히 알아가는 것은 분명히 중요한 일이다. 아보카도나 바나나와 같은 식품은 동물성 식품은 아니지만 무분별한 환경파괴를 일으키며 재배되고 있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되면 채소나 과일이라고 할지라도 축소주의 플랜에 포함시켜 소비를 자제할 수 있다. 별거 아니라고 생각해왔던 첨가물이나 재료들이 환경과 건강에 악영향을 끼치고 있을 수도 있고, 개개인이 먹지 않음 혹은 축소하는 행위가 지구 환경에 생각보다 이로울 수 있다. 단지 동물성 식습관을 줄임으로써 나타나는 환경변화가 놀라울 수 있기에 비건식을 지향하지 않을 수 없어졌고, 비건 치즈와 비건 파스타, 비건 피넛버터와 아몬드 우유 등의 존재를 알게 되며 비건 옵션이 붙은 식품을 선택하여 소비할 수 있다. 국물을 우릴 땐 멸치를 빼고 다시마로만 육수를 만드는 것도, 미역만 넣은 미역국도 최근에 시도했는데 아주 만족한 결과를 얻었다. 이처럼 동물성 식품이 어디에 함유되어 있는지 인지만 하고 있어도, 요리를 하거나 외식을 할 때, 선택의 여지가 있다면 최대한 동물성 식품이 적게 들어간 옵션을 고를 수 있게 된다.
내 몸이 말해준다.
사실 먹고살기 힘든 하루를 보내고 스트레스가 쌓이다 보면 금요일이나 토요일 같은 날엔 맥주에 자극적인 안주를 곁들여 무작정 맛있는 것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때가 종종 있다. 그럴 때면 환경이나 건강에 대한 생각은 잠깐 덮어두고 '이 정도는 상관없지 않나'라는 생각을 한다. 그럴 때면 그저 원하는 대로 마음껏 먹고 마시고 잠이 들지만, 다음날 부어 있는 몸도 그렇고, 뾰루지가 난 피부도 그렇고, 기분도 그다지 좋지만은 않다. 몸과 마음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생활은 좋아하지 않는다고.
하지만 너무 좌절하지 말자. 반성이란 말로 자신을 몰아붙여 사기를 저하시키지 말자. 반성하는 대신 행복한 기분을 떠올려본다. 나는 가끔씩 가만히 앉거나 누워서 나 자신이 진짜로 좋아하고 행복을 느끼는 순간에 대해 생각해본다. 어떤 하루를 보냈을 때 정말로 행복한 기분이 드는지. 한 여름인 요즘, 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인 콩국수나 저수분 토마토 파스타를 먹고, 집 거실에서 요가를 한 뒤 시원하게 샤워를 하고 나와, 선풍기에 머리를 말리며 책을 읽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 그런 순간을 떠올렸다면 계속해서 그 행복한 마음에 집중한다. 그러다 보면, 어느새 그런 하루를 보내고 싶어 안달이 난 나 자신을 만나게 된다.
내 몸과 마음은 이런 생활을 원하는구나,
나 자신을 더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나는 환경을 위해 축소주의자가 되기로 결심했다.
평범한 직장인인 내가 생각해내고 할 수 있는 일이란, 매일매일 하는 '먹고 소비하고 배출하는 행위'가 환경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가는 것이었다. 매일의 생활습관을 조율하여 조금 더 친환경적인 삶을 살아간다면 의미있는 긍정적인 변화가 생길지도 모른다. 또 이러한 생각과 실천사항을 다른 사람들과도 공유한다면 내가 몰랐던 방법들을 배우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시작으로 식생활에서의 축소주의에 대해 공부하며 써 내려갔고, 놓치고 있었던 부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연재라는 것이 꾸준하기가 쉽지 않음을 배우게 되었으나, 그래도 나는 축소주의를 포기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미흡하고 더디더라도 계속 써 내려가야겠다. 나의 '먹고'에서의 축소주의는 여기서 마감하고 다음엔 '소비하고'에서의 축소주의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관심 갖고 읽어주시는 독자님들께 감사의 마음을 보내드리며 앞으로는 더욱 많은 생각과 방법들을 '공유'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