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식에 관한 축소주의 이야기
- 나는 소(beef)를 먹지 않아. 닭고기, 돼지고기는 아직 먹어. 단지 소고기는 전혀 먹지 않아.
그것이 그녀의 축소주의였다.
그때 나는 영국에서 만난 미국 친구, 메건의 집에서 저녁식사를 하고 있었다. 메건의 남자 친구 마르코는 이탈리아인이었는데, 고향집에서 공수한 올리브 오일과 토마토소스로 환상적인 맛의 볼로네제 파스타를 만들어주곤 했다. 마르코의 볼로네제 파스타는 돼지고기 소시지와 다진 소고기가 들어간 파스타로 한국에서 먹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감칠맛을 냈다. 살짝 고기 냄새가 거북하긴 했지만,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을 만큼 토마토소스가 훌륭했었다. 마르코는 친구들에게 볼로네제 파스타를 대접할 때면 소고기를 안 먹는 여자 친구를 위해 바질 페스토 파스타나 뇨끼를 함께 내어왔다. 그때 처음 먹어본 바질 페스토 파스타 맛의 신선한 충격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매건은 무교였다. 다른 고기는 먹지만 소고기 또는 돼지고기 등 특정 고기만 먹지 않는 사람들은 대부분 종교적인 이유에서 일 가능성이 크다. 이런 이유에서가 아닌, 매건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바로 유튜브에서 본 소에 관한 다큐멘터리였다고 한다.
- 육식 자체가 나쁘지만, 특히 소가 문제야. 소가 얼마나 환경을 오염시키는지 알게 되면 절대 소를 먹을 수가 없을걸
당시 나는 고기를 끊어야만 한다면 마지막으로 끊고 싶은 것이 바로 소고기일 정도로 소고기를 선호했었기 때문에, 그녀의 말을 대수롭지 않게 흘려들었다. 하지만 그 이후 소고기를 접할 때면 잔잔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궁금증이 소환되었고, 어느새 나는 유튜브를 검색하고 도서관을 오가고 있었다. 내게 큰 영향을 준 자료는 소에 관한 음모(Cowspiracy)라는 다큐멘터리와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이었고, 비로소 나는 메건의 의지를 이해할 수 있었다. 스테이크와 햄버거의 천국인 미국에서 온 메건이 웬만한 의지를 갖지 않는 한 소고기를 끊기가 어려웠을 텐데 말이다.
육식 인구와 가축의 증가
1만 년 전 이 지구에는 야생동물이 전체 개체의 99%를 차지했지만 1만 년 후인 오늘, 인간과 인간이 키우는 가축이 98%를 차지하고 있다. 그동안 다양한 종의 멸종을 해왔고 현재 멸종위기에 있으며 우리의 생태계는 이미 어지럽게 파괴되고 있다. 가까운 과거인 100년 전과 비교해도 지구의 인구는 대략 7배나 증가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경제가 발전하며 중산층이 증가하였고, 귀했던 고기에 대한 수요도 급증했다. 가축은 사람의 10배 이상, 급속도로 그 수가 늘어났고 매일매일 어마어마한 사료와 물을 흡수하고 있다. 급격히 늘어난 인구과, 사람들이 유독 선호하는 몇 가지 가축이 대량 생산되며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고 있다. 이를 버티다 못한 지구는 여러 가지 기후변화로 우리에게 도움의 신호를 보내고 있다.
브레이크를 밟지 못하겠으면,
속도를 줄이기라도 해야겠다.
식생활에서 '육식을 축소'해야 하는 이유는 크게 세 가지가 있다.
환경오염(대기오염, 수질오염, 토양오염)의 진행속도를 늦추는 것
자원 부족(맑은 공기, 깨끗한 물, 건강한 대지의 부족)을 막는 것
인간과 동물의 건강한 생태계를 지키는 것
공기
소는 원체 장내세균에 의해 메탄가스를 다른 동물보다 월등히 많이 내뿜는 동물이다. 동시에 소고기는 전 세계적으로 가장 인기가 높은 품목이기도 하다. 자동차보다 유독가스를 많이 내뿜는 소를 기하급수적인 숫자로 늘려 키우기 시작한 것은, 작정하고 대기를 오염시키려는 계략이 아니라면 그저 인간이 무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메탄가스란 이산화탄소보다 80배가 강력한 온실가스이며, 현재 전 세계의 온실가스의 18%는 축산업에 의한 것이다. 간단히 말해 세상의 모든 교통수단(차, 배, 비행기 기타 등등)에서 나오는 가스보다 소의 트림과 방귀에서 배출되는 메탄가스가 지구 대기에 86배나 더 해롭다는 뜻이다. 아무리 전기차와 하이브리드 차를 열심히 몰고 다녀도 우리가 하루에 고기 한 덩이를 먹는 이상, 들끓는 지구의 온도를 급격히 낮출 수는 없을 것이다.
호주에서는 메탄가스 배출을 줄이는 사료를 개발했다고 한다. 3NOP은 소의 장내세균이 메탄가스를 생성하는 것을 방해함으로써, 배출되는 메탄가스를 13% 줄였다고 한다. 게다가 체중은 더 늘리는 효과를 얻어 만족하는 생산자가 많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메탄가스를 줄이는 데 약간의 도움을 줄 뿐 적극적인 방법은 아닐뿐더러, 동물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인위적으로 막아, 동물을 그저 음식으로만 생각하는 인간의 잔인함도 엿보인다. 인간의 방귀가 대기에 해롭다 하여 장내 유산균을 모조리 없애버리는 주사가 있다면 과연 우리는 우리 자신과 자식들에게 그 주사를 투여할 수 있을까.
물
대한민국은 물 부족 국가. 한 번쯤은 들어본 말일 것이다. 물을 아끼는 방법으로는 샤워는 되도록 짧게 해야 하고, 양치할 땐 컵을 사용하며, 구두쇠들은 변기에 소변을 세 번쯤 모아 물을 내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모든 행동이 유의미하지만 좀 더 간단하고 효과적인 방법을 이야기해볼까 한다. 오늘 점심으로 먹고 싶었던 햄버거를 참고 먹지 않았다면 2,500리터의 물, 즉 두 달 치 샤워 분량의 물을 절약할 수 있다. 또, 가족 세 명이서 저녁식사로 소고기를 먹는 대신 채식을 한다면 9,500리터의 물, 즉 반년 동안 샤워하는 분량의 물을 아낄 수 있다.
고기 한 덩이에서 눈으로 목격되는 수분의 양은 얼마 되지 않더라도, 축산업은 수질의 오염과 담수 부족에 밀접한 관련이 있다. 수질오염은 물이 정화되는 시간보다 오염의 속도가 더 빠르므로 문제가 된다. 미국에 있는 가축들만으로도 1초에 53톤의 분뇨를 배출하며, 이는 강으로 바다로 흘러나간다. 또한 사람보다 그 수가 10배가 더 많은 가축이 마시는 물의 양과, 사료를 재배하기 위해 소모되는 농업용수의 양은 실로 어마어마하다. 이 지구 상에서 먹을 수 있는 물 가운데 30%가 가축을 키우기 위해 사용된다.
육식을 줄이는 것도
물을 아끼는 하나의 운동이 되어야 한다.
대지
1초에 53톤의 분뇨는 1년 이면 뉴욕, 도쿄, 파리를 비롯한 전 세계 주요 13개 도시를 모두 덮어버릴 수 있는 양이다. 방목가축들은 '똥 반, 땅 반'인 땅에서 병들어 죽은 동지들을 피해 유유히 풀을 뜯는다. 가축은 인간보다 130배 많은 분뇨를 배출하고, 분뇨가 배출한 질소로 인해 토양은 곤욕을 치르고 있다. 토양이 오염되는 것은 곧 건강한 토양의 부족으로 이어진다. 덩치 큰 소들이 발굽질을 하고 풀을 뜯었던 땅에는, 더 이상 풀이 자라지 않는다. 사막화가 된다는 뜻이다. 때문에 가축업에서는 매년 더 넓은 땅이 필요하게 된다.
땅은 가축을 키우는 데만 필요한 것이 아니다. 그 보다 훨씬 더 넓은 땅이 필요한 이유는 가축에 공급할 사료를 키우기 위해서이다. 지구 한 편에서는 10억 명의 인간이 굶어 죽고 있고, 한 편에서는 세계 곡물의 절반을 가축이 먹고 있다. 오로지 가축을 먹이기 위해 지구에서 사용할 수 있는 땅의 45%를 사용하고 있고, 아마존 산림지대의 91%가 이미 사라졌으며, 그 자리엔 사료 재배를 위한 목초지가 만들어졌다. 산림이 사라진다는 것은 생태계의 파괴뿐만이 아니라, 이산화탄소를 흡수하여 산소를 내뿜는 나무의 부족함을 의미하고, 이는 곧 또 대기오염으로 이어지는 사이클이 형성된다.
완전 채식자 한 명과 육식주의자 한 명을 비교할 때, 육식주의자는 가축과 가축이 먹을 사료를 키우기 위해 18배 더 넓은 땅이 필요하다.
혹시 이 지구는
육식주의자들이 살기엔
터무니없이 좁은 것은 아닐까.
건강
일상생활을 하다 보면 환경에 해로운 것을 알지라도 동물성 식품에 대한 욕구가 차오를 때가 많다. 그럴 때면 나는 나와 내 가족의 건강을 생각한다. 단백질은 식물만이 합성할 수 있고, 동물성 단백질은 식물성 단백질의 재활용일 뿐이다. 인간은 모든 영양소를 채식에서 얻을 수 있고, 육식에서 얻어지는 것은 콜레스테롤과 각종 질병일 뿐이다. 육고기는 고혈압, 당뇨와 같은 성인병이, 물고기는 방사능과 수은 걱정이, 유제품은 유방암, 호르몬 불균형, 그리고 알레르기와 같은 자가면역질환이 연관 지어 떠오른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식사할 때 동물성 식품을 입에 넣어 삼키는 일이 꺼려졌다. 왠지 발암물질을 먹는 기분이 드는 것은 그저 기분 탓이 아니라 팩트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물론 몇 초, 몇 분의 쾌락을 위해 일탈처럼 나도 고기를 즐길 때가 있다. 술, 담배가 몸에 안 좋은 걸 알면서도 하듯 말이다. 하지만 언젠가는 금연, 금주를 해야만 하는 것과 같은 마음으로, 나는 나만의 육식 축소주의 규칙을 정해놓았다.
축소주의
나는 모든 육식을 내 식단에서 축소하기로 했다. 나의 규칙은 이렇다.
집에서는 모든 육고기를 조리하지 않는다.
한 달에 달걀 한 팩(10개)을 넘게 사지 않는다.
소 우유는 전혀 사지 않고 두유나 오트밀, 견과류로 만든 우유를 산다.
물론 소 우유로 만든 요거트도 사지 않는다.
카페에서 소 우유가 들어간 라테를 마시지 않는다.
치즈는 필요시 6개월마다 한 덩이 산다.
회식이나 명절 때는 육식을 허용하되, 많이 섭취하지 않는다.
외식 시 되도록 채식으로 먹되, 어쩔 수 없이 동물성 제품(치즈, 멸치 국물 등)이 들어간 음식은 허용한다.
점심은 도시락을 싸가거나 집에 와서 해결한다. 가끔 가는 직원식당에서는 고기반찬을 담지 않는다.
육식 달력을 작성해 한 달에 육식을 두 번 이상 허용하지 않는다.
나의 규칙은 어떤 이에게는 엄격하게 보일 수도 있고, 완전 채식인 비건의 입장으로 볼 때는 꽤나 관대할 것이다. 나는 나의 채식 위주의 식생활을 잘 따라주는 남편과 살고 있고, 거의 매일 직접 요리를 해서 저녁을 차려먹고 있다. 이러한 나의 상황에 맞게 내가 작성한 것이니만큼, 이 정도의 수준이 많은 스트레스 없이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축소주의는 어느 정도는 허용하는 대신, 더 이상을 허용하지 않도록 나 자신과의 약속을 철저하게 지켜야 함도 의미한다.
다큐멘터리 '소에 관한 음모'에서 나오듯, 당신이 오늘 하루 완전 채식을 했다면, 물 4리터, 곡물 20킬로, 산림지 2.8제곱미터, 그리고 한 마리의 동물을 살린 것이다.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한, 더 많은 물과 곡물, 더 넓은 산림, 그리고 셀 수없이 많은 동물을 구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