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길의 마지막 아침이 시작되었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열리는 12시 미사를 참석하기 위해 이 날 만큼은 여유 부릴 틈 없이 일찍 출발해야 했다. 어둠이 가시지 않은 숲 속에서 우의를 뒤집어 쓰고 랜턴에 의지한 채 걸음을 옮겼다. 비가 제법 많이 내리는 날이었다. 함께 걷는 순례자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상기되어 있었다. 생장피에드포르에서 마주했던 역력한 긴장감이 다시금 공기를 감싸고 있었다. 모든 길이 끝내 끝나는 순간을 곧 맞이해야 했으니 누구라도 그 설명하기 어려운 감정 앞에서 아무렇지 않을 수 없을 터였다.
우리는 평소처럼 걸었다. 시덥잖은 농담을 나누고 길가에 핀 꽃들에 감탄하면서. 그 날의 20킬로미터는 평소보다 길게 느껴지긴 했지만 평소처럼 걷는 것 외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산티아고의 흔적들이 하나 둘씩 나타났지만 실감이 나지 않아서였을까, 생각보다 아무렇지 않았다. 숱하게 지나쳐 온 길 위의 수많은 도시와 마을을 처음 마주했을 때처럼, 그동안 그래왔듯, 천천히 모습을 드러내는 스페인 서북부의 안개 낀 마지막 도시의 품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
비 오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마침내 도착했다.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의 대성당 앞.
길의 끝.
내가 그 곳에 서 있다는 사실이 어딘가 모르게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그 순간을 수백 번도 넘게 상상했었기 때문이리라. 34일간 걸어 온 800킬로미터의 길이 끝났다는 사실은 애팔래치아 트레일의 종점에 도착했던 로버트 무어의 말처럼 김이 다 빠진 따뜻한 샴페인을 마시는 기분이었다. 우중충한 날씨 속 생경한 곳에서 바라본 길의 마지막 모습은 대미를 장식하는 피날레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론 뒤숭숭하고 어정쩡한 모양새였다. 한 달이 넘도록 걸어 온 수많은 길들이 순식간에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린 것 같았다. 이제 더 이상 노란 화살표도, 비석도, 표지판도 보이지 않았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는 것일까? 더 이상 걷지 않아도 되는 것일까? 기쁘지도 않고 슬프지도 않은 밋밋한 감정 위로 하나의 생각만이 머리에 남아 맴돌았다.
왔구나. 결국.
각자의 소임을 다한 수많은 순례자들이 대성당 앞의 광장을 채우고 있었다. 배낭을 깔고 드러누운 순례자들, 춤을 추는 순례자들, 사진을 남기는 순례자들, 헹가래를 주고 받는 순례자들. '별들의 들판'이라는 뜻을 가진 이 도시의 이름처럼 그들의 모습이 꼭 하나의 빛나는 별처럼 느껴졌다. 그 사이로 여섯갈래길 모두의 반가운 얼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었다. 설명하기 어려운 모든 감정을 풀어 줄 단 하나의 방법은 나와 함께 걸어주었던 이들에게 수고했다고 말해주는 것 뿐이었다. 우리는 다같이 비를 피해 대성당 맞은 편 건물의 아래에 들어가 바닥에 주저앉아 한참이나 성당을 바라보았다.
함께 해준 모든 이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산티아고에 막 도착했다는 설익은 감정이 정리되기도 전에 마지막 향연이 시작되었다. 여섯갈래길은 감사하게도 유중호가 늘 그래주었듯, 그가 미리 예약해 둔 ‘그린 하우스’라는 이름의 숙소로 이동했다. 레온에서 휴가를 보냈을 때처럼 에어비앤비를 통해 묵게 된 곳. 새하얀 인테리어에 진녹색 화분, 연두색 쿠션, 청록색 향초처럼 군데군데 녹색 계열 색상이 점점이 묻어있고 작은 나무들이 싱그럽게 심어져 있는 작은 테라스까지 딸린 아늑하고 예쁜 숙소였다. 만찬이 시작된 저녁시간, 우리 모두는 식탁에 다같이 둘러앉아 따뜻한 음식과 시원한 맥주에 취한 채로 류성민이 트리아카스텔라에서 불러주었던 가수 신문희의 〈아름다운 나라〉라는 노래를 따라 불렀다. 산티아고를 일주일 남긴 시점, 모두를 숙연하게 동시에 환희로 가득 차게 만들어주었던 노래. 까미노에게 바치는, 그 길을 걷고 있는 모든 순례자들에게 바치는 아름다운 헌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