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슬플 땐 바빠보자
고운 파스텔톤 새 노트를 펼쳐서 올해를 돌아보고 다가올 새해를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끄적거리며 토요일 저녁을 보냈다.
와인은 한 번에 두 잔 이상 마시지 않기로 한 다짐은 참 훌륭한 경계다. 금요일, 토요일 저녁을 낭비하지 않고 보낼 수 있는 건 모두 '적당한' 와인 덕이다.
이 다이어리의 지침에 따라 올 한 해 하이라이트 10가지를 꼽아 보았다.
이혼 결심과 심리적 독립의 시작
남편 구속 이후에도 살아남은 것
야쿠시마, 시드니 홀로 여행 성공
정서적 허기 인식 & 관계 패턴 교정의 시작
운동 생활화로 체지방률 13%까지 몸만들기 성공
꾸준한 글쓰기로 나에 대한 이해, 서사로 삶 구조화
인스타그램으로 세상과 소통 시작
취향 탐색 & 나만의 라이프스타일 구축
정착하고 싶은 교회 발견
업무 리더십 재정립 및 사업 성과
인생은 참 아이러니하다.
내 인생 최악의 한 해라고 어림짐작 했었는데, 그 어느 때보다 알찬 결실이 있었다.
그전엔 항상 짝꿍이 옆에 있어 외롭진 않았지만 향이 나지 않는 꽃처럼 인생에 메마름이 있었다.
주변의 소음이 꺼지고 관심을 외부가 아닌 내면에 두니 '나'와 참 친밀해졌다.
'나'에 대한 이해와 탐색, 스스로에 대한 믿음과 도전을 통한 확신, 더 나아가 자아실현을 위한 변화들로,
내 인생에 한 송이 꽃이 작지만 수줍은 봉우리를 틔우고 미약하나마 향기를 발산하는 느낌이다.
개인적인 삶의 루틴이 정립되고 목적성을 분명히 하는데 큰 의미가 있었다고 생각하는 한편, 돌아보니 회사에서도 한 걸음 진보가 있었다.
내가 총괄로 맡은 작년 사업의 평가가 근 몇 년간의 부진을 딛고 상위권을 차지한 것이다. 이 사업에 함께한 지 3년만, 이 사업의 총괄을 맡은 지 10개월 만의 성과다. 스스로 인정과 칭찬에 인색한 편인데, 참 잘했다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싶다.
성과와 더불어, 4인이 한 팀으로 함께 하는 이 사업의 총괄을 올해 초부터 새로 맡았는데, 후배들을 리드하고 사람을 관리하는 리더십 부분도 문제없이 해나가고 있어 다행이다.
내가 총괄을 맡은 후, 사업이 예년보다 더 안정화되고 있어 그것 또한 기쁘다.
지금 이렇게 담담하게 미소 지으며 '잘했다'라고 얘기할 수 있기까지 영혼을 일에 갈아 넣는 시간이 있었음이 떠오른다. 공교롭게도 그때는 남편이 구속되고 그의 이중생활이 까발려진 올해 2~3월이었다.
계약직 직원의 근로기간이 하필 2월 초에 만료되어, 가장 바쁜 2~3월에 일할 사람이 나와 후배 1명밖에 없었다. 2명이 4명의 몫을 감당하는 두 달 동안, 업무를 크로스 체크할 여력도 없이 두 명이 각자 맡은 일에만 몰두하고 내달렸다. 이해관계자가 많은 이 사업은 민감한 업무가 하필 그 시기에 다 몰려 있었는데 자정이 다 되도록 야근하고 집에 오면 개인적 비극을 슬퍼할 새도 없이 곯아떨어졌다.
회사에서는 화장실도 뛰어서 다녀올 정도여서 업무 시간 중에는 남편으로 인한 배신감이나 수치심, 슬픔에 골몰할 새가 전혀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주말이면 드라마 '폭싹 속았수다'를 틀고 밀린 슬픔을 소화하곤 했다.
업무 폭풍과 밀린 출장이 끝나고, 일하는 중에도 티타임을 가질 수 있게 된 건 지난달부터다. 나는 이제 내년과 향후 5년 내 인생을 그려볼 수 있을 정도의 안정감을 가지게 되었다.
시간의 여유가 많으면 대개 생각은 과거에 대한 후회나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흐르고,
이 생각들이 깊이를 가지게 되면 자기 연민과 우울에 빠지기 십상이다.
내 인생 최악의 사건에
최고의 신경안정제인 '노동'이라는 약처방으로
응급치료가 된 느낌이다.
해도 해도 할 일이 쌓여 있어 말이 없어지고 반복된 야근으로 내 존재가 회사에 흡수되는 것 같은 시기였지만, 지나고 보니 이 또한 참 감사한 일이다.
죽을 것 같을 때 하는 1~2개의 근력운동이 근육의 몸집을 키우듯, 내 업무역량도 조금은 몸집이 커진 기분도 드니 말이다.
돌아보면, 노동은 나를 지치게도 했지만 동시에 살려내기도 했다.
무너져 내릴 것만 같던 시간을 버티게 한 건 위로의 말도, 상황의 변화도 아니었다.
그저 오늘 해야 할 일을 묵묵히 해낸 나 자신이었다.
삶이 예상치 못한 폭풍을 몰고 올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해야 할 일'을 해내고 줄을 긋는 것.
적응의 동물이기에 이쯤 와서 드는 생각.
"내년엔 올해만큼 바쁘진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