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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편의 행복, 나만의 파티

크리스마스를 준비하며

by 제이린 Jayleen

오늘 아침 우연히 들은 라디오에서 크리스마스 캐롤 인기순위에 대한 소개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언젠가부터 캐롤이 거리에서 사라지고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장식도 드물어진 탓에 연말인 것을 완전히 잊고 있었다. 그제서야 크리스마스가 한 달 앞으로 다가왔다는 걸 깨달았다.


모든 세상이 한 마음으로 벌이는 파티는 크리스마스가 유일하지 않을까. 가족끼리, 연인끼리, 때로는 소외받는 이웃과 함께 사랑을 전하고 나누는 축제 말이다.






한 달 전쯤, 친구와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 날에 대해 얘기를 하다 한숨을 푹 내쉰 적이 있다.


"크리스마스랑 1월 1일은 공휴일인데, 난 대체 뭘 하냐?"


친구는 가족끼리 특별히 할 게 없으면 새해 첫날 일출을 보러 가자고 했다. 내 상황을 알고 있던 그녀가 귀한 시간을 내주려는 것 같았다.


친구의 시간을 방해하는 건 아닐까 조심스러웠지만, 모두가 따뜻하게 보내는 그 휴일에 함께할 누군가가 생긴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부풀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혼자겠지, 하는 생각에 약간은 씁쓸하긴 했지만.






그런데 가라앉았던 크리스마스에 대한 기분이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작년에 크리스마스 트리를 어디에 정리해뒀는지 기억을 되짚어보고 있는 나를 발견했다.


'이번 크리스마스에는 트리를 은은하게 켜두고, 내가 좋아하는 산미 있는 화이트 와인에 가리비와 아스파라거스 구이, 으깬 감자와 치즈가 어떨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크리스마스는 아직 넘지 못할 산이었는데, 어느새 나만의 파티를 상상하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기쁨도, 슬픔도 적응하는 인간의 능력은 얼마나 놀라운가!




'생각이 난 김에 오늘 트리를 설치하고 말리라'


그렇게 두 시간이 넘도록 꼬박 트리를 설치하고 니서야 허리를 펼 수 있었다. 별다른 장식이 없이 은은한 전구불만 가득한 지극히 내 취향의 트리.





작년에 남편과 조카가 목장갑을 끼고 전구선을 길게 늘어뜨리며 트리를 설치하던 모습이 얼핏 떠올랐다. 참 다행인 건, 이제 그 기억이 추억이 아닌 기억에 불과해서 내 트리의 정체성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하루를 마무리 하고 소파에 앉으면, 이 트리는 올해도 별반 다를 것 없이 따뜻한 겨울이라고 일깨워줄 것이다.

그 은은하고 따스한 노란 불빛으로 고생 많았던 올해에 대해 긍정적으로 추억하도록 도와줄 것이고,

정성껏 요리해서 느긋하게 즐기는 나만의 만찬에 감성의 촉매가 되어줄 것이다.





모두가 즐거워하고 기다리는 그 휴일을 이제 나도 기다린다.


'정상'에서 벗어났다는 느낌은 이제 내게 없다. 그 누구의 기대를 충족시킬 필요 없이 진짜 내가 원하는대로 시간을 누리는 것이, 누군가와 함께 하는 시간만큼 행복한 일이 되었다.


마음에 드는 내 자신과 함께 하는 그 시간이 진정한 해방감을 준다.



굳이 1월 1일도 친구와 함께 해야 할까 싶다. 친구는 친구 가족들에게 양보하고, 나는 짧게라도 국내 여행을 가볼까 한다. 연말 성과급이 나오면 항상 달려갔던 아울렛 말고, 내가 제일 좋아하는 나와 함께 하는 시간을 선물하고 싶다.


넓은 세계 일부를 조금이라도 더 탐색하고, 맛있는 음식도 조금 더 맛보면서,

잘 살고 있다는 확신을 얻는 그런 시간 말이다.



손을 잡고 걷는 내 또래 단란한 가족, 레스토랑에서 아이 생일파티를 해 주는 '보편'의 행복에서 내 행복도 조금도 다르지 않음을 느낀다.



나도 그들처럼 보편이고 정상이라는 것을.
내가 그렇게 받아들이면 그렇게 된다는 것을.



거실에 트리가 반짝인다. 여럿이 함께 꾸몄던 작년보다 사실 더 예쁘게 되었다. 처음부터 끝까지 혼자 나뭇가지를 펴다 보니 트리가 통일감 있게 더 풍성해졌다.



제이린, 오늘도 수고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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