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먹을 때마다 도리 없이 호주에서의 시간을 떠올린다.
시드니에서 만났던 인생 스프링롤,
바삭하게 한 입을 베어무는 순간
빵 터진 육즙에 홀라당 까진 입천장이 한국에 돌아와서도 한동안 아물지 않았다.
이번 시드니 여행 중 가슴에 산들바람이 불어온 많은 순간이 있지만,
실소를 터뜨리면서까지 즐거웠던 많은 순간엔 식도락이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 무려 지방만 1kg, 체지방 2%가 일주일만에 올라 있었지만
그 순간 난 행복했으므로, 후회하지 않기로 결심했다.
한 달간의 식단 이후,
버터와 라떼의 고소한 맛에 깊이 빠져 있던 나는
‘커피와 디저트의 나라’ 호주에서만큼은
허리띠를 풀기로 결심했다.
내가 묵은 숙소는 시드니의 부촌 Surry Hills.
동네 곳곳이 빵의 성지였다.
Bourke Street Bakery
이름부터 정직한 빵집.
아침 7시 반에 도착했는데 이미 줄이 있었다.
치즈와 버섯이 듬뿍 들어간 파이,
산딸기타르트, 레몬타르트를 골랐다.
올리브오일의 깔끔한 향이 버섯의 풍미를 살려주고,
얇고 바삭한 겉면이 커피와 어우러지며 아침을 완성시켰다.
타르트는 습기 하나 없는 바삭한 밑면과
부드럽고 단정한 단맛의 필링이 완벽한 조화를 이뤘다.
아, 하루의 시작이 이미 좋았다.
Lavie & Belle Bakery
여행 마지막 날 찾은 Lavie & Belle은 대로변에 위치해 있었다.
햄치즈바게뜨, 크로와상, 초콜릿 에끌레어, 치즈케이크를 들고 나왔는데
지금 생각하면 더 사올 걸 그랬다.
인생 바게뜨.
극강의 바삭함에 소스 하나 없이 깔끔한 햄·치즈·양상추 조합.
심심할 정도로 담백해서 질리지 않았다.
치즈케이크는 한 입 베어무는 순간 직감했다.
‘끝까지 다 먹고 나가야겠다.’
꾸덕한 케이크만이 진리라 믿던 나의 세계가 깨졌다.
포크질이 멈추지 않았다.
크로와상은 그냥, 버터의 환생.
에끌레어 위에 장식된 초콜릿마저 주인공이었다.
바게뜨만 반 남기고 모든 빵을 해치운 나를 발견했다.
위험하다, 빵이라는 마약.
호주 카페에서는 커피 농도, 우유 종류를 세세히 고를 수 있다.
나는 롱블랙, 라떼, 카푸치노를 베이스로
half strength, soy milk, oat milk 등을 시도해봤다.
낙농업 국가답게 우유 향이 진하고 고소하다.
half strength 카푸치노는 내 인생 최애 커피로 등극했다.
시나몬 대신 초콜릿 파우더로 마무리한 카푸치노가 내 취향임을 발견했다.
The Felix two
숙소 앞이라 아무 생각 없이 들어갔는데,
리뷰보다 훨씬 좋은 곳이었다.
Breakfast 메뉴의 Turkish Eggs는
수란 세 개, 바삭한 파이, 채소, 소스가 완벽히 어우러졌다.
통창이 열려 있어 안쪽에서도 테라스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사람 많고 북적이는 유명 카페보다,
이곳의 여유와 공기 속에서
‘나답게 시드니를 살아내는 기분’을 느꼈다.
Rivareno Gelato
바랑가루에서 발뒤꿈치가 까져 앉을 곳을 찾다 만난 구세주.
초콜릿칩이 들어간 Stracciatella와 Pistacchio 맛을 주문했다.
피스타치오의 고급스러운 향과 부드럽게 녹는 질감,
눌러주는 단맛의 바닐라와 초콜릿칩의 조화.
한마디로,
그냥 시드니 가면 꼭 드세요.
Sushi & Co (Katoomba)
블루마운틴 강풍을 맞고 들어간 일식집.
엄청 뜨겁고 진한 라멘 국물에 불향 가득한 차슈.
그 한 입이, 온몸을 다시 데워줬다.
하지만 진짜 충격은 스프링롤.
인생에서 가장 바삭하고, 안엔 육즙이 터지는 맛.
실소가 터질 만큼 맛있었다.
입천장이 까였지만, 후회는 없었다.
Foys Kirribilli
회원제 식당이라 이름과 서명을 적어야 입장할 수 있었다.
‘좀 유세떠네’ 싶었는데, 안에 들어가 보니 수긍했다.
테라스는 바다와 공원을 마주하고,
홀 안엔 고급스러운 바와 와인이 있었다.
(여러분, 경치 좀 보세요)
토마토 소스 베이스의 파스타는
탱글한 면과 통통한 새우 7마리의 조화로 완벽했다.
함께 주문한 무알콜 칵테일(Mocktail) Paloma Libre는
라임주스 향이 프레시하게 입안을 씻어줬다.
‘호주가 칵테일도 잘하네?’ 싶었다.
Jangling Jack’s
킹스크로스 근처의 작은 바.
바텐더의 현란한 손길,
한 방울도 흘리지 않는 집중력.
그의 진지하고 열정적인 모습에서
'내가 일할 때도 저런 열정이 있나' 순간 반성까지 하게 만들었다.
수박과 허브 오일이 어우러진 칵테일,
이름은 Tongue Tied.
24달러가 전혀 아깝지 않았다.
The Marble Bar
호텔 지하의 100년 넘은 바로,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라이브 밴드가 어우러진 공간.
갬성에 취해 칵테일 한 잔.
트래블월렛 잔고가 나를 현실로 돌려놔서
한 잔으로 멈췄지만 충분했다.
Groovy Night
숙소 근처 일본식 선술집.
혼자여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
티라미수와 어울리는 차가운 사케.
시드니의 밤을 마무리하기에 충분했다.
The Winery의 low-gluten 비프버거,
Chita Bonita의 Mexican Bowl,
호텔에서 즐긴 치즈와 호주산 hunter valley 화이트와인.
하나같이 만족스러웠다.
시드니는 내게 ‘맛의 도시’로 남았다.
유럽도, 동남아도, 미국도 아닌
이번 여행이 내 인생의 넘버원인 이유는
내가 먹고 싶은 걸 마음껏 먹고 행복했던 기억이
큰 지분을 차지하는 듯 하다.
누군가와 나눴다면 감정이 증폭됐겠지만,
혼자였기에 더 자유롭고, 더 온전히 느낄 수 있었다.
그 자유로움이, 이번 여행의 가장 큰 선물이었다.
이 선물 같은 도시를 다시금 누려보기 위해
오늘도 나답게,
절제와 누림의 밸런스를 맞추고
Jangling Jack's의 바텐더를 기억하며 살아내 본다.
또 만나, 호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