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맛과 쓴맛의 조화 - 티라미수와 사케
신비감과 호기심이라는 빗자루로 낮 동안 한쪽에 치워두었던 ‘고독감’이라는 먼지는
해가 지고 나면 단순한 동요만으로도 마음에 지진이 일어 다시 살아난다.
희뿌옇게, 내 감정을 불투명하게 만들며.
아침부터 ‘나다움’을 찾겠다고 7km를 뛰고, 낮에는 1시간 거리의 해안가 두 곳을 걸었다.
그래서일까. 해가 질 무렵엔, 아무것도 하기 싫어졌다.
분위기 좋고 맛있다고 정평난 식당들을 구글맵에 가득 저장해 두었지만
그곳은 이미 웃음소리와 대화로 가득했다.
퇴근 후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혼자인 나는, 유리벽 너머에서 누군가의 일상을 바라보며 작아지는 느낌을 가졌다.
그 기분을 여행 와서 돈 주고 사 먹을 필요는 없었다.
호텔 근처 마트에서 샐러드와 신라면을 집었다.
맛있지도 않은 라면을 허겁지겁 비우고 배를 두드리며 찾은 ‘무어 파크’에는
하루를 마친 사람들과 반려견들이 느긋한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작은 잔디밭조차 ‘출입 금지’지만,
이곳의 광활한 잔디는 누구나 밟고 누울 수 있는 일상의 일부였다.
그 위에서 뛰어노는 대형견들을 보자
한국에 두고 온 반려견이 떠올라 눈물이 났다.
이산가족처럼 주말에만 만나는 우리.
비록 자식은 없지만, 그 아이는 내 삶의 가장 순수한 유대였다.
노을이 질 무렵, 하늘은 노랑에서 분홍, 그리고 보랏빛으로 바뀌어갔다.
그 사이를 끊임없이 날아가는 새 떼들,
파란 잔디 위를 뛰는 아이들과 강아지들.
그 장관 속에서도, 정작 시드니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하루를 살고 있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처럼.
호텔로 돌아오니 저녁 8시.
라면으로 ‘때운’ 저녁이 못내 아쉬워
호텔 옆의 작은 일본식 바로 향했다.
일본인 부부가 운영하는 그곳은 높은 층고에 와인과 사케병이 인테리어 자체가 되고
사장은 컬러풀한 셔츠에 깔끔히 다듬은 머리로 ‘힙한 단정함’을 완성하고 있었다.
저녁을 이미 먹은 나는 티라미수와, 그와 어울릴 만한 사케를 주문했다.
꽃내음이 살짝 나는 드라이한 사케는 티라미수의 달콤한 크림과 놀랍도록 잘 어울렸다.
순간, 이런 생각이 스쳤다.
“인생의 맛도 이렇지 않을까.”
단맛만으론 완전하지 않다.
그 달콤함을 눌러줄 짠맛이나 쓴맛이 있어야 완벽한 페어링이 된다.
이 역경의 쓰라린 터널을 지나면 내 인생도 달달함이 찾아오겠구나.
‘그럼 내 인생의 티라미수는 언제 오는 걸까?’
돈을 잘 벌면?
누군가와 사랑에 빠지면?
아니면 오늘 무어 파크에서 본 그 장면 속에 이미 있었던 걸까.
푸른 잔디 위를 달리는 대형견과
그를 부르며 웃던 주인의 눈빛.
부른 배를 쓰다듬으며 딸의 손을 꼭 잡은 어느 엄마의 표정.
순수한 행복은 결국 관계에서, 사람에게서 오는 것이다.
지금 나는 사케처럼 쓰디쓴 터널을 지나고 있으니
나중에 맛볼 그 티라미수는 얼마나 달달할까.
그래,
지금은 내 인생의 완벽한 페어링을 위한
위대한 빌드업의 시기인 것이다.
쓰고 보니 정신승리 같은 선언적 문장이 되었지만
인생에 완전한 지지자가,
사랑하는 이가 없다면
예쁜 그릇에 이가 빠져 쓸 수 없게 되는 것처럼
뭔가 부족한 삶이 된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언젠가,
몇 번의 계절이 지나고 마음의 공백이 다져지면
나도 그 따뜻한 충만함 안에 머무를 수 있겠지.
다시 누군가의 손을 잡고
시드니의 골목길을 걸으며
어디든 가고 싶은 맛집을 거침없이 들어서며
티라미수와 사케를 놓고
지금 우리 인생은 어떤 맛이 나는지
감정을 공유하며 그 여행을 완전하게 만들겠지.
그때는 쓴맛까지도, 인생의 완벽한 페어링으로 느껴질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