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난 세 명의 노인
혼자 해외여행을 간다고 하니 몇몇 친구들이 말했다.
“혼자 비행기 타면 그렇게 말을 많이 건다더라.”
“거기서 영화처럼 멋진 사람 만나는 거 아니야?”
진짜 누군가 말을 걸긴 했다.
대부분 인자한 얼굴의 할아버지, 혹은 할머니다.
시드니에 도착한 첫날 오후.
바랑가루(Barangaroo)에서 푸른 바다를 멍하니 바라보다가
옆자리에 앉은 할아버지와 눈이 마주쳤다.
“시드니엔 여행으로 왔나?”
정중하고 젠틀한 말투의 할아버지는
내가 어디를 다녀왔는지, 또 어디를 갈 예정인지 묻고
‘망리 비치’를 꼭 가보라고 권하셨다.
‘mangly beach’를 아무리 검색해도 안 나와
고개를 갸우뚱하자 할아버지는 웃으며 말했다.
“영국에서 와서 그런가, 발음이 아직도 안 고쳐져서 말이야.”
꼭 고쳐야 하는 악센트가 아닌데 할아버지는 한참 어린 나에게
수줍은 미소를 보이셨다.
그의 추천대로 간 맨리비치(Manly Beach) 는 정말 탁월했다.
모든 여행 블로거가 추천하는 본다이 비치를 제치고,
내 여행의 첫 번째 행운이 그분의 말속에 있었다.
셋째 날, 맨리비치에서 셸리비치로 걷는 길.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데
검은 배낭을 멘 할아버지가 말을 걸었다.
“경치 즐기고 있니?”
한국에서 왔다고 하자,
“아녕아세여!” 하며 자랑스럽게 한국어를 내뱉는다.
배낭을 메고 계셔서 호주분이시나고 물으니
“내 발음에 콧소리가 섞인 걸로 들리니?”냐며
당연한 얘기를 왜 묻냐고 돌려 말하신다.
그는 동네 동굴의 종유석 얘기까지 꺼낸다.
“이 동네는 내가 어릴 적부터 살았어.”
자부심 가득한 얼굴로 동네 자랑을 늘어놓았다.
그 짧은 대화에서 느껴진 건,
자신의 삶을 사랑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여유였다.
점점 사람이 귀찮아지고 내성적으로 변해가는 나를 느끼는데,
어떻게 저렇게 오래 인생을 살았음에도
아직 사람을 좋아할 수 있을까.
여행 넷째 날, North Sydney의 작은 마을 Kirribilli.
오페라하우스와 하버브리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
그곳에서 카메라를 들고 걷던 내게
한 할머니가 다가와 물었다.
“저기, 저 새 둥지 보여?”
관공서 건물 지붕 밑에 작은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었다.
할머니는 마치 손주 자랑하듯 말씀하셨다.
“내가 30년을 여기 살았는데, 이번에 처음 본 새야.
저 새 이름은 Butcherbird야.
먹이를 잡으면 나뭇가지에 걸어둬. 잔인하지?
그런데 그보다 놀라운 건,
저 새가 3,000km 떨어진 호주 남부에서 날아왔다는 거야.”
그 순간 새가 노래를 했다.
할머니는 활짝 웃으며 말했다.
“이제야 불러주네. 며칠째 기다렸거든.”
그녀는 영국과 프랑스에서 살다 고향으로 돌아온 지 30년이 넘었다며,
“이곳의 삶에 만족하냐”는 내 질문에
“물론이지. 날씨가 너무 좋잖아.”
하고 웃었다.
자연과 새를, 바람을, 매일의 변화를 관찰하는 그녀의 시선은
내가 잊고 있던 ‘삶의 감각’을 일깨우는 듯했다.
코스피 지수가 오르는 일 따위에만 흥분하던 나에게,
그녀는 ‘이런 인생도 있다’는 걸 조용히 보여준 셈이었다.
나이가 들수록 이야깃거리는 늘어나지만
그 이야기를 들어줄 사람은 줄어든다.
이번 여행에서 만난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은
모두 가족이나 친구 이야기를 조금씩 꺼냈다.
그중 몇몇은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었지만
그들의 눈빛에는 여전히 설렘과 호기심이 살아 있었다.
내가 그들의 나이가 되어도
세상을 그렇게 궁금해할 수 있을까?
그들의 피부엔 검버섯이 피었지만
눈빛엔 사랑과 생기가 들어 있었다.
어쩌면 진짜 젊음은
몸의 나이가 아니라
세상에 대해 여전히 묻고 싶은 마음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인생에 대한 유쾌하고 긍정적인 태도,
적의와 경계 없는 호의,
설렘과 들뜸을 가지고 살 수 있다면
그게 바로 청춘 아닌가.
그분들께 얘기해 볼 걸 그랬다.
"저 이런 말도 안 되는 일을 겪었어요...
그래서 이렇게 멀리 혼자 여행 왔어요!"
그럼에도 살아지는게 인생이라고,
네가 산 방법이 잘못되어서 그런 게 아니라고,
지금처럼 너 자신을 믿고 열린 마음으로 살면
나처럼 너의 눈빛에도 생기가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이런 말을 두런두런 전해주지 않았을까.
아쉬움이 드는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