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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May 01. 2024

이끼와 넥타이  

이끼와 넥타이 




이끼 위 넥타이 

누군가 보란 듯 버렸다 

바로 버린 게 아니라 한 템포 쉬었다 버렸다고 

이끼 옆 나뭇가지가 가리켜준다

  

이끼 위로 넥타이가 태어났다 눈감으면 

위로가 될까


누군가의 도드라진 격식

격식이 필요 없는 땅에서 

홀로 격식을 차리는 격리


넥타이는 낡지 않았다 

오해하지 말기를

이끼를 뚫고 넥타이가 태어나지 않았다


넥타이는 동그랗게 목 넣을 자리가 묶여 있다 

나비가 왔고 비가 왔고 흙이 튀어 

넥타이가 물들었다


봄에는 이름과 상관없이 새로 세로 돋는다

더럽혀진 적 없는 청정하고 투명한 목이 돋아나 

넥타이가 목을 끼워 넣는 장면을 끼워 넣는다 

굳이

그 장면을 보려고 몰려든 자리를 위해 

몇몇 개의 의자가 또 버려진다 


나비가 오고 비가 오고 흙이 튀면

버리다와 버려지다는 한 몸으로 온다 


무용의 무언의 무한의 기다림의 쳇바퀴 


한 번 시작된 불면은 다시 아물지 않고

불면은 잠을 버려둔다   


아직 떨어지지 않은 감나무 잎을 생각하며 눈을 감는다

종일 길게 길게 감았다 떴다 하면

불면을 감아 버릴 수 있을까

 

이제야 내가 너를 버린 게 맞다고 인정해 버렸다


넥타이에서 목이 훌렁 빠져버리도록   

부디 격식 없는 세상에서 편이 잠드소서 

이끼의 기도문을 나뭇가지가 땅에 그린다


이끼들은 한 번씩 몸을 솟구쳐 

헹가래 행가레 행가래 헹카레 

더러워진 넥타이의 흥을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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