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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고라니 Jul 07. 2024

여름 미래

여름 미래 



자두 몇 개를 우편함에 넣어두고 갔다 

먼지 묻은 자두를 깨끗하게 씻었다 

먹어 본 자두 중에 제일 맛있었다

복숭아 대신 귤을 사 왔다 

여름에 귤이라 안 어울렸다 

먹어 본 귤 중에 제일 맛있었다 

포장된 장어를 들고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꽤 무거웠다 


먹어 본 장어 중에 제일 맛있었다 

먹어 본 불안 중에 제일 맛있었다

먹어 본 우울 중에 제일 맛있었다

먹어 본 슬픔 중에 제일 맛있었다 


하지가 지나서 감자를 캐왔다 

반려 감자 할래? 

이뻐서 고백했다 

본 감자 중에 제일 예뻤다 


고라니새를 보았다 

밤이면 골목에서 비틀대는데 

술 취한 사람 같아서 피해 다녔다 

고라니새는 날지 못했다 

밤의 인간으로 진화된 것뿐이라고 

억울 억울 억울 울었다 


머리 위에 책 한 권 둔다 

고라니새는 몸을 접고 아무 페이지에서 잠든다 

펄럭이는 소리가 책 속에서 꿈처럼 새어 나온다


미래에 고라니새는 날 수도 있어


속이 훤히 보이는 너는  

지루함을 못 감추지 

어쩌다 

툭 부르면 후둑 후둑  

떨어지는 이야기  

먹어 본 이야기 중에 제일 쉽게 부서졌다 

먹어야 해 말아야 해 

만나야 해 말아야 해 


망설이는 동안 

너와 나는 

청미래덩굴 잎맥처럼 

잎 끝에서 꼭 만나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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