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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의 사랑

by 고라니

사랑의 사랑




그제는 살기 싫

어제는 살 수 없

오늘은 살고 싶

내일은 살기


죽을 때 책 한 권, 옷 한 벌 남기고 싶지 않아

책도 안 사, 옷도 안 사


아빠는 오래 삭힌 오줌 바케스 한 통을

내 방 앞 파밭에 모조리 찌끄렀다


냄새에 민감한 년

재수 없고 싹수없는 년

사랑이 없는 년이라

고래고래 울면서 소리 지르고

길길이 날 뛰었다

고장 난 삶으로 고정된

나를 잃고 앓아 눕힌다


한 번 입어 봐

한 번 읽어 봐

한 번 살아 봐


나를 보는 사랑의 얼굴이 환해서

사랑의 사랑을 저버릴 수가 없다


주워 온 솔방울 한 개

본 것에 가깝게 그리기 위해 하루를 보낸다


사랑이 보낸 옷을 입고

사랑이 읽은 책을 읽으면서

사랑의 몸짓과 소리를 따라간다


내가 사라지고

사랑이 남길 바라며


오줌 빨아먹은

파들은 모조리 기운을 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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