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사화와 사마귀
240718_꽃무릇이 벌써?
"미야. 빨간 꽃 올라왔어."
이른 아침, 엄마가 의아해하는 목소리로 나를 부른다.
"나리꽃?"
"수... 선화..."
엄마는 자신 없는 목소리로 답한다.
"이파리 없이 삐죽 피는 꽃 있잖아."
잠이 아직 묻은 얼굴로 마당으로 나갔다.
"어디?"
"저기"
우거진 깻잎 사이로 삐죽 빨간 꽃대를 감추는 듯 슬며시 내비치고 있는 녀석.
"아... 뭐더라. 아! 꽃무릇"
"아직 필 때가 아닌데.... 벌써 올라오네."
"그러게."
아직 딴딴한 봉우리이지만, 꽃무릇 꽃망울에 눈길을 자주자주 두어야지.
240722_상사화 사마귀
깻잎을 따러 마당에 나갔다가 흠칫. 시선이 멈추었다. 어라? 분홍색. 꽃무릇이 아니네. 저건 뭐지? 백합처럼 생겼다. 하나의 줄기에서 4송이 꽃이 각기 다른 방향으로 피어있다. 이쪽저쪽에서 다 볼 수 있다. 며칠은 걸릴 줄 알았는데. 내 예상보다 일찍 봉우리를 열었다.
분홍 꽃잎이 아가의 볼처럼 말갛다.
엇. 작은 사마귀다. 사마귀도 작으니 귀엽다. 내가 사진 찍는 걸 눈치챘는지 고개를 갸웃한다. 이 녀석, 갓 피어난 꽃잎을 갉아먹을까. 툭 건드려서 꽃에서 떨어뜨려 놓으려다 만다. 오동통한 꼬리가 샥 올라간 귀여운 사마귀다. 아기 사마귀인가... 내가 빤히 보니, 고개를 삐걱댄다.
다시마 세이조의 그림책 '마귀와 뚜기'가 생각난다. 뚜기를 구해내기 위해 강물에 몸을 던지는 용감한 마귀. 그나저나 이건, 무슨 꽃이지. 익숙한데... 원추리? 나리? 팔과 발목이 간지럽다. 그럼 그렇지. 꽃과 마귀에 빠진 나를 가만히 둘리가 없지. 모기도 등장했다. 팔을 파닥이며 방으로 들어왔다.
상사화
꽃이 필 때 잎은 없고 잎이 자랄 때는 꽃이 피지 않으므로 서로 볼 수 없다 하여 상사화라는 이름이 지어졌다 한다. 그리하여 꽃말은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절절하다. 엄마와 나는 꽃대를 보고 꽃무릇이라고 예상했었다. 작년에는 추석 즈음 꽃무릇이 피었었다. 어제까지도 엄마랑 꽃 봉오리를 보며 이야기를 했다.
"왜 쟤만 이렇게나 일찍 필까?"
"때가 있지만, 다른 때에 피기도 하나 봐."
올해 유난히 꽃을 보면, 꽃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같이 듣는다. 말 그대로 정말 꽃 감상이다. 저 꽃은 어떤 소리를 낼까. 상상한다. 상상력이 그다지 풍부하지는 않다. 꽃대가 길고, 꽃잎이 뒤로 젖혀진 모양의 꽃을 보면, 관악기가 떠오른다.
오늘은 절기상 가장 덥다는 '대서'
한여름. 걷다 보면 등에서 줄줄 땀이 흐르고 심지어 머리에서도 땀이 뚝뚝 떨어진다. 무더위 속에도 풀들은 무성하게 자라고, 꽃들은 피어있다. 비가 온 뒤에는 풀들 사이에 시컴시컴한 버섯도 돋아 있고, 이팝나무는 제법 도톰한 이끼도 입고 있다. 올록볼록 입체적이다. 그 사이를 개미들이 빠르게 오르락내리락한다.
유독 이팝나무에 이끼들이 왕성하다. 왜 그럴까. 이팝나무는 다른 나무에 비해 수분을 잘 머금고 배출되는 걸까. 은행이나 플라타너스에 비해 몸통이 얇은데 그게, 이끼들이 한 데 모여서 번식하고 생장하는데 좋은 조건일까. 수피가 좀 낡아 보이는데, 나름 이끼 단장을 통해 낡은 수피를 보호하려는 게 아닐까. 이런 질문들이 자꾸 생겨나면 땀 흘려서 축축해진 나를 잠시 잊게 된다.
"더 쉬었다 가요. 밖은 지옥이에요."
오미자 차 한 잔을 다 마시고 나오니 여름이 몸을 휘감는다. 에어컨에 식은 내 몸을 덥히고, 건조해진 피부에 습기가 스민다. 아주 잠깐, 따뜻하다. 아주 거대한 여름 욕조에 몸을 담근 마냥. 스르르. 잠시 좋았다가 걷다 보면, 다시 줄줄줄 땀이다.
도서관 앞에서 한 남학생이 손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이리저리 탐구하고 있다. 안경을 쓰지 않았지만,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나도 며칠 전에 딱 저랬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남학생은 바로 탐구를 종료한다. 손바닥에 올려 둔 그것을 바닥으로 휙 던진다. 마치 자신만의 비밀스러운 탐구를 들켜서 놀란 것처럼. 나는 괜스레 머쓱하다. 남학생의 탐구를 엿보다 들킨 것처럼. 매미소리가 짱짱하다. 저 소리들 중, 남학생 손 위에 있던 허물에서 빠져나간 녀석도 활개를 치고 있겠다.
240724_여전한 사마귀
어제도, 오늘도, 그제도 작은 사마귀는 상사화에 붙어 있다. 이 꽃에서 저 꽃으로 위치만 바꿀 뿐이다. 꽃을 갉아먹겠지 싶었는데, 상사화는 갉아 먹힌 흔적 없이 멀쩡하다. 사마귀는 상사화를 좋아하는 걸까. 질 때까지 계속 곁에 있을지도 모른다.
240728_노라조 슈퍼맨 듣기
조카 이준이가 노라조의 '슈퍼맨'을 너무 잘 따라 부른다. 가사도 척척. 박자도 척척. 춤까지 추면서 신나게 부르는데 엄마와 나는 웃음이 계속 터졌다. 이준이는 점점 더 흥이 올라 '오즈의 마법사', '슈퍼맨'을 한 번 더 불렀다. 노라조의 '슈퍼맨'을 연습해야겠다.
240729_저의 꿈은 에코 러너입니다
꿈에서 사내 퀴즈쇼가 열렸다. 문제을 읽자마자 내가 정답을 외쳤다.
"에코 러너."
자신 있게 말했다가 '에코 러너가 뭐지?' 스스로에게 반문하고는 말꼬리를 흐렸다. 자신 없어하는 내게 진행자는 정답이라며 상품을 고르라 했다. 상품이 변변치 않았다. 불만을 표하며 구시렁거리자, 퀴즈쇼를 진행하던 직원이 내게 "내년에는 당신이 진행하세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네. 퇴사하지 않으면요."라고 단서를 달았다.
아주 실컷 꿈을 꾸고 잠에서 깨니 5시 59분.
그나저나 에코 러너. 왜 저런 답이 튀어나왔을까. 요새 짐통 더위를 핑계 삼아 통 걷질 않아서 늘 마음 한구석이 찝찝했다. 이른 아침과 저녁에는 걸을만한데도 더울 거야. 땀나면 또 씻어야 하잖아. 겨우 마른 화장실 바닥이 또 습하게 젖을 거야. 별별 핑계를 만들면서 밖에 나가지 않았다.
오늘은 정말 물세수만 하고 밖으로 튀어 나갔다. 풀숲에 피어있는 달맞이꽃이 환했다. 활짝 핀 달맞이 꽃잎 위에 아주 작은 메뚜기 한 마리가 붙어있다. 메뚜기의 연둣빛이 투명했다. 해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10분 걸으니, 햇볕이 강해서 걷기 힘들었다. 이 와중에도 다들 열심히 뛴다. 땀으로 반짝인다. 에너지가 넘친다. 나도 그 기세를 빌어 한 바퀴는 뛰었다. 겨우. 다시 걷는다.
운동장 평균대 주변 고인 물에 소금쟁이가 있다. 움직일 때 물이 반짝인다. 매미 허물이 있고, 그 옆에 실제 매미가 있다. 방금 나온 매미일까. 아니면 우연의 일치일까. 한 바퀴 돌고 오니 허물만 있고 매미는 없다.
어제, 이준이와 영통 하는데 보관해 두었던 매미 허물을 보여주었다. 이준이는 아무 말 없이 잠시 그저 바라보기만 했다. 살짝 겁내는 듯도 보였다. 매미에 대해 뭐라도 알고 싶어 진다. 7년을 땅속에 있다가 2주만 살다 간다는 이야기 말고. 오늘은 도서관에 가서 매미 관련 책을 읽어 봐야겠다.
아빠가 어제 호박잎을 한 봉지 따다 놓았다. 점심메뉴는 호박잎 쌈. 양념장이 중요한데, 양념장의 포인트는 찐 고추다. 호박잎을 찔 때 고추를 함께 쪄낸다. 양념장에 찐 고추를 썰어 넣으면, 부드러운 매콤함이 호박잎 식감과 잘 어울린다. 앞집 큰 이모도 이렇게 호박잎 쌈을 해 먹는다. 엄마도 그런 걸 보니, 할머니가 그렇게 해주셨던 것 같다.
상사화에 붙어있던 아기 사마귀가 없다. 뭔가 허전했다. 어디에 있을까? 소용없는 줄 알면서도 주변을 두리번댔다. 아기 사마귀는 보이지 않았다. 상사화 줄기 빛깔과 아기 사마귀 색이 흡사해서 얼핏 보면 알아채지 못할 정도였다. 아기 사마귀의 움직임까지 없으니 더했다. 너른 세상으로 가기 전 며칠, 천적을 피해 상사화에 기대 숨 고르기를 하고 있었던 것일까. 만약 그랬다면 이미 꽃이 져버린 상사화를 떠나는 게 맞다. 일주일 정도 상사화에 붙어 있던 사마귀는 없고, 상사화는 졌다. 그래도 다시 볼 수 있다.
아 힐링되네요
힐링이 되었다니 기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