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에 한두 살 정도의 나이차는 많았지만 다섯 살 이상씩 차이나는 경우는 흔치 않았다. 남자가 연상인 경우는 10살이 많아도 그 이상 많아도 그런가 보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는 주목을 받고, 이상하게 여겨지던 때였다.
나는 결혼을 하고도 한참을 다섯 살 연상이라고 말하지 않았다. 순수하고 정직하게 다섯 살차이라고 얘기했다가 놀라는 사람들의 눈빛을 기억한다. 그래서 만 나이를 사용해 네살 차이라고 얘기했더니, 덜 놀라며 나를 능력자라고 했다. 겨우 숫자 1의 차이가 이렇게나 크다.
내가 가입한 인터넷카페에는 예상보다 많은 연상연하커플이 있었고, 그래서 무척 힘이 되었었다.
나처럼 호칭에 관해 고민하는 사람들이 있었고, 먼저 경험한 분들의 친절한 답변도 있었다. 상호 존대를 하기도 하고, 가족관계의 서열에 따라 말을 놓기도 하고, 그 호칭도 다양했다.
어떻게 부를지 고민하다가 어머님과 상의하고, 결국 Y 누나들에게 호칭을 정해달라고 부탁했다.
큰누나는 '형님'이란 호칭을 원했고, 작은누나는 '고모'라고 불러달라했다.누나들에게는 Y에게 하듯 나에게도편히 대해달라고 했다.
우리가 결혼한 그해 12월에 Y의 큰누나가 결혼식을 올렸고, 2년 뒤 작은 누나가 결혼했다. 둘 다 동갑내기 배우자를 만났다.
가족관계상 서열이 가장 낮은 내가 나이가 가장 많은 약간은 이상한 족보가 되었다. 하지만, 다 비슷한 시기에 결혼하고, 우리들의 나이도 크게 차이 나지 않은 데다 아이들의 나이도 고만고만해서 서로 공감대가 많다.
Y는 내 동생과 동갑이고, 제부보다 어리지만, 형님이다. 둘은 서로 존대하며 지내고 있다. 나와 동생이 비슷한 부분이 많은 만큼 Y와 제부가 닮은 점이 많아 둘은 전생에 형제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인연이라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질 때가 있다.
내가 Y를 처음 만났을 때 지금의 모습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다. 아니 상상할수도 없었다.
내가 어린 남편을 만나게 될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내가 혼전임신을 하게 될 거라고 어찌 상상이나 했겠는가.
하지만, 운명처럼 우리는 가족이 되었다.
가족이 되기까지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힘이 있었던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우리가 서로 만나지 못했더라면, 정해진 팔자대로 평생을 혼자 살았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운명이 우리가 서로에게 더없이 좋은 배필이라고 여겨 보내준 것이 아니었을까.
각자의 자리에서 서로 떨어져 지내는 시간이 많지만 그 시간만큼 서로를 애틋하게 생각하고 밀어내지 않으며 가족이라는, 부부라는 관계를 이어올 수 있었던 게 아닐까.역마살과 이별수 덕분에.....
그래서 나는 우리가 천생연분의 궁합이라고 믿게 되었다.
지나고 보면 알 수 있다.
그때 그 시간이, 그 사건이 결국 지금에 이르기 위해 반드시 있어야만 했던 시간임을.
그것이 당시에 좋은 일이든안 좋았던 일일지라도 지금 더 좋아지기 위해 만들어져야만 했던 필연적인 사건이라는 것을.
그래서 결국 인생은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더 좋은 방향으로 흐르리라는 것을 나는 안다.
초보작가의 부족한 첫 연재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글을 쓰며, 발행을 하는 순간까지도 글자 하나, 문장 하나하나가 부끄럽고,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결국 발행을 하고서도 그 감정은 여전하고, 부족함이 느껴져 후회가 밀려들기도 했습니다. 아마도 더 많이 쓰다보면 조금씩 더 나아지겠지요. 제가 첫 브런치 연재글을 이렇게 시작한 것 역시 미래의 나를 위한 필연적인 사건이라고 믿어요.
역마살 남자와 이별수 여자는 여전히 떨어져 지내고 있습니다. 어쩌면 저희는 평생 떨어져 지낼지도 몰라요. 하지만 몸이 떨어져 있다고 해서 마음도 멀어지는 건 아닌 것 같아요. 저희 부부는 긴 시간 여러 상황들을 함께 겪으며 조금씩 더 친해지고 있어요. 이 글을 쓰면서 남편과 연애했을 때를 추억하며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어 행복했던 시간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