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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중 서울개 13화

서울개 Ep.13

멧돼지를 만나면

by 이슬노트

낯이 익은 숲길 산책에 나섰다.

어찌 된 일인지 나와 함께 산책에 나선 사람은 내가 그토록 그리워하던 전 주인이다.

빼곡히 자라난 기다란 나무 숲 사이로 향긋한 냄새가 내 코를 자극하고, 기다란 나무 가지 사이로 쏟아지는 햇볕이 마치 서울에서 본 밤조명처럼 빛이 나고 있다.

나는 주인의 느린 걸음에 맞춰 행복한 걸음을 옮긴다.


"부스럭부스럭"

어라? 이게 무슨 소리지.?

주인도 낌새를 느꼈는지 걸음을 멈추었다.

두리번두리번... 주변을 돌아보다 나를 노려보는 눈을 보았다.

몸집은 내 몸의 10배는 되어 보이고, 주둥이는 앞쪽으로 기다랗게 나와있으며, 가운데 납작한 코가 있다. 커다란 눈이 나를 노려보고 있다. 그 옆에 또 다른 녀석도 나를 쳐다보고 있다.


주인은 이미 겁에 질려있다. 내가 주인을 지켜야 한다.

나는 공격자세를 취하고 녀석이 덤비길 기다렸다.

그 순간 나를 향해 달려오는 한 녀석. 그리고 뒤따르는 다른 녀석.

"왈왈!"

나는 포효하며 녀석들을 향해 몸을 날렸다.

나는 나의 사냥본능을 순식간에 일깨워 녀석의 목덜미를 잡고 늘어졌다.

괴로워하는 녀석. 순간 내 몸은 집채만큼 커졌고, 내 소리와 힘은 점점 더 커지며 나에게 물린 녀석은 피를 흘린 채 쓰러졌다. 함께 있다가 놀란 녀석은 줄행랑을 치고 도망쳤다.

나는 콧바람을 씩씩대며, 우렁차게 외쳤다.

이게 나다. 바로 서울개.


"띠띠띠-띠띠.."

그 순간. 문이 열리고 주인이 들어왔다.

아함... 기지개를 켠다. 나의 용맹함을 뽐낸 그 순간이 꿈이었다니... 아쉽다.


며칠 뒤 가족들은 나들이에 나섰다.

가는 길이 어째 익숙하다. 점점 가까워져 오는 전 주인집의 향기.

넓은 마당을 보자, 전 주인이 금방이라도 나를 부르며 집안에서 나올 것만 같다. 하지만, 집에서 나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인기척이 없는 집안은 냉랭하기만 하다.

주인들은 청소를 하고, 불을 켜고 난방을 시작했다.

집이 따뜻해지자 더더욱 옛 생각에 눈물이 날 것만 같다.

해가 뉘엿뉘엿 질 무렵, 남자주인은 커다란 외투를 입고, 여자주인과 함께 산책길에 나섰다.

익숙한 길. 나무향이 진하게 나서 늘 내 코를 자극했던 그 길.

남자와 여자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내가 안내하는 길을 잘 따라오고 있다.

그래, 여기는 내가 정말 잘 알거든.

이쪽으로 가면 정말 좋은 곳이 있어. 내가 늘 주인과 산책길 중간에 머물며 쉬었던 곳이지.


"부스럭부스럭"

"잠깐, 이게 무슨 소리지?"

남자가 얘기한다. 우리는 모두 일시 정지가 되었다.

숲 속의 반짝이는 눈을 마주쳤다. 꿈에서 봤던 그 멧돼지다.

"멧돼지야."

남자가 말한다.

"엄마야"

여자의 작고 짧은 비명.

"아악! "

나도 모르게 비명소리가 나와버렸다.


"다다다다다다다. 다다다 다닥"

멧돼지들은 나를 보고 놀란 건지.. 남자를 보고 놀란 건지... 빠르게 도망친다.

남자를 올려다보니. 나보다 20배는 큰 것 같다.


우리는 걸음을 옮겨 다시 집을 향해갔다.

"휴우... 너무 놀랐어. 진짜 너무 무서웠어. 자기가 있어서 너무 다행이었네."

"꼬미 이 녀석 놀란 소리 들었어?"


이런, 서울개 체면이 말이 아니다.

나는 인형사냥도 참 잘하는 용맹한 개인데...

역시 꿈과 현실은 다른 것인가.

생각보다 멧돼지는 크고 정말 무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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