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은 밤.
여자 주인과 아이가 내 물건을 커다란 가방에 담고 있다.
이 사람들이 분주해지면 나는 어쩐지 불안하다.
낯선 곳에 갈 것이 분명해서 벌써부터 심장이 벌렁거린다.
길어진 털 사이로 분주한 주인들을 따라 내 눈이 두리번두리번 따라간다.
이제는 익숙해진 여자주인의 차. 내 전용 좌석도 마련되어 있다. 푹신한 쿠션으로 이루어진 이 자리에서는 다리에 힘을 굳건히 주지 않아도 흔들리지 않는다. 좌우 턱을 기댈 수도 있으며 조금 일어서면 창밖을 편하게 감상할 수도 있다.
어두워진 밤길은 여전히 반짝이는 불빛들로 가득하다.
이내 어느 건물로 들어가 차는 멈추었다.
낯선 여자가 기다리고 있다.
나는 그 여자에게 넘겨지고, 내 물건들 역시 그 여자가 건네받는다.
주인들은 여자와 몇 마디를 나누고 내게 인사를 하더니 차를 타고 사라졌다.
나는...?????
나 또 버려진 건가?
주인이 또 바뀌는 걸까?
나는 왜 계속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새로운 것들에 부딪혀야 하는 걸까.
나도 언제쯤 내 마음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걸 계획하고 시도할 수 있을까.
나는 개라서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낯선 여자의 집으로 들어갔다.
모든 게 낯설다. 그 집에 있는 남자도.. 아이들도.
아이들은 신이 나 보인다.
내게 간식을 건넨다. 간식은 정말이지 참을 수가 없다.
간식을 받기 위해 앞발을 들었다. 앉으라는 말에 얌전히 앉았다.
조용해진 밤.
사방이 어둡고 조용한 가운데 커튼 사이로 꺼지지 않는 불빛이 새어 들어온다.
그 아른거리는 불빛 속에 나는 좀처럼 잠이 들지 않는다.
주인들은 어딜 간 걸까.
나를 다시 데리러 오겠지.
이 밤이 지나면 올까.
따뜻하고 포근한 침대의 주인 곁이 그립다.
눈을 비비며 나온 낯선 아이가 나를 데리고 자신의 방으로 들어갔다.
주인과 같은 냄새는 아니지만, 따뜻한 아이의 품 안에서 겨우 잠이 들었다.
따사로운 햇살이 날이 밝았음을 알려준다.
내가 밥을 먹던 그릇에 사료를 보았지만 입맛이 없다.
도통 저걸 먹을 기분이 아니다.
낯선 여자가 내게 사료를 먹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나는 고개를 젖히고.. 뒤로 물러나 거부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간식이 나타난다.
간식은 내가 못 참잖아.
간식으로 주린 배를 채우고 산책길에 나섰다.
낯선 곳에서의 산책.
긴장되지만, 이곳에서는 어떤 사람, 어떤 개들이 지나갔는지 후각을 곤두세운다.
다시 어둠이 찾아왔지만, 주인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이곳에 적응해야 하는 것일까.
마음을 비우자. 그래,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어.
어떤 상황이든 받아들이는 거야.
아쉬움과 두려움을 어떻게든 극복해 보려 나는 애쓰고 있다.
또 다른 하루가 저물어갈 무렵.
낯선 여자는 내 물건을 커다란 가방에 다시 담고 있다.
그리고 나타난 나의 서울집주인들.
날 버린 게 아니었구나.
날 데리러 와주었구나.
나는 꼬리를 한껏 흔들며 그들에게 달려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