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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키 Sep 05. 2024

Your life must have

treated you well.

상의 모든 흐름을 아우르는 인생이라는 추상명사, 신비하고 오묘한 그 개념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실재하는 보통명사가 아닐까?


Your life must have treated you well!


남편의  옛 성도 한분이 오랜만의 행사에 함께 방문한 나를 보고 한 인사였다. 내 모습이 보기 좋아서 말 일 테고 그 겉모습을 인생 전반으로 멋지게 확대 해석해 줬다는 사실에 기뻤었다. 그 이후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영어 문장 중의 하나가 됐다. 내가 내 인생한테 대접을 잘 받고 있다는 말 보다 내가 얼마나 귀한 존재인지 입증해 주는 말이 세상에 또 어디 있을까?


그런데 지금 이 문장을 붙잡고 늘어지는 까닭은 아마도 요즘의 내 삶이 그렇지 않다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렇다. 겉으로 보기에 나는 정말 잘 살고 있는 것 같지 않을 거다. 가까운 사람들은 내가 왜 이렇게 고생스럽게 사는지 모르겠다고들 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내 인생과 나의 관계는, 가끔 회의에 빠지기도 하고, 헷갈리기도 하고, 의혹의 눈초리를 서로에게 던지기도 하는,  때로는 아슬아슬 곡예 같기도 , 그런 사이다. 


그러나 내 의식 깊숙한 곳에서는, 근본적으로 내 인생이  나를 최고로 대우한다고 믿는다. 나 역시 기본적으로 내 인생에 여전히 경의를 표하고. 


우리는 대체적으로 서로를 존중한다. 깊은 애정을 품고 자체를 거의 절대적으로 신뢰온 편이고, 삶 역시 거의 언제나  내 선택과 결정을 그대로 믿고 실행해 왔을 만큼 나를 인정주는 거 같다. 


모두가 부러워하는 금수저도 아니고, 그렇다고,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으니, 화목 단란한 가정에서 자란 것도 아니었지만, 나는 내 인생 구조나 구성에 별 불만 없이, 낙관적으로, 씩씩하게 잘 살아온 편이다. 빨강머리 앤처럼, 제인 에어처럼.


실제로, 난 인복이 많다는 소릴 들을 만큼, 인생 구비마다 귀인들을 많이 만났다고 볼 수 있다.  즉 삶이라는 게 지속적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는 연속적 행위의 과정과 결과일 뿐이라고 한다면, 난 비교적  다채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잘 지내온  편이라고 할 수 있다. 한 마디로, 내 삶의 여정은, 우여곡절은 꽤 있었지만, 대체적으로 내가 원하는 대로 이끌어져 왔다는 얘기다.


실제로, 내가 현재 살고 있는 공간과 내가 보내는 시간은,  온전히 나에 의해서, 아니 내게 주어진 상황을 오롯이 내가 선택하는 방식에 의해서 결정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그러하다.


사실 이건 모든 이들이 정확히 인식하고 인지해야만 하는,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적용되고 있는, 사실(fact)이고 진리(Truth)인 명제일 거다. 


난 수수께끼를 풀어낸 오묘한 깨달음으로서가 아니라, 구체적으로 드러난, 명약관화한 증거적 현상으로, 내 선택과 책임을 매 순간 내게 재확인시키며 내 삶의 거의 모든 흐름을 큰 저항 없이  타고 있다.


실수하거나 실패해도 나를 그다지 심하게 야단치지 않는다. 물론  인생 탓을 하거나  불평불만을 늘어놓지도 않고 말이다. 생도 내게 그래왔다는 걸 기 때문이다. 내 실수와 실패로 인한 파국적 결과에도 내 인생은 늘 다시 새롭게 시작할 기회와 힘을 내게 곤 했으니까.


그래서일까? 조언을 준답시고 감히 내게 이래라저래라 하며  설교하거나 비판하거나 야단치는  사람을 만나면 좀 황당스럽다. 가끔은 가소롭게 느껴지기도 한다. 누구라도, 참 우습지도 않게,  내 사는 모습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거 보면.


전에는 바로 불쾌감이나 용납하지 않음을 그 자리에서 바로 표출했었는데... 지금은 다르다. 난 점점, 이중인격자, 아니, 멋진 의미의 다중 관점자가 되어 가는 모양이다. 겉과 속이 다른 사람처럼, 불쾌감을 표현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가끔은 너그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려 주기까지도 한다. 그들의 의도를 최대한 선하게 받아들여서 나 스스로 불일치의 모순을 피해보려 애쓰면서. 


내가 나의 불편함이나 불쾌감을 굳이 표현하지 않는 강력한 진짜 이유는 사람들은 보통 내가 왜 기분 나빠하는지 기본적으로 이해를 못 하거나 이해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는 걸,  그저 자기 삶의 밑천만큼의 잣대로 남을 재단한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게 내가 최근에 체험적으로 배운 거다. 웬만하면 가능한 불쾌감을 드러내지 않는  좋다는 거 말이다. 이건 당위성을 넘어 그럴 필요가 없다는 실용성까지 포함한다. 시간과 에너지 낭비를 막는 현실적 지혜로움의 견지에서 말이다.


다른 사람의 불편함을 존중할 의도나 이해 능력 가진 사람을 만나기가 하늘의 별 따기처럼 어렵다는 걸 난 참  뒤늦게 깨우쳤다.  너무 오랫동안 이상적 상황, 아님 내 환상 세계에 머물러 있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겉으로라도 사람 좋은 척한다. 좋은 사람인 척을  하다 보니까, 그렇게 나를 훈련시켜 보니까, 내게 새로운 능력이 생긴다. 좋은 사람이라는 이미지와 함께 침착함과 차분함이, 인내심 뒤에, 줄래 줄래  따라온다. 당연히 사람들과의 관계가 부드러워지고 무엇보다도 커다란 혜택은 사람을 잃지 않는다는 거다.


시나브로, 내 인생이 기대하는 내가 되어가는 듯싶다.  좀 늦은 감이 없진 않지만, 점점 내가 바라던 내가 되어감을 알아차린다.  어린 날, 젊은 날 그렇게 부러워하던  쿨한 성품이 슬그머니 진짜 내 인 양 내 피부에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다.


사람들과의 관계 맺음에만 자유로워진 것니다. 삶이 고달프고 고단해도 존중하며 희망을 놓지 않았더니 마음도 물질도 풍요롭고 자유로워진다. 확실히 삶이 나를 잘 대해 주는 것임에 틀림없다.




드디어 계획했던 연재의 끝, 10회를 발행한다. 즉흥적이고 자발적이고 저절로 일어나는 것에 가치를 두고, 계획적인 것을 거의 백안시하던 내가 말이다.


반대로 해보기의 성공이다. 특별히 신경 쓰거나 기를 쓰지 않았어도 주제나 내용이 처음 계획할 때의 목표 혹은 바람과 비슷하게 흐른 거 같아 신기할 따름이다. 계획과 즉흥성콜라보라고나 할까? 앞으로 또 계획적인 일을 시도해 볼 수 있을 거 같다.


이제 여유와 날카로움을 장착하고 시간 날 때마다 천천히 고쳐쓰기를 할 거다. 뼈대는 만들어 놓았으니. 1회부터 10회까지 왔다 갔다,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사유와 언어의 유희를 즐길 거다.


더키야~ 수고했어!


지금은 우선 토닥토닥 어깨 두드리는 걸로 나 스스로에게 상을 준다. 언젠가 다시 내 인생이 나를 얼마나 잘 대해주는지 자타공인할 수 있을 때 만족이라는 진짜 상을 받을 걸 기대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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