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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더키 Oct 28. 2024

진짜 나로, 쿨하게

아일랜드에서 귀국한 지 사흘 째 되는 날,  뜬금없는 해후가 거의 3년 만에 이루어졌다. 오래 전의 내 트레이니와 그의 아내가 괴산집에 들르겠다는 거다. 부산에서 개최된 의학 세미나를 마치고 귀경길에 들어섰는데 불현듯 내가 보고 싶어 졌다고.


엔틱 셀러의 일이 나의 일상을 삼켜 버린 요즘, 나는 심리 상담과 관련된 사람들과도 일과도 엮이는 일이 별로 없다. 사람을 굳이 먼저 찾지 않는 나의 성향 탓이 클 거다.  아무튼 내 정체성에 혼돈이 일어날 참이었어서 반가웠다. 빠듯한 시간과 방전된 에너지 상태를 무시하고 함께 저녁 하자는 그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그들은 여전히 동안이었고 늘씬했다. 이상하게도, 예전과 다른, 남루한 나 자신의 행색이 그리 신경 쓰이지는 않았다.  그런데 번갈아 내게 한우 구이를 챙겨주는, 다정하고 따뜻한 두 사람에게 쉼 없이 내 근황을 미주알고주알 늘어놓는 내가 의식됐다.


문득 의문이 일어났다. 근데 내가 이렇게 수다스러울까? 빚진 사람이 너무 뻔뻔하게 잘 살고 있는 거 같이 보일까 봐 제 발 저려서인가? 아님, 나 지금도 성장하면서  잘 살고 있으니 예전처럼 존경의 눈으로 봐달라는 시위인가?


이런 질문에 불을 지핀 건 나와 너무 다른 모습의, 한우특가 사장님 손자였다. 며느리가 외국인이라고 했다. 어느 나라인지는 묻지 않았다.


2남짓, 남자 아기의 표정이 놀랍도록 쿨했다. 깊이 있게 사유하는 이의 표정을 닮았고 뼛속까지 가득 차있는 자존감을 장착한 눈빛으로 흔들림 없이 사람을 응시했다. 자기에게 말 거는 어른들을 순수무구한 미소로 응대하는 그 아기에게서, 난데없이, 미래  모습을 보았다.


비싼 저녁을 대접받고 궁상스런 나의 집으로 그들과 함께 돌아왔다. 어수선하고 구질스런 앞뜰과 뒤꼍망설임 없이 보여줬 세련되고 멋진 커플을 안으로 들여 온갖 앤틱 잡동사니로 어지러운  방방마다의 구석구석을 보여줬다. 


내가 참 많이 아끼던 그 트레이니 커플은, 3년 전, 뜬금없는 내 행보에 놀라기는 했지만, 200년도 더 된 옛날 집을 사서 수리하느라 전전긍긍하던 내게, 큰돈을 선뜻 내놓았었다. 별 질문도 않고.


영국 명품 앤틱 그릇세트를, 한사코 마다하는 커플에게 들려 보내고 쪼끔은 가뿐해진 가슴 체중을 느끼며 사유의 깊은 숲 속길로 작심하고 들어섰다. 나 스스로 인식하는 만큼 내가 당당한 것 같지는 않아서다.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원초적 질문들연이어 리스트에 오르는 걸 지켜보며 나는 다른 차원의 여유를 느꼈다. 나를 자극하고 나에게 영감을 주는 그 무엇들을 쫒아서 미친 듯 살아온 내 삶을 이제야 비로소 찬찬히 살펴볼 마음이 생겼음을 알아차린 까닭에서다.


난 왜 그렇게 일찍이 생을 절대 긍정으로 받아들였을까? 어떻게 무조건, 생이, 운명이 내 편이라고 믿어졌을까? 아니, 정말 나는 진실로 온전히  절대긍정이었을까? 운명이 언제나 내 편이라고 진짜로 믿었을까?


가끔씩 힘이 다 빠졌다가 기력이 회복되는 건 무엇 때문일까? 오늘을 예로 살펴본다. 내 기력을 챙겨준 건  돼지불고기였을까? 아님 청안 미용실 원장님의 친절함이었을까? 아님, 윗집, 아랫집 동네 언니들과의 친근대화였을까? 아님 무의식적으로라도 끊임없이 드리는 기도였을까?


그런데 아무래도 오늘은 은유 작가의 정확한 자기 상태 인식과 그에 대한 적확한 묘사로 공감과 감탄을 불러오는 그녀의 아름다운 문장들이지 않았을까 싶다. 


사실 난, 노벨 문학상이 발표되던 10월 10일에, 중대 결심을 했었다. 기력이 다 빠져나갈 만큼 일에 치이면, 중국드라마라는 피안의 달콤한 도피로 날 달래곤 했었는데... 이제부터는 전 세계가 인정한 대한민국의 문학 세계에 풍덩 빠지기로 말이다.  


마침 그때  스스로 힘내는 거에 제동이 걸렸음을 시인할 수밖에 없었던 참이라 우리 문학이 내 충전기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아니 내게 젖과 꿀을 공급해 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역대 노벨 문학상 작품들도 읽고 싶어졌다. 내 밖에서 나를 이끌어 줄 동아줄이  돼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을 품고서. 우물 안의 개구리 탈을 벗고, 마늘 다 먹고 웅녀가 된 곰으로의 탈바꿈을 시도하면서... 그 은근과 끈기를 밑천 삼아서 매진해 보자고 나를 다독였다.


문학에 눈뜨는 일은 회의에 눈뜨는 일이고. 회의에 눈뜨는 일은 존재에 눈뜨는 일이라고 들 한다.


그런데 도대체 무엇 때문일까? 왜 나는 뒤늦게 문학에. 회의에 눈뜨고 싶어진 걸까? 왜 갑자기 탈을 바꾸고 싶어 졌을까? 무얼 얻고자 하는 걸까? 인생 황혼녁에 새롭게 씨 뿌려 가꿀 시간이 남아 있기나 할까? 새로운 수확을 기대할 수 있을까?


존재적 탐구는  진행해 왔던 차라 더 이상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믿고 있었다. 왜냐하면, 난 정말 예사롭지 않은, 강인한 자아를 지녔다고  확신하고 있었으니까. 비록 겉모습이 초라하고 상처투성이 같이 보였을지라도 내 영혼은 부서지지 않았고 내 의지도 꿈도 전혀 빛바랜 흔적을 보이지 않았으니까.  난  굳이 위로라는 걸 필요로 하지 않았 별로 회의할 줄도 몰랐다.


다시 말해 삶의 겉모습은 바닥을 치고 있는데 내 속은 여전히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단단한 심리 방패막으로 보호받고 있다고 믿었다. 


그러다 최근 일련의 경험들로 인해  믿음에 회의가 일어났다. 내가 혹시 내 상처에, 내 고통에 불감증인 것은 아닐까 하는.


무지 고통스럽다는 대상포진을 내가 앓고 있던 걸 난 알아차리지 못했고, 한 달 내내 콧물이 줄줄 흐르는 감기를 달고 살면서, 입술이 부르트고 딱지가 앉는 그 긴 시간 동안, 약국에도 병원에도 가지 않고  그냥 일만 했으니까.


내 선택이었으니까 누구에게도 불평할 수 없다는 명제 아래 내 책임이라는 자의식으로 나 조차도 나를 돌보지 않았던 거다. 아니 내가 나를 내팽개쳤던 거다.


그래서 감히 내게 명령한다. 갈팡질팡, 허둥지둥 부산스레 살아온 날들을 접고 천천히 진짜 나로 살아가라고. 나를 놓치지 말라고 말이다. 밉든 곱든 내 생각과 내 언어로 내 몸짓으로 매 순간을 지나라고.

 

그러면서 새롭게 부각된 질문을 명료화한다. 나에게 정직하게 투명하게 대하는 건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는 걸까? 나를 귀하게 대우하면서 사는 건 생각에서언행에서 또 관계에서도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행해야 하는 걸까?


답을 얼른 찾기는 쉽지 않을  듯하다. 그래서 이 질문들은 내 속에서 맴돌며  구하는 작업을 계속 수행케 할 거로  믿어진다. 2살 아가의 표정을 상기시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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