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독한 감기 몸살 탓에 며칠 동안을 몽롱한 상태로 헤매다가 기어코 사고를 치고 말았다. 지난주 화요일, 앞집 혜경씨에게 환불해 줘야 할 30만 원을 갑자기 갚아주고 싶다는 조급한 마음이 생겼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라는, 어슴푸레한 저녁 무렵에 동네 농협 ATM에 현금을 인출하러 나갔다. 늘 지름길 삼아 다니던 그 길, 여기저기에 안전 고깔콘이 세워져 있었다.
그중 사이가 좀 벌어진 곳을 골라 들어갔다가 옥외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을 칠 뻔했다
놀라서 허둥대며 일어나려는 그 사람과 다행히 눈이 마주쳤던 나는 반대 방향으로 급히 핸들을 꺾어 차는 건물 아래쪽 계단을 들이박고 멈췄다. 혼비백산해 달려 나온 현장 주변 건물 내 사람들과 함께 "사람은 다치지 않았으니, 그나마 얼마나 다행이냐"는 이구동성의 말로 위로받으며 사고처리를 위한 순서를 밟았다. 내게 무슨 일이 또 일어난 건지 현실감은 별로 없이 아찔하기만 했다. 공중에 부유하려는, 아득한 몸과 마음을 끄집어내려 지금 여기 현실에 붙잡아 놓고 땅바닥에 발을 굳게 디디도록 했다.
넉 달 전 비슷한 사고를 내고 다시는 규정 속도를 위반하는 일은 하지 않겠다 작심하고 조심조심 운전했건만 또 다른 복병에 걸려 더 큰 사고를 낸 거다.
속도는 지켰으나 지름길로 가려다 이렇게 된 거다. 한 치 앞을 바로 보지 못하고 멍청한 짓을 이렇게 반복하다니. 으휴~~ 몇 달 동안 죽어라 고생하고 번 돈을 사고 처리에 쏟아부어야 될 거 같다. 자꾸 헛일하는 것 같아 슬슬 약이 오르기 시작한다. 누구에게인지도 모른 체.
꿈과 현실 간의 거리가 점점 멀어지는 거 같다. 이 둘은 대부분 따로 놀다가 아주 드물게 같이 어울리는 거 같다. 작가가 되고픈 내 꿈은 막연하지만 오래된 거다. 이 꿈이 점점 내 현실과 따로 노는 거 같다. 꿈이 망상이 되어버리는 건 아닌지 슬슬 노파심이 일어난다. 작은 단점들이 점점 확대되어 커다란 약점이 되어 버리면서 말이다.
진부한 표현이나 일반화된 구절로 내 생각이나 언행을 묘사하는 걸 난 몹시 꺼렸다. 그러나, 나만의 언어로 나의 실체를 드러내려는 욕망은 나의 제한적 어휘력, 그리고 서툰 언어 구사력과 끊임없이 충돌했고 조심스럽게 고개 드는 내 문학적 소망을 가차 없이 꺾어 놓곤 했다. 그만큼 나만의 언어 형성은 지난하다.
난 피해자의 관점에서 이루어지는 비판적 사고나 글에 동일시가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부장적 시스템에 별로 피해의식이 없어서일까? 아님 내 인생은 나의 선택에 대한 결과일 뿐이라는 게 너무 명확하게 내게 각인되어서일까?
하여간, 나는 조심성이 모자란다. 사람도, 사물도, 상황도 잘 살피지 못해 피해가 막심하다. 난 근본적으로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다. 그건 아무래도 천성인 거 같다. 엄마는 아기 때의 내가 얼마나 순하게 누구에게나 방긋방긋 웃어줬는지에 대해 자주 언급하셨었다. 그래서 이름을 순덕이라 지었다고 하시며. 낯가림이라는 말이 내게는 낯선 단어다.
한편으로는 어느 누구도 내 뜻과 어긋나는 걸 요구하거나 명령하지 못하게 했다. 은쟁반에 흐르는 옥구슬 같은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내 목소리에 대한 사람들의 천사) 나는 그렇게 대차게 굴었다.
나를 규제할 수 있는, 나에게 명령 내리는 일들을 감히 성공적으로 수행한 어른이 없었다는 게 행운인 동시에 불행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이 특징은 내 인생 성격과 과정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임에 틀림없다.
최근 새로운 각도로 내게 시선을 던져 얻은 또 다른 발견이 있다. 나의 내면은 순전한 신앙과 강한 의지력으로 구성된 단단한 방패막 속에서 온전히 보호받고 있는 줄 알았다. 내 가치들과 신념들이 그 방패막 속에서 말랑말랑함과 부드러움을 유지하고 있는 줄 알았다. 그랬는데 아닌 거 같다.
그 방패막은 실상 내 육신과 정신의 표피층으로, 겹겹이 쌓여 딱지가 앉은 상처들이 돌멩이로 치환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일어났다. 나는 그 돌멩이의 매끄러움에 속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는지?
이런 회의감은 난생처음이다. 어쩜 난 너무 이른 나이에 행복 없이 사는 훈련을 어쭙잖은 시 읽기와 책 읽기를 통해 실행해 왔는지도 모를 일이다. 행복에 목매지 않고 행복하게 사는 법을 이미 어렸을 때 깨달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아무래도 뜻밖의 이 방향전환은 한강 작가의 노벨 문학상 때문 같다. 처음으로 5.18 광주 항쟁을, 세월호 침몰을, 4.3 제주 사태를 좀 더 깊이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고 싶다는 바람까지 생긴 걸 보면. 넓고 깊은 그 여파는 한참을 더 두고 살펴봐야 될 듯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