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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김홍재 Sep 13. 2021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는 실수

재택근무를 고집해야 하는 이유

팬데믹을 계기로 재택근무가 짧은 시간에 널리 확산되었습니다. 물론 팬데믹 이전에도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시도하는 회사가 여럿 있었지만, 조직의 효율성에 문제를 제기하며 제대로 자리잡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외에서는 이미 2000년대 중후반부터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시행하는 회사가 많았고, 10년이 넘게 효율적인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위한 연구와 실험을 꾸준히 해왔습니다. 또한 그러한 시도를 통해 발견된 시행착오와 단점들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을 끊임없이 고민해왔습니다.


우리나라의 기업이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적극적으로 도입한 것은 2020년이었고, 이유는 팬데믹 상황에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해외의, 특히 유럽과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2000년대 중반부터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도입한 배경에는 우리가 겪은 상황과 완전히 다른 이유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비자발적으로 재택근무를 도입했다면, 해외의 금융회사들은 자발적으로 효율을 높이기 위해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선택했고, 발견된 문제점에 대해서는 기술적으로 주로 IT 기술의 도움을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해결하려고 했습니다.


1.  2009년 미국, 탄소배출량을 줄이기 위한 작은 시도


2009년 근무하던 회사의 본사가 있는 미국 동부 뉴저지에서 파견근무를 해야 했습니다. 태양광 발전, 풍력 발전, 연료전지와 같이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다루는 미국인 상사인 피터를 처음으로 만날 기대를 안고 뉴저지 헤드쿼터에 출근했습니다. 하지만 피터는 주로 재택근무를 하는 중이었고, 가끔 사무실에 나와 일하는 패턴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파견근무를 시작한 후에 일주일이 지나고 사무실에서 피터를 처음 만나 재택근무를 하는 이유에 대해 들었습니다. 헤드쿼터 소속의 피터와 일하는 대부분의 부하직원은 유럽과 아시아에서 근무하고 있고, 미국 본사에 소속된 부하직원도 모두 미국 전역의 다른 도시에 근무하고 있어서 사무실에 매일 출근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 상황에서 피터는 적극적으로 재택근무를 하기로 결정했고, 매일 출퇴근을 위해 왕복  40마일(약 64킬로미터)을 운전하면서 발생시키는 탄소 배출량을 저감 시킬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신재생에너지 분야를 담당하는 미국과 유럽의 부하직원에게도 적극적으로 재택근무를 권하기 시작했습니다.


신재생에너지 보험상품을 개발하는 임원인 피터를 통해 재택근무를 시작하는 직원이 점점 늘었습니다. 물론 소수 직원의 재택근무 전환으로 대단한 양의 탄소배출 저감을 이룰 수도 없고 지구온난화 방지에 큰 기여를 했다고 볼 수는 없지만, 지금까지 10여 년 동안 피터와 직원들이 적극적으로 재택근무를 선택하고 10여 년 동안 감소시킨 탄소배출량은 결코 적지 않을 것입니다.


2. 2012년 스위스, 워라밸이 이유


2012년 스위스 회사에 일하는 동료는 해외 출장이 잦은 편이었습니다. 일 년에 절반 이상을 해외 출장지에서 근무하는 편이라 사무실이 있는 스위스의 도시 취리히에 머무는 시간보다 그렇지 않은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그 동료의 아내는 취리히에서 한 시간 이상 떨어진 다른 도시에서 제약회사의 연구원으로 이직하게 되었고, 동료는 상사에게 먼저 재택근무가 가능하겠냐고 묻고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잦은 출장으로 사무실 출근이 많지 않아 동료의 일은 대부분 원격으로 수행하고 있었고, 아내의 회사가 있는 다른 도시로 가족이 이주하고 그곳에서 동료는 재택근무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도시로 이주한 뒤로, 동료는 분기별로 있는 팀 개더링과 유닛 아우팅에 참석하여 함께 일하는 팀원들을 만나기로 했습니다.


재택근무의 이유가 가족의 이주였던 사례입니다. 워라밸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에 먼저 재택근무를 제안한 것은 동료였고, 동료의 업무 능력을 팀에 필수적인 것이라 생각한 팀장은 동료의 재택근무 제안을 적극적으로 수용하였습니다.


3. 2014년 싱가포르, 사무실 공간의 효율적 활용


싱가포르 오피스는 근무하고 있던 재보험회사의 아시아 지역본부 역할을 하는 중요한 위치에 있었습니다. 그래서 싱가포르에서 근무하는 동료들은 아시아 각국으로 출장을 다니는 일이 빈번했고, 사무실에는 항상 출장 중인 동료들로 인해서 빈자리가 많았습니다. IT 기술이 발전하면서 출장 중에도 호텔이나 공항 라운지에서 일을 해야 할 때에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업무를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때마침 사무실 이전 계획이 있었고, 새로운 사무실의 공간 배치(floor plan)를 계획하면서 80개 정도의 워크스테이션(큐비클과 파티션으로 구분된 1인 업무 공간)만 만들기로 했습니다. 당시 싱가포르의 아시아 본부에서 근무하는 직원은 대략 100명 정도였습니다.


해외 출장이 많은 싱가포르 사무실의 직원들 때문에 사무실 책상은 항상 절반 정도는 비어있는 상황이었고, 회사에서는 그런 상황을 고려하여 소속된 직원 100명보다 적은 80개의 워크스테이션만 만들기로 결정하였습니다. 그리고 지정된 자리가 없는 자율좌석제를 도입하였습니다. 


직원들보다 더 많이 출장을 다니는 싱가포르 사무실의 임원들도 출장 중일 때는 자신의 오피스를 언제든지 회의실로 사용할 수 있게 했습니다. 내부 시스템을 통해 출장중인 임원의 오피스를 회의실로 예약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변경하는 작업을 거쳤습니다. 덕분에 이사를 하면서 회의실의 숫자와 회의실로 사용되는 면적도 크게 줄일 수 있었습니다.  


기업은 절대적으로 이익을 추구합니다. 매출을 높이는 방법으로 이익을 높일 수 있지만, 현명하게 비용을 줄이는 방법으로도 이익을 늘일 수 있습니다. 오피스 임대료가 비싼 싱가포르에서는 재택근무와 원격근무가 가능한 상황에서 직원의 수보다 적은 80개의 워크 스테이션을 만들고, 자주 비어있는 임원의 방을 회의실로 예약하여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택하면서, 사무실 면적을 줄이고 임대료를 절약하는 방법으로 기업은 이익의 증대를 꾀할 수 있었습니다.


4. 2015년 홍콩, 급격한 매출 상승기에 활용한 재택근무


싱가포르만큼 오피스 임대료가 비싼 홍콩의 금융 브로커 회사는 급격한 매출의 상승기를 겪었습니다. 새로 영입한 영업 임원이 규모가 큰 계약을 성사시켰고, 몇 달 사이에 직원의 수가 두배로 증가하게 되었습니다. 임대료 협상을 위해 사무실을 다년간 사용하기로 계약을 해둔 상황이라 바로 이사를 하기 어려웠고, 사무실이 위치한 홍콩섬의 센트럴과 가까운 지역에 딱 맞는 사이즈의 사무실을 구하는 것도 쉽지 않았습니다.


회사는 넓은 사무실로 이사를 할 때까지 꼭 사무실 출근이 필요한 부서와 재택근무를 해도 좋은 부서를 구분하였습니다. 그리고 재택근무자를 선별하는 과정에서 사무실이 위치한 홍콩섬과 거리가 먼 지역에 살고 있는 직원에게 우선적으로 재택근무를 할 수 있도록 배려하였습니다. 홍콩섬에 거주하고 있는 직원들은 출퇴근이 쉬운 편이지만, 신계지구(New Territory)나 디스커버리 베이(Discovery Bay) 지역에서 출퇴근하는 직원들은 출퇴근을 위해 배를 타야 하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재택근무를 적절하게 결정하고 시행하고 회사는 당장 직원이 두배로 증가하는 상황에서도 효과적으로 비즈니스를 수행할 수 있었고 나중에 사무실 이전을 한 이후에도 적극적으로 재택근무를 시행하고 있습니다.




팬데믹 상황에서 2020년에 우리가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시작하게 된 이유와 많이 다른 이유로 여러 글로벌 기업은 재택근무와 원격근무를 도입하여 시행하고 있었습니다. 지금보다 IT 기술이 발달하지 못했던 10여 년 전부터 재택근무를 시행하면서 처음에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재택근무를 돕는 IT 소프트웨어의 수준도 지금보다 미흡한 점이 있었고, 재택근무에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방법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글로벌 기업들은 발견되는 문제점과 시행착오를 꾸준히 분석하면서 재택근무와 더 나아가 유연근무제도를 발전시켜오고 있습니다.


팬데믹으로 인해 강제로 재택근무를 도입한 2020년 한국에서는 잘 준비된 조직과 그러지 못했던 조직은 차이를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잘 준비된 조직은 팬데믹으로 인해 재택근무를 해야하는 직원의 멘탈 관리를 돕는 아이디어를 고민하는 앞선 회사가 있었습니다. 재택근무자의 심리적 퇴근을 돕는 아이디어를 제공하고 필요한 경우에는 전문 심리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였습니다. 영상회의와 메타버스 공간에서 업무를 할 때 필요한 매너와 효과적인 커뮤니케이션 스킬에 대한 교육기회를 제공하였습니다. 잘 적응한 조직은 앞에서 이야기한 재택근무의 장점들을 흡수하면서 앞으로 팬데믹 이후의 상황에도 재택근무를 혼용할 것입니다. 그러면 유능한 직원의 워라밸을 보장해 줄 수 있고, 이는 직원의 높은 생산성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반대로 준비되지 못한 조직에서는 재택근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높아졌다는 인터뷰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런 조직에서는 팬데믹 상황이 지나면 다시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는 실수를 저지를 가능성이 높으며 재택근무의 장점들을 놓치기 쉬울 것입니다. 2020년부터 비자발적으로 경험했던 재택근무를 통해 발견한 재택근무, 원격근무, 유연근무의 장점을 잘 활용한다면 조직은 높은 생산성을 확보하고, 워라밸을 보장받은 직원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도출해낼 가능성이 높아질 것입니다.   


몇몇 실리콘밸리 빅테크 기업들이 결정한 영구적인 재택근무보다는 주를 이루는 재택근무와 부수적인 출근이 혼합된 하이브리드 형태의 근무 방식을 먼저 도입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도입 이후에도 변화하는 상황에 대응하는 요소들을 파악하여 우리 조직에 맞는 방법과 IT 도구를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습니다. 실리콘밸리에는 실리콘밸리의 비즈니스와 문화에 맞는 방식이 있고, 한국에는 우리 기업의 비즈니스 목표와 문화에 더 잘 맞는 방식이 있습니다.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는 실수를 피하고, 앞으로는 필수라고 생각하는 재택근무, 원격근무, 유연근무의 형태를 혼용한 하이브리드 업무 방식에 필요한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그리고 휴먼웨어에 대해 다루고자 합니다. 회사와 직원, 그리고 HR 전문가, 기업문화 및 조직개발 연구자가 알아두어야 할 요소들을 찾아 생각해 봅니다.


세줄 요약 

'부분 재택근무 + 유연근무'는 일의 미래

팬데믹 이전으로 돌아가는 실수를 막아야

우리 조직에 맞는 방식을 찾기 위해 시행착오를 분석하고 조정


2022, 9월 신간, <굿 오피스> - 몰입을 만드는 업무 공간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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