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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obin 김홍재 Sep 20. 2021

Contingency Plan 매뉴얼

귀찮아도 매년 모의 훈련까지 해야 하는 이유

아프가니스탄 한국대사관에 고용되었던 아프간 직원, 그리고 그 가족들이 우리 공군 비행기를 타고 입국했습니다. 드물게 생길 수 있는 불행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아프간 출신 특별기여자들을 도울 수 있는 우리 공군의 작전 수행능력에 뿌듯함을 느낄 수 있었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서울에 일하고 있는 우리나라 사람들도 고국을 탈출한 아프간 특별기여자들과 똑같은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신분으로 여겨지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외국기업들은 아프가니스탄에서 일어난 상황과 비슷한 상황이 한국에도 발생할 수 있다고 가정하고 비슷한 탈출 계획을 세우고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외국계 기업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나라에 있는 미국이나 유럽 회사들은 우리나라에서 전쟁이 발생하는 상황, 그리고 지진이나 태풍과 같은 자연재해로 인해 정상적인 비즈니스를 영위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자국민 임직원뿐만 아니라 고용된 한국인 직원과 가족까지 해외로 대피(evacuation)시킬 계획을 세워둡니다. 기업의 비즈니스가 단절되어 영업에 손실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그리고 한국인 직원의 가족까지 탈출시켜주는 것은 회사의 비즈니스를 위해 일할 직원의 심리적 안정을 확보하여 신속한 탈출에 동참을 유도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체적인 사례를 들자면, 우리나라에 국지전이 발생해서 언제든지 전쟁 상황이 확산될지 알 수 없는 긴급한 상황에서 한국인 직원들은 고용주인 회사의 국적 대사관의 지시에 따라 시내 모처에 소집됩니다. 물론 동거하는 가족도 동반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슈퍼 태풍이나 지진으로 안전이 확보되지 않고 보건 상황이 악화되는 경우에도 마찬가지로 Contingency Plan이 작동됩니다.


Contingency Plan이 작동했을 때, 1차 집결지는 유명 호텔의 주차장이거나, 규모가 큰 공영 주차장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1차 집결지 주차장에서 서울공항으로 직원과 가족들을 데리고 가는 버스를 탑니다. 이 버스는 탈출을 유도하는 대사관이나 회사가 준비합니다. 인천공항이나 김포공항이 아니라 군사공항인 서울공항으로 퇴로를 마련하고 매뉴얼에 남기는 이유는 비상 상황에서는 군사공항이 해외로 대피를 위한 항공기의 접속이 더 용이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런 Contingency Plan은 매년 검토하고 수정하고, 모의 훈련(Contingency Drill)을 합니다. 대사관과 비상연락망도 매년 확인하고 업데이트를 하고, 대사관에서는 비상시에 즉시 활용할 수 있도록 직원 및 가족의 개인정보 이용에 대한 동의도 받아둡니다.


이쯤 되면 드러나지 않지만 우리나라의 현실도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을 탈출하기 위해서 특별기여자들이 버스를 타기 위한 장소로 집결하고 우리 공군의 군용기를 타고 파키스탄 이슬라마바드 공항으로 탈출하는 모습과 거의 똑같다고 볼 수 있습니다. 외국기업이 우리나라 상황에 맞게 만들어 두는 매뉴얼에 따르면 1차 집결지에서 버스를 타고 서울공항으로 간 뒤에 외국 대사관이 준비한 비행기를 타고, 중국 베이징이나 일본 후쿠오카로 비행하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대피한 직원들은 베이징이나 후쿠오카에 마련된 사무실에 도착하는 즉시 업무를 하게 됩니다.


반대로 우리나라와 가까운 도쿄에서 지진이 발생하거나, 베이징이나 홍콩에 소요 사태가 발생하는 경우에 외국 기업은 현지 직원과 가족들을 한국으로 대피시키고, 한국 사무소나 근처에 마련된 임시 업무 공간에서 일본과 중국에서 철수한 직원들이 일을 계속할 수 있도록 도움을 줍니다. 모두 Contingency Plan으로 매뉴얼화되어 있고 매년 검토와 수정을 거치고, 모의 훈련을 해둡니다.


그리고, 이러한 비상탈출 계획은 기업이 자발적으로 비용을 지출하는 경우도 있고, 일부 선진국에서는 해외에서 비즈니스를 하는 기업은 비상상황에서 현지 직원과 가족까지 탈출시켜야 하는 일을 기업의 의무로 규정하고 법제화시키는 유럽의 국가도 있습니다.


직원의 가족의 안전을 배려하는 정책과 노력은 높은 직원몰입(Employee Engagement)을 유도하는 데에도 도움이 됩니다. 심각한 자연재해나 전쟁과 같은 극단적인 상황에서도 직원을 배려하고 안전을 책임지려고 하는 회사의 준비와 노력은 직원에게 안정감을 주는 방법이 될 것입니다. 꼼꼼하게 Contingency Plan을 잘 짜두는 일은 회사를 위해서, 그리고 직원과 가족을 위해서 보이지 않아도 긍정적인 직원몰입을 유도할 수 방안과 정책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Contingency Plan을 세우고 모의 훈련을 하는 것은 기업에서는 어차피 해 두어야 하는 업무의 하나이자 의무이며, 궁극적으로 회사에 도움이 되는 일로 소홀히 해서는 안 되는 필수 항목입니다. 그리고, 꼼꼼하게 최대한의 노력으로 만든  Contingency Plan은 직원의 심리상태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일입니다.


사실 심리적으로 기능적으로 직원의 직원몰입(Employee Engagement)을 조직에서 원하는 수준으로 확보하기는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좋은 제도(소프트웨어)와 환경(하드웨어)을 갖추는데 많은 비용을 들이고, 연구를 하고 교육을 통하더라도 직원몰입설문(Employee Engagment Survey)에서 지수를 높이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습니다. 직원과 가족의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회사가 꼼꼼한 계획을 가지고 있다는 것은 직원몰입을 높이기 위한 방법으로 적극적으로 활용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른 기업보다 조금 더, 그리고 글로벌 스탠더드에 가까운 수준으로 꼼꼼하게 다듬어 마련하는 노력으로 직원과 가족에게 감동을 줄 수 있고 심리적 안정감을 가져올 수 있는 일입니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회사들은 우리나라에서 영업을 시작할 때, 주로 여의도나 광화문에 오피스를 오픈합니다. 오피스를 광화문에 두는 외국계 금융회사는 여의도에 서브 오피스를 하나 더 마련해서 항상 비워둡니다. 항상 비워두는 서브 오피스이지만, 긴급한 상황이 발생했을 때 전기만 켜고 들어가면 평소처럼 업무를 할 수 있는 수준으로 준비를 갖춥니다. 오피스가 있는 광화문에 전기, 교통, 통신, 수도, 가스 시설과 같은 기반 유틸리티에 문제가 생기거나, 폭우, 집회 및 소요사태 등으로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직원들이 출퇴근을 하기에 위험하거나, 출근을 하더라도 정상적인 업무 활동에 지장을 초래하는 상황들이 있었습니다. 그런 경우에 회사는 신속하게 여의도에 있는 서브 오피스로 출근을 결정하고 단절 없이 비즈니스를 수행하기 위해 다른 로케이션에 서브 오피스를 마련해 둡니다. 물론 거의 사용할 일이 없는 서브 오피스임에도 적지 않은 비용을 고정적으로 지출하고, 위기 관찰 단계가 상향되면 사용할 수 상황을 관찰하고 서브 오피스를 유지, 관리합니다.


거래처로 일했던 유럽의 금융회사는 이런 서브 오피스를 서울에 하나 더 유지하고 있지만, 비상 상황이 발생해서 서브 오피스를 구동시키는 일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럼에도 Contingency Plan에 서브 오피스 관련한 항목들을 두고 매년 점검하고 있었습니다. 비상 상황이 발생하면 금융시장은 요동치게 됩니다. 그런 경우에 즉각적인 대응을 하지 못하면 금융 기업은 짧은 시간에 큰 손실을 입을 수 있고, 반대로 매매를 잘 해낸다면 위기 속에서 큰 이익을 기대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상 상황에서 주식, 환율, 채권 금리의 변동성은 크게 확대되기 쉽고 그런 위기 상황에서 짧은 시간이라도 거래가 단절되는 상황을 회피하기 위함입니다. 비즈니스의 단절로 인해 놓치는 이익이 서브 오피스를 유지하는데 들어가는 비용보다는 크다는 확신이 있고, 비상상황에 대응하는 일은 금융회사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평판관리(Reputation Management)와 위험관리(Risk Management)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비상 상황에 우왕좌왕하는 것보다 잘 준비된 매뉴얼대로 조직이 행동하기 위해서 지출하는 비용은 다른 어떤 고정비나 변동비 항목보다 가치 있는 일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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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시내의 오피스 빌딩을 살펴보면 유난히 외국계 금융기관이 많이 입주한 빌딩들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리고 주로 내진 설계가 우리나라의 기준을 초과하는 수준으로 안전하게 설계된 건물인 경우가 있습니다. 외국 금융기관들은 서울의 크고 작은 오피스 빌딩 중에서 내진 설계 수준이 높은 빌딩들의 리스트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메인 오피스나 서브 오피스 중에서 하나는 내진 설계 기준이 높고, 내진 설비(주로 빌딩 아래에 고무로 만든 수십 개의 기둥 위에 지은 건물, 지진 충격을 완화시키는 무거운 추가 달려있는 건물)를 갖춘 빌딩에 사무실을 마련합니다.


역사가 길고, 지금도 성공적인 비즈니스 모델을 가진 글로벌 기업들은 경험을 통해 Contingency Plan이 필요한 이유를 잘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정말 드물게 발생하는 위기 상황에 잘 대응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면 전쟁, 자연재해, 팬데믹과 같은 비상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비즈니스를 잘 수행해 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잘 준비된 Contingency Plan은 덤으로 직원들에게 긍정적인 심리적 효과를 만들어내는 방식으로 작동합니다. 비상 상황에도 주어진 업무를 해낼 수 있는 직원은 안정적인 수입원에 대한 기대감이 직원과 가족에 대한 심리적 안정 장치가 되어주기 때문입니다.




이번 팬데믹도 비상 상황이었습니다. 서브 오피스를 마련해두거나, 대피를 고려해야 하는 비상 상황과 다른 유형의 Contingency Plan이 가동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잘 준비된 조직의 직원들은 이미 수년 전부터 IT 기술에 대한 이해도가 높았고 활용 능력 또한 갖추고 있었습니다. 팬데믹 재택근무 첫날부터 영상회의와 클라우드 서버를 잘 활용하면서 재택근무를 하면서도 기업의 비즈니스 활동을 잘 수행해 내고 있습니다. 팬데믹이 예상보다 연장되고 있는 상황에도 기업은 재택근무자의 업무 매너를 교육하고, 재택근무로 인한 동료들과의 심리적인 단절을 확인하고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도 생각해 내고 있습니다. 영상회의만으로는 단조로울 수 있는 원격근무 상황에 가상의 공간으로 출퇴근하면서 동료와 상사를 만나는 메타버스 가상 오피스를 열고 예상보다 길어지는 팬데믹 상황에 대응하는 노력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새롭고 창의적인 비즈니스 기회를 발견하는 기업도 있고, 민첩하게 변화를 줄 수 있는 조직은 매출의 급증이라는 즐거움을 누리는 회사도 있습니다.


반대로, Contingency Plan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재택근무 상황에 잘 대응하지 못한 조직에서는 구성원의 스트레스 지수가 높아지기 십상이고, 비즈니스에도 부정적인 영향이 발견됩니다.


우리나라가 언제 전쟁터가 될지, 몇 년 전 포항 지진보다 강력한 지진이 언제 발생할지, COVID-19보다 힘든 팬데믹이 어떻게 발생할지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는 일입니다. 외국 기업은 우리나라에서 자국 대사관과 협력하여 대피 계획을 세우고, 서브 오피스를 갖추는 노력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번 팬데믹을 거치고 나면 매년 검토하고 수정하는 Contingency Plan에 ‘IT literacy (IT 기술에 대한 이해도와 활용 능력)가 높은 뛰어난 직원(Tech-savvy)을 확보’하는 항목을 새로 추가할 것입니다. 평소에 효과적이고 효율적인 영상회의 스킬과 매너를 익혀 두고, 비대면 상황에 맞는 마케팅 방법을 연구해 두고, 메타버스와 같은 새로운 업무환경에서 나오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놓치지 않는 방법으로 세부 사항을 추가할 것입니다.


Contingency Plan을 꼼꼼하게 준비하고, 해마다 모의 훈련을 하는 일에는 많은 연구와 시행착오, 그리고 크고 작은 비용의 지출이 필요한 성가신 일입니다. 이러한 비용 지출은 당장 기업의 비즈니스 활동에 도움이 되지 못하고 해마다 지출만 발생시켜 고정비용에 부담이 되는 요소입니다. 그렇지만, 매년 변화하는 상황에 잘 대응하지 못한다면 회사의 비즈니스 상황은 악화되고, 직원은 지쳐갈 수밖에 없습니다. 직원이 지치거나 안전에 위협에 느끼는 상황에서는 기존의 업무에 대한 성과와 효율도 낮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위기에서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찾을 직원의 창의성과 에너지는 더욱 발현되기 어렵습니다.  Contingency Plan을 만들고 매년 한 가지씩 보완하고 수정하는 노력을 이어갈 때, 위기를 극복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세줄 요약

귀찮아도 컨틴전시 플랜을 만들고 모의 훈련까지 꼼꼼하게 

매년 한 가지씩 수정과 보완

위기에 잘 대응하는 조직은 위기 속에서 기회를 찾는다. 


2022, 9월 신간, <굿 오피스> - 몰입을 만드는 업무 공간과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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