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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음이론 Dec 18. 2021

6-4. 나의 자리

외상센터에서 쓰는 무서운 단어 중 몇 가지가 있다.


'고령',  '다발성 장기부전'


고령이라는 단어가 붙은 환자와 다발성 장기부전이라는 단어가 붙은 환자는 생존율이 확 떨어진다. 특히나 간, 콩팥 이런 장기의 손상은 우리 몸을 버티기 힘든 극한의 상황으로 몰고 가기 일쑤다. 지금의 할아버지처럼.

어느 정도 상태인지 이제 충분히 인지를 했고, 굳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더는 예상하지 않기로 했다. 다만 삼촌에게 어떻게 전달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이론아, 보호자 면담은 하긴 할 텐데 먼저 가서 잘 설명드려라. 그게 낫지 않을까 싶다"

"네. 무슨 말씀인지 알겠어요. 일단 TICU(외상중환자실)로 올리실 거죠?"

"그래야지. 올라가서 수혈 충분히 하고... 버텨주셔야 되는데. 피곤할 텐데 고생한다"

"어쩔 수 있나요. 며칠 좀 밤새죠, 뭐"

"그래... 얘기 좀 나누고 들어오시라고 해. 정리 마무리해놓을 테니까"


밖으로 나가는 문을 쉽게 열지 못했다. 정리가 되지 않은 채 겨우 문을 열었을 땐 삼촌뿐만 아니라 많은 친척분들이 와있었다. 마치 나에게 듣고 싶은 말이라도 있는 것처럼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내 얼굴을 향했고 그 순간 시큰한 코 끝을 참아내려고 애썼다. 지금 입을 떼면 울음이 왈칵 쏟아질 것만 같아서 30초 정도 입을 꾹 다물며 침묵을 유지했다. 식구들은 침묵의 시간으로도 어떤 상태인지 인지했다. 그리고 삼촌은 겨우 첫마디를 뗐다.










"고생했다"

식구들도 덤덤이 끄덕이며 침묵을 유지해나갔다. 나는 아직 이런 상황을 감내할 수 있는 평정심이 갖춰지지 않았고 진정하는 데에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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