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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an 02. 2024

인간의 기본선

[오늘도 나이쓰] 9

참 오랜만이다. 혓바늘이 다발성으로 생긴 게. 새해 첫날인 어제는 급기야 검색을 해서 병원을 다녀왔다. 그래도 난생(?) 처음 공휴일 병원 대기 화면에 진료 순서가 두 번째였다. 우리 집 가까이에 있다가 폐업하고 그곳으로 옮겨간 낯익은 젊은 의사분이 혼잣말로 그런다. 와, 야, 뭐 이렇게 많이 생겼지. 아, 저기 일단 마스크부터 하시고요. 가지고 태어난 구강 구조와 유전적 빌리루빈 덕에 혓바늘이 자주 생긴다. 부모님들의 성화에 큰 병원에 가서 정밀 검사를 받아 본 적도 있다.


8일간의 한국 여행을 돕고 밴쿠버 식구들을 우여곡절 끝에 보낸 그날 저녁부터다. 이번 혓바늘의 원인은 크리스마스 전후로 출퇴근을 하면서도 서울-부산을 왕복하는 거리를 움직인 게 가장 큰 원인이지 싶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기를 씹다가 살짝 깨물었던 부위가 시초였다. 언제나 크고 작은 사건은 그렇게 시작된다. 윗입술과 아랫입술이 연결되는 부분이 찢어지면서. 그런데 오랜 경험에서 혓바늘도 생기고 아무는 과정이 꽤나 명확하다.


입속 안 어딘가가 까끌해진다. 공기 같았던 입속에 이물감이 시작된다. 그때 무심하면 일이 커진다. 커진다는 건 상처부위만이 아니다. 시간도 길어진다. 그 시간 내내 혀는 항상 상처 부위를 탐색하고 상태를 뇌에게 전달한다. 더 깊어졌다. 혀끝이 지나쳐가는 흐름을 따라 몸속 모든 신경이 늘어났다 쏠렸다 한다. 많은 이들이 비통해하는 앞에서 허겁지겁 통닭을 뜯어먹던 이들이 내 앞에 수없이 많이 건들거린다. 집어등 같은 불을 밝힌 현대 도시 문명에 도사리는 야만성,. 인간성을 파괴하는 폭력성이 느껴진다. 동시에 그 순간 어떤 잡념도 나를 흔들지 못한다. 혓바늘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효과다.       


호흡, 음식 섭취, 언어를 만들어 전달하기 위해 쉴 새 없이 움직이는 혀는 알아서 절정의 상처 부위에 가 닿는다. 눈만 살짝 감으면 상처가 넓어지고 깊어진 정도가 확연히 머릿속에 그려진다. 하얗게 패이기 시작한 주위가 정상적인 주변의 부위가 구분되게 선홍빛 라인이 선명해진다. 가장 절정이다. 부위에 따라서는 이런저런 극단적인 약을 바르기 조차 어려울 때가 있다. 이번에는 그 상처가 처음 시작한 부위가 아물면서 혀 위아래 전체로 총을 쏘듯이 옮겨가는 양상이다. 물을 충분히 마시고 꿀을 가끔씩 머금으면 초기에 진압이 가능할 때가 간혹 있다. 양배추를 얇게 썰어 씹어주는 것도 개인적으로는 큰 효과가 있다. 그 덕에 입 대신 위 상태가 더 좋아진 게 분명하다.


호흡이나 음식 섭취는 조절이 가능하다. 코가 있고, 양을 줄이고, 덜 자극적인 것을 찾으면 된다. 그런데 말이 문제다. 언제나 말이 문제다. 혓바늘이 없을 때도 생겼을 때도. 특히나 출근해서 퇴근할 때까지 하루 종일 말을 해야 하는 입장에서는. 하지만 혓바늘이 가져다준 긍정적인 두 번째 효과는 그때 발휘된다. 말을 천천히 하게 된다. 발음과 표현에 신중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쏟아내는 말의 양이 줄어든다. 그렇게 강제로라도 입을 닫게 된다. 입을 닫으면 생각이 시작된다. 그렇게 신비로운 나의 육체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된다.

 

혓바늘이 알려주는 세 번째 팁. 시간이 약, 이라는 진언의 실천이다. 혓바늘이 생긴 시간(기간) 동안에는 오히려 혓바늘에 신경을 쓰지 않게 되는 거다. 아주 편안한 자세로 책을 더 읽는다. 눈을 더 감는다. 입을 사용하지 않는다. 일부러 더 푹 자고 일어난다. 그 시간들이 한 시간, 두 시간, 하루, 이틀 쌓이는 동안 미지근한 물을, 꿀물을 자주 마시기만 해도 기다리면 가능하다는 믿음이 생긴다. 내 몸의 모든 감각이 여전하다는 믿음을 일깨워준다. 그렇게 혓바늘은 나에게 인간의 기본선에 대해 넌지시 말을 건다.  


혓바늘이 나를 지배하는 동안 새벽에는 조금 더 신중해진다. 물양치를 할 때. 거울 속에는 어제의 나, 그때의 내가 들어차 있다. 어느 날은 화가 나 있고, 어느 날은 울고 싶어 한다. 또 어느 날은 세상을 다 가진 듯 여유만만하기도. 그럴 때마다 날카로운 도구로 나를 마구 대하듯 한 모습을 나에게 사과한다. 조심스럽게, 충성스럽게 물양치를 시도한다. 입속 구석구석을 미지근한 물이 휘감아 돈다. 여전히 물방울 하나하나가 느껴진다. 물방울 크기가 다 다르게 느껴진다. 아직이다. 그런데 거미줄처럼 혀 전체를 물이 휘감는다. 낫고 있는 거다. 그 느낌에서 야만과 폭력, 본능으로부터의 해방을 가져다준다.


역설적으로 나 자신과 나의 인생이 가치 있다는 것을 충분히 느낄 감각을 원래 가지고 있었다는 것을 알려준다. 그 감각을 통해 스스로 만들어 낸 나의 의도를 차곡차곡 의미와 실천을 썰어 넣은 시간과 정성, 기다림, 현저히 줄인 말속에 쌓아 둔다. 그러면 이룰 수 있다는 내 능력에 대한 흐릿했던 믿음이 혓바늘이 아물면서 더 또렷해진다. 그렇게 다시 선홍빛 혀는 나의 자존감의 정체를 극명하게 일러준다. 도구적 이성의 시대에서도 나의 진실성의 실천 여부가 삶의 차이를 낳을 수 있다고. 혓바늘에게마저도, 아니 혓바늘에서부터 그 진실성을 실천하는 연습을 시작하라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부터 2~3일 뒤면 사라질 혓바늘. 그렇게 상처는 아물어도 (기억은) 마음에 남는다. 새로운 해, 첫날부터 혓바늘 덕에 올해를 어떻게 살아내야 할지 힌트를 조금 더 얻어낸 기분이다. 까불지 말고 인간의 기본선을 신중하게 정성껏 갈고닦으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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