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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24. 2024

봄처럼 명랑하게

[오늘도 나는 감탄寫] 19

무의식적인 관념이 언제부터인가 나의 신념이 되고 그것이 내 삶의 기준이 된다. 대단하게 공정하고 정의로운 것까지는 아니더라도 사회적으로 서로 합의한 묵시적 인간의 기본선에서 스스로 그렇게 느끼며 만족하는 기준말이다. 대부분의 경우에는 표면적으로 평정심을 갖고 있는 듯 하지만 자신 스스로 꽤나 단호한 기준 한 두 개는 다 있기 마련이다.


그 이유는 자기 삶의 여정 - 물리적인 시간상 길고 짧은 건 중요하지 않다 - 에서 몸으로 체득한 경험치가 신념이 되었기 때문이다. 성공했던 경험치보다는 크고 작은 실패의 그것에서 합리적으로 정해진 나름의 기준이다. 물론 그 기준이 절댓값으로 타인은 물론 정서적으로 가까운 이들에게 강매(?)되는 경우가 아니라면 별 문제는 없다. 자기 내면의 기준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정해진 내 삶의 기준이 흔들릴 때가 있다. 그것도 얼렁뚱땅 아주 명랑하면서 손쉽게. 그게 어떤 경우인가 보면 대부분 정서적으로 매우 친밀하게 느끼는 가까운 지인의 역시 명랑한 상황을 맞닥 드린다면 그렇다. 자녀 교육이 그렇고 나의 외모가 그렇고 내가 가진 것들의 크기와 양이 그렇다. 맞다. 우리는 절대 영상 속에 등장하는 근육질의 배우나 자연 미인이라는 그녀를 내 삶의 경쟁 상대로 삼지는 않으니까. 


뭐 물질적인 탐닉이 아예 없거나 정신적인 향락이 고도의 경지에 다다른 사람이야 다르겠지만. 나 같은 사람은 절대 흔들린다. 이것저것 읽으면서 텍스트로 정리를 하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면서 요동과 빈도와 정도가 인간적으로 줄어드는 것 같기는 하지만 여전히 팔랑거린다. 마음이 팔랑거리면서 명랑하게 살려는 거라고 스스로 최면을 거는지도 모른다. 이 신념이 맞나, 내 기준이 너무 극단적인가 하는 자기 의심을 계속하면서. 


거기에서 출발한 게 2월 중순부터 3월 초까지 이어진 약 3주간의 미니멀 대잔치였다. 모든 게 새것인 우리 집 근처 아파트에 입주한 40년 지기 친구네가 작년 여름 이사를 온 이후 몇 개월간 아내와 나의 마음속에 묵혀 두었던 암묵적인 합의 메시지. 20년 가까이 된 아파트에 십 년 넘게 살고 있는 '우리 집은 안 쓰는 물건들이 많아도 너무 많아'. 


그렇게 2주 연속으로 금토일의 시간들을 할애해서 우리 집 거실을 되찾고, 부모님 댁 거실을 되찾아 드렸다. 부모님은 거실이 환해진 계기로 표정이 한결 맑아지셨다. 더 작고 더 오래된 아파트 안에 은퇴 전 시골에서 이고 지고 살던 (거의) 모든 것들을 버리시고셔야 한결 편안해졌다. 거실을 되찾아 좋고, 그것을 우리 부부가 같이 해줘 더 좋다고. 너희들이 아니었으면 죽을 때까지 '이렇게' 살았을 거라시면서. 


무엇보다 거실에서 두 분의 사이가 훨씬 더 가까워졌다. 소파가 없어진 자리에 썬배드 스타일의 접이식 좌식 의자 두 개를 사드렸다. 그랬더니 딱 붙여 놓고 나란히 자주 앉아 계신다. 그 기운으로 2주 동안 두 번이나 잔칫상 같은 밥상을 차려 거실을 찾게 해 준 일꾼들을 거둬 먹이시는 것만 봐도 마음이 워낙 가벼워지고 즐거워지신 거였다. 실제 7전 8기의 시행착오 끝에 법조인이 된 생명력 강한 봄 같은 친구 덕분이다. 


봄맞이 미니멀 대잔치는 거실 이후 자연스레 옷장으로 옮겨갔다. 아내와 나의 옷장에서 나온 수많은 옷들, 부모님의 옷장에서 나온 엄청난 양의 옷들을 무려 8개의 김자용 대형 비닐에 종류별로 분류를 해서 아름다운 일을 해주시는 분들한테 기부를 했다. 그리고 딱 일주일 뒤 무려 29만원의 기부영수증이 아내 앞으로 날아왔다. 


이제 나의 옷장에는 겨울옷 몇 벌과 주 5일 출근할 때 입는 옷들이 요일별로 미리 세팅(?)이 되어 대여섯 개의 옷걸이에 걸려 있을 뿐이다. 침대에 누워 마주 보이는 텅 빈 옷장을 볼 때마다 마음이 너무 가볍다. 아침마다 옷을 순서대로 (아무런 망설임 없이) 챙겨 입는 게 꽤나 의외로 시간과 마음을 덜 쓰게 되어 너무 편안하다. 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좀 더 이야기를 하고 싶을 정도다. 

 

옷장으로 이어진 봄맞이 미니멀 대잔치는 책장으로 잠깐 갔었다. 하지만 책은 하루 이틀 단박에 할 수 없는 그런 존재이다. 기부하고, 버리고, 남기고를 결정하는 데는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일단 (우리 집 가구 중 가장 고가로 구입하고 지금껏 아내도 나도 가장 잘 소비, 아니 투자한 품목이라고 공감하는) 책장은 시간을 넉넉히 두고 다시 도전하기로 하고 남겨두었다. 


그렇게 아내의 미니멀은 완벽하게 성공한 듯 멈췄다. 하지만 나의 눈에는 자주 쓰는 데 가려지거나 신경 쓰지 못한 정밀한 곳들이 눈에 들어왔다. 먼저 비둘기들이 다시 둥지를 틀고, 비와 바람을 피하느라 배설물이 그득한 에어컨 실외가가 놓여 있는 작은 방 창문 아래 테라스. 스탠딩과 벽걸이 에어컨을 이사 오는 친구한테서 패스해 받으면서 실외기가 두 개가 되었다. 


작은 방 외벽과 위아래로 나란히 올라앉은 실외기 사이의 공간이 비둘기 가족들에게 아늑한 공간, 안전한 공간이 되었던 거다. 그러는 동안 쌓이고 쌓인 배설물과 나뭇가지들이 뒤엉켜 딱딱하게 굳어 버렸다. 비가 오는 날까지 기다려야 했고,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꽤나 많이 내리던 새벽에 배설물들을 끓인 물로 해체한 후 집어 내고 쓸고 물로 닦아 냈다.  


여기 못지않게 찌든 때가 항상 모여드는 곳인데, 매일 쓰는 것인데 관심을 두기 쉽지 않은 곳이 세 군데나 더 있다는 게 눈에 들어왔다. 막혀야, 정상 작동이 되지 않아야, 하필 바쁜 아침 출근 준비할 때 그런 상황이 벌어져야 들여다보게 되는 곳들 말이다. 


바로 매일 사용하는 두 개 화장실의 배수구와 환풍구 그리고 (거의) 매일 사용하는 드라이기다. 언제나 잘 돌아가는 듯한 환풍구는 크기만 작았지 거의 낡은 노포의 그것과 별 차이가 없는 지경이었다. 분해해서 물로 닦아내는데도 먼지가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을 정도로 먼지 기름기가 가득했다. 미지근한 물에 락스 세제를 풀어놓고 한참을 불린 뒤에야 새것처럼 이물질들이 떨어져 나왔다. 


샤워실 바닥 한쪽 구석에 자리한 배수구는 총 세 개. 커버부터 속 필터까지 겹겹이 총 4개로 분리된다. 하나하나 분리해서 락스세제로 충분히 불린 후 수세미로 닦아냈다. 다시 합체해서 물을 틀어보니 물 흘러 내려가는 소리가 한여름 계곡에서 떨어지는 바윗물소리처럼 통쾌하게 우렁차다. 새벽에 우리 집을 빠져나가는 물소리만 들어도 정말 명랑한 기분이 들 정도다. 


마지막으로 분해한 게 드라이기. 뭐 분해라고 할 것도 없다. 드라이기 두 개의 모양은 다르지만 원리는 같다. 모터를 감싼 부분에 작은 구멍이 촘촘하게 뚫린 망이 있다. 검은색 드라이기는 플라스틱망, 나중에 아내가 하나 더 구입한 분홍색 드라이기는 철망이다. 그 맘속으로 공기가 빨려 들어가면서 공기 중에 있지만 언제나 눈에는 보이지 않는 먼지들이 달라붙어 있다. 


참 무심했다. 구입한 지 얼마가 된 지도 모르지만 한 번도 망 청소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다. 마치 얼마 전 수업용으로 구입한 패드에 딸린 필기용 전자펜처럼. 갑자기 화면 위에서 글씨가 마음대로 써지지 않았다. 수업 중에. 그런데 아이들한테 물어보니 펜도 충전을 해야 한단다. 그러고 나서 보니 패드 뒷면에 펜이 착하고 달라붙게 만들어 놓은 공간이 있다는 것이 그제야 눈에 들어왔다. 


듣고 보니 당연한 건데, 무의식적으로는 자그마한 펜 정도는 언제나, 어느 때나 써져야 했던 거다. 이게 말이 되는가. 의식해야, 마음이 생기고 마음이 생겨야 내 감각에 들어온다는 진리를 너무 쉽게 잊고 사는 건 아닌가 했다. 자그마한 망 하나도, 펜 하나도, 매일 주차장에서 출퇴근을 위해 기다려주는 이영모 씨(20모 ****) 도 다 적절한 시기마다 적절한 관리가 필요하다는 것인데 살다 보면 자주 잊는다. 


내 몸도, 내 마음도 마찬가지인 것을 봄맞이 청소를 하면서 느낀다. 그런 내가 내 몸과 마음입장에서 보면 맹랑하기 짝이 없을 거다. 아끼고, 사랑하고, 지켜내려 애써도 서서히 낡아갈 텐데. 언제나 가장 좋았을 때의 경험치만 가지고 몸과 마음을 함부로 부려먹으려 하니 말이다. 내 것이지만 항상 옳은 상태이거나 그래야 하는 게 아니라는 것을 쉰 세 번째 봄 덕분에 조금은 더 알게 되는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분명 봄은 참 운 좋은 계절이다. 무엇보다 순서가 그렇다. 모든 게 숨어들고, 가라앉고, 일단 미뤄두는 냉한 겨울뒤에 있어서. 다들 그렇게 고대하고 기다려 주니까. 봄은 스프링이다. 스프링해야 봄이다. 자기 형태로 다시 복원이 되어야. 작년 봄처럼 다시 새싹, 다시 꽃망울, 다시 바람, 다시 햇살로 어김없이 되돌아와 준 봄 덕분에 나도 다시 명랑한 스프링이 될 수 있어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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