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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Mar 31. 2024

진심본색 쉬운사람

[오늘도 나는 감탄寫] 20

어제, 집 앞 산책로. 딱 한그루의 잔가지에 막 튀겨져 나온 팝콘같은 벚꽃이 소복하게 솟아나 있었다. 올봄 처음 보는 봄이다. 바람에 묻은 봄기운에 겨우내 숨겨두웠던 봄을 이제야 자신감있게 드러내는 것처럼. 겨울 다음이어서 봄은 억수로 운이 좋은 계절인 게 분명하다. 


오늘이 벌써 새해(?) 3월 마지막날. 우리 반 스물여덟 명의 열여덟 청춘들이 3월 한 달을 고3으로 살아냈다. 나이만 고3이지 몸이 기억하는 공부 습관, 생각 습관, 생활 습관대로 아등바등거리는 것도, 그토록 바라던(!) 고3이어서 각오를 다지고 몸과 마음을 애써 단단한 시도를 하려는 것도 모두 다 고3스럽게 자연스럽다.  




                                             '두려움과 배움은 함께 춤출 수 없다'



자그마한 꽃망울같은 6-3-3학년제의 마지막 학년인 12학년들을 보면서 다시 한번 다짐하게 된다. 아주 오래전 나에게 들어와 자리 잡고 있는 문장인데, 올해는 3월이 시작하자마자 유독 더 강하게 다가왔다. 삼십 년간 가르치는 일을 했던 메리코글리아노는 같은 제목의 책 속에서 진정한 배움은 '인간적이고 진실된 만남'에서 솟아난다고 강조한다. 


아이들을 스물일곱 해 동안 만나오던 여정 중간 즈음에 만난 이 문장은 나의 소중한 변곡점이 되었다. 그때 나는 스스로 두 가지의 과제를 만들어 내 삶에 적용해 보려고 시도했고, 지금도 진행 중이다. 그것은 '쉬운 어른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본색이 진심인 어른 사람이 되는 것'. 


두 가지를 스스로 설정하기 이전에는 어려운 사람, 애매하게 착한 본색마저 극구 감추는 사람으로 자리매김하기 위해 부단히도 애를 썼다. 내 (신념, 고집, 욕구와 같은)것을 잘 지켜내고, 때로는 없는 것도 있는 척하느라 억지를 부렸다. 통제와 회유, 일방적인 설득의 기제를 주로 동원하면서. 나를 왜곡하면서. 



                                                             

                                            '난 본색이 진심으로 참 쉬운 사람이야'



하지만 지금은 그러지 못한다. 인간적으로 진짜 만나야 서로 도움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확신하기 때문에. 아이들은 아이들이라지만 다 안다. 표현하지 않고,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고, 표현해 본 경험이 거의 없고, 마음껏 표현할 여유가 부족하기 때문일 뿐이다. 


그런 아이들을 위해 매년 3월 안에는 나의 두 가지를 아이들에게 고백을 해 오고 있다. 그 고백이 올해 아이들 앞에서는 조금 더 빨랐다. 고3이 된 지 불과 사흘째 되던 첫째 주 수요일 스물여덟 명의 아이들 앞에서. '내가 쉬워 보이니?' 하고 물었다.


매년 이 질문을 던질 때마다 학기 초 긴장감에 더해 아이들은 일제히 아주 낯설어하다 못해 눈동자가 오히려 두려움에 파르르 떨리는 게 느껴지기도 한다. 대부분 대답을 못하는 건 물론이지만 통제에 익숙한 대다수 아이들의 표정에서는 두려움조차 찾아볼 수 있다. 


올해는 이미 우리 반 대답 장인이 된 벼리가 단박에 '아닙니다'하고 소리친다. '조심하겠다'는 대표성을 띤 목소리다. 사람은 업무적인 게 아니라면 상대하기 편안한 사람에게 말을 건다. 부탁을 하고 당부를 한다. 기대를 한다. 십대들은 더 솔직하다. 불편하면 다가오지도 드러내지 못한다. 무엇보다 배우려 하지 않는다. 


자기 이야기를 하고 싶고 도움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은 편안한 사람이다. 편안한 사람은 친절하고, 눈을 잘 맞추고, 상황 설명을 잘해주는 사람이다. 한마디로 쉬운 사람인 거다. 말 걸기 쉽고, 눈 맞추기 쉽고, 이해와 용서를 구하기 쉬운 사람. 나는 그렇게 최대한 쉬워 보이려고 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타고난 디엔에이가 인상으로 드러나는 게 가장 큰 요인이다. 무슨 생각에 빠져 가만히 있을라치면 쉽기는커녕이다. 내가 쉬운 사람이 되겠다고 제안하면 아이들은 의심의 눈초리로 의아해한다. 처음에는. 한 명 한 명 시간을 갖고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그제야 마음을 열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한다. 


쉬워 보이지 않으려고 하고 본색을 드러낸다는 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이용당하지 않고, 들키지 않으려는 것이다. 원래 내가 지니고 있는 쉬운 본색을. 연약하지만 옅은 진심을 가진 자신을. 진심은 통한다는 말을 믿지만 결코 그렇지 못했던 크고 작은 지난 경험이 제대로 지나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그 경험이 조금이라도 씻겨 내리기를 바랄 뿐이다. 누구나 다 아는 듯한 본색이란 게 사실은 '진심'이지만 표현이 서툴 뿐이라는 것을 조금이라도 배웠으면 한다. 그렇게 오늘도 살아내느라 애쓰는 서로에게 쉬운 존재, 진심이 담긴 본색을 공유하면서 서로가 위로가 될 수 있는 존재가 되었으면 하는 거다. 자기만의 봄에서 흐드러지게 피어날 에너지를 가득 채웠으면 한다. 



두려움은 강력한 힘을 지닌 잠재된 정서다. 두려움은 부모가 자식의 성장과 발전에 대해 올바르게 사고하지 못하게 막는다. 그리하여 많은 사람들이 학교가 정해진 표준에 근거해서 학습성취를 이루지 못했다는 평가를 할 때, 의문을 던질 능력을 상실하게 만든다. 두려움에 질린 부모들은 다시 아이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고 두려움에 빠진 교사들이 좌지우지하는 교실로 돌아온다. 그 교사들 또한 두려움의 노예가 된 교장의 감독 밑에서 애태우며 견디고 있는 처지임을 말할 것도 없다.... 부식성이 강한 두려움이란 놈은 인종과 계급을 초월한다. 가장 큰 공통분모는 부모들 자신의 과거 학습의 역사이다.

                                                 _ 크리스 메르코글리아노, <두려움은 배움과 함께 춤출 수 없다>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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