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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12. 2024

#다시 사랑을 시작할 때(1)

[오늘도 나이쓰] 40

새벽마다 밥 달라며 달려오는 아홉 살 코코. 얼굴 옆에서 뜨끈한 콧바람으로 흠, 흠 거리다 일부러 자는 척하는지 진짜 자는 건지를 정확하게 구분하는 순둥이 코코. 일부러 잔다 싶으면 냅다 저의 가슴 위로 뛰어올라 엉덩이 댄스를 치기 시작합니다. 피곤해서 뒤척인다 싶으면 조용히 다시 엄마옆으로 달려갑니다.


태어난 지 두어 달 때 우리 가족을 만났습니다. 열열곱이 된 따님 덕분이었죠. 따님한테서 엊그제 오후에 부재중 통화가 여러 통이 와 있었습니다. 순간, 물리치고 싶은 부정적인 느낌이 확 밀려왔습니다. 무심코 전화를 자주 하는 따님이라 한두 번은 있었지만, 제 요일별 수업시간표를 알고 있어서 연속 세 번, 네 번을 할 때가 없거든요.


어렵게 통화된 따님의 목소리는 피곤이 뒤섞인 울음을 내뱉고 있었습니다. 얼마 전 유치원 교사를 하겠다고 다짐한 따님. 어릴 적 다닌 유치원에서 하루 5시간 봉사활동을 시작한 첫날이었는데, 긴장된 피곤함을 씻어내듯 한없이.


봉사활동이 끝나고 바로 스터디 카페를 갈까 하다가 집에 왔답니다. 그날이 잇병 때문에 일주일이 늦어진 오빠의 입국일이었거든요. 공항으로 코코를 데리고 넷이 같이 마중을 갈 계획이었습니다. 따님이 집에 보니 코코가 짓지를 않더랍니다.


식구들이 들어오면 바람개비처럼 꼬리를 흔들고 반가워서 껑충껑충 뛰면서, 그 자리에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신난다는, 반갑다는, 어서 오라는 표현을 마구마구 하거든요. 그런데 뒷다리를 모으고 엉덩이에는 응가를 묻힌 채 엉거주춤 서 있었다고. 넓은 패드에 오줌 한두 번만 싸면 들어가지 않던 깔끔한 코코였기에 응가를 묻히는 일은 식구들이 집에 들어올 때 짖지 않는 것처럼,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거든요.


안 하던 짓 하면 어찌 된다고 하듯 하던 짓을 안 해도 불안합니다. 원래의 컨디션이 아니라는 것이죠. 생각을 할 수 있어 마음을 고쳐 먹는 (말 많은 사람의) 경우가 아니어서 더욱 불안했을 겁니다. 30도가 넘는 오후 3시 무렵에 더위에 에어컨 켤 생각도 못하고 코코를 안고 병원까지 달려간 걸 보면 말입니다.  


코코가 두어 달 되었을 때. 지금은 폐업하고 사라진 한 동물병원에를 다녔습니다. 거기서 만난 수의사는 아주 단호했습니다. 간호사도 없이 혼자 병원을 운영하던 40대 후반의 남자였죠. 사랑하는 생명체를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신념이 확고한 나머지 남매들 덕분에 억지로 반려인이 되려고 하는 우리 부부를 자주 다그쳤습니다.


'그건 안됩니다, 위험합니다,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릅니다.'는 말투였죠. 가끔 기분마저 상할 것 같으면서도 말은 다 맞아, 맞아하는 경계선에서 왔다 갔다 한 게 여러 번입니다. 지나고 나서 보니 그이의 영향으로 (역시 일찌감치 폐업한 어느 펫샵에서 붙어 있던 이름이 '징징이'였던) 코코가 성격이 순해진 것 같습니다.


동시에 사회성이 부족한 강아지로 아홉 살이 되었습니다. 감염의 우려 때문에 예방 접종 주사를 완료하는 수개월 동안 바깥으로 산책을 나가질 못했습니다. 산책 중에 지금도 다른 강아지를 보면 마구 짖는 이유입니다. 그냥 짖는 게 아니라 달려들려고 하다 돌아서기를 반복하면서 말이죠. 그래서 우리 집에서 목줄로 리드를 제대로 할 수 있는 건 저밖에 없습니다. 9년 가까이 대부분 저와 산책을 했죠.


얼마 전부터는 매일 산책을 나갔습니다. 일부러. 콩팥이 좋지 않아 몇 가지 약을 사료에 섞어 주는데 맛있어해서 밥을 잘 먹었습니다. 그래서 운동을 많이 해야 했거든요. 코코 덕분에 저의 산책량이 덤으로 늘어나는 것도 꽤나 좋았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코코가 다른 강아지를 보면서 8년 동안 짖었던 습관을 고치는 훈련을 하고 있었거든요.


코코가 서너 살 무렵. 어느 둘레길 산책로. 마주 오던 강아지를 보고 저는 얼른 코코 안았습니다. 먼저 강아지를 발견한 코코는 저에게 안겨져서 코브라뱀이 몸을 휘젓듯이 버둥거히며 짖었습니다. 보통 그럴 때는 상대방 견주는 얼른 지나쳐 가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는 게 저의 역할이기도 했고요.


그런데 그 아주머니는 가다 멈추고는 오히려 저와 코코에게 다가오는 겁니다. 그분의 강아지도 주인처럼 호기심 가득한 선한 눈빛으로요. '아저씨, 괜찮아요. 내려놓으세요. 안고 있으면 계속 그래요. 우쭈쭈, 우쭈쭈 하는 줄 알거든요'. 그렇게 처음으로 상대방 강아지를 만났을 때 가까이서 마주 보면서 대치 아닌 대치를 하게 되었습니다. 코코는 여전히 팽팽해진 목줄을 유지한 채 달려들까 말까를 재고 있었요.


'아저씨, 목줄 한번 바닥에 내려놓으세요. 아, 괜찮아요.  그러면 계속 짖을 거예요.' TV에반려동물 훈련사, 치료사들이 유명해지기 전이라 의아했습니다. 혹시 달려들어 사고라도 나면 어쩌나 싶은 생각에 안절부절못하는 저를 아주머니는 확신에 찬 차분한 목소리와 눈빛으로 안심시키기 위해 마치 기도하듯 말씀하셨습니다.


아주머니의 바람대로 코코 옆으로 잡고 있던 목줄을 떨구었습니다. '툭'하고. 얼른 근처 나무뒤로 가서 제 몸을 숨기는 척했습니다. 그랬더니 처음 보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마구 짖으면서 의기양양하던 코코가 뒷걸음질을 치면서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겁니다. 저를 찾는 거였죠. 그러다 제가 숨어 있는 큰 나무뒤로 목줄을 달달달 끌면서 달려오는 겁니다.


코코 마음이 툭 떨어졌던 겁니다. 뒤에서 목줄이 팽팽해질 정도로 든든하게 버티던 제가 (갑자기) 사라진 게 불안하고 공포스러웠던 겁니다. 그때 알았죠. 짖지 못하게 하는 방법이 이 훈련이구나, 하고. 하지만 그 이후로 실제 시도하지는 못했습니다. 그 아주머니처럼 먼저 마음을 내어주는 견주를 다시는 만날 수가 없었거든요.


신장약을 먹으면서 매일 산책을 해야 했던 몇 개월 전부터는 혼자 다시 '툭'하는 연습을 시작해야만 했습니다. 오래된 목줄은 땅바닥에 끌려 거칠해졌지만, 코코는 훨씬 짖는 빈도와 강도가 약해지고 있었습니다. 저도 혼자 산책을 하면서도 다가오는 다른 강아지들이 있는지 없는지를 덜 살피고, 있어도 좀 더 담대하게 '툭'하고 내려놓을 준비를 할 수 있었거든요.     


통화가 안되니까 막 더워지는 오후. 혼자 코코를 안고 집 근처에 다니던 병원으로 달려갔답니다. 코코를 잘 알고 있는 나이 많은 수의사가 온 김에 얼굴 좀 예쁘게 미용하자면서 무료로 다듬어 주는 여유를 부리면서도 육안으로 몇 군데를 살펴보더니 얼른 큰 병원으로 데려가라고 했답니다. 정밀 검사를 해봐야 할 것 같다고. 그 사이 저는 달려왔습니다.


따님과 통화한 후 달려오는 동안 제 마음이 그랬습니다. 불안과 공포. '툭' 떨어지는 느낌. 너무 일찍 '찾아온 거' 아닌가 싶은 생각을 하면서요. 코코가 콩팥이 많이 좋지 않다고 한 달 반전에 정밀 진단을 받았거든요. 조심, 조심해야 한다고. 반려인이 아닐 때는 전혀 느끼지 못했던 (사서 고생하는) 감정. 바로 그거였습니다.


하지만 어쩌겠어요. 선택한 사랑이니까요. (헤어짐을) 알지만 (지금은)모른척하면서 여전히 후라이드네, 양념이네 하면서 투닥거리고 사는 게 우리니까요. 맑은 눈동자에 포근한 가슴에 따끈한 온기에 내 마음이 덥혀지고, 차분해지고, 살고 싶어지는 그 사랑을 스스로 선택한 거니까요. 이렇다 저렇다 말 안 하는 네가 참 좋다,라고 식구들마다의 웃음의 고백과 울음의 하소연을 다 들어준 코코니까요.


옆자리에 앉아 연신 이곳 저곳에 전화를 하던 따님이 당일 검사는 어렵다, 밥을 먹고 오줌을 눈 상태에서는 검사 결과를 보기가 어렵다고 하는 병원에 애원을 하고 있었습니다. 1시간내 거리에서 유일하게 동물 MRI 검사가 가능한 곳이었다는군요.  지금 여기 병원인데, 소견서를 받고 있다, 응급 상황이라고 하신다, 제발, 제발 오늘 검사만이라도 하게 해 달라, 계속 애원했습니다.


따님을 쳐다볼 수가 없었습니다. 다시 연락해 주겠다는 병원 전화를 기다리느라 연신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따님을. 꽉 막힌 도로 위에서 마음이 생각으로 왔다 갔다 하는 사이 따님 폰이 울렸습니다. 언제나 무음이던 따님폰에서 처음으로 소리가 났습니다. '여보세요? 네? 네! 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그제야 따님 눈을 쳐다봤습니다. 코코가 마구 짖을 때 마냥 벌겋게 달아오른 따님의 눈동자는 그렁그렁하게 웃고 있었습니다. '아빠, 오늘 된데, 해준데, 가자,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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