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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14. 2024

다시 사랑을 시작할 때(2)

[오늘도 나이쓰] 41

(이 글은 https://brunch.co.kr/@jidam/2100에서 이어집니다)


..... 반려인이 아닌 분들에게 이 글이 아마도 '별 일'일 겁니다. 강아지 '한 마리'를 가지고 무슨, 하고 말이죠. 저는 그랬습니다. 아주 오래전 참여했던 컨퍼런스. 랜덤으로 꾸려진 팀에 팀장을 맡아 사회를 봐야 했던 저에게 유독 한 여교사의 표정, 말투가 영 불편했습니다. 낯빛이 어두웠고 퉁명스러웠고 눈동자가 벌겋게 충혈되기까지 한 상태였습니다. 점심 식사 후 다시 시작된 오후 일정. 각자의 관심 주제와 의견을 나누는 시간. 그 선생님 순서였는데, 말을 시작하지 못하고 왈칵 눈물을 쏟는 겁니다.


상황은 이랬습니다. 자신의 경력에 매우 중요한 인기 컨퍼런스에 참여해야 하는 전 날. 오랫동안 아팠던 고양이가 결국 죽었답니다. 참여를 억지로 해야 했기에, 죽은 고양이를 애착 담요에 싸서 냉동고에 넣어두고 온 거였더군요. 제 머리로는 그 슬픔을 나도 알겠다 싶었지요. 하지만 내면에서는 '참 별일이다.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라고 느끼는 저를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별 일'에 버금가는 일이 저에게 일어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반려동물 MRI 검사가 가능한 병원을 수소문하느라 월요일에만 세 번째 병원을 들렸습니다. 눈가가 벌겋게 달아오른 채 달려온 아내를 만났지요. 울음을 속으로 계속 삼키는 아내를 보면서 눈을 맞출 수가 없었습니다. 저를 보면 금방이라도 펑펑 눈물을 쏟을 게 분명하거든요. 어릴 때부터 반려동물, 이 아닌 '동네 개'를 싫어했던 아내옆에서 코코는 늘 잠들었습니다. 10년 가까이. '코코 없으면 안 돼? 알지'하며 사랑 고백을 수백만번은 했던 아내입니다. '아, 나도 코코처럼 살고 싶다'를 노래하던 어린 남매들이었습니다. 


몇 시간을 기다렸고, 갑작스럽게 120만원이 넘는 비용을 지불했습니다. 결과는 다발성 척추디스크 탈추증. 진심 어리게 친절한 수의사의 정성 어린 설명을 30분 넘게 들으면서 MRI 화면을 같이 봤습니다. 하얀색이 또렷한 다른 디스크에 비해 대여섯 개의 디스크는 검은색이 가까울 정도로 보이지 않더군요. 그러면 연골액이 말라 딱딱해진 상태여서 외부의 충격을 흡수할 수 없어 움직일 때마다 통증과 마비 증상이 지속된다고 합니다. 


직접적인 수술과 약 복용, 물리치료 등의 내과적 치료의 경계는 디스크가 척수 신경을 누르는 비율이라고 하더군요. 그 비율이 30~40% 사이라면 수술을 권한다고 합니다. 코코는 가장 심하게 돌출된 디스크가 누르는 신경 손상이 27%였고, 그다음으로 13%여서 수술과 비수술의 경계에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1회에 300~400만원에 달하는 수술. 수술 이후 약 1주일가량 입원하면서 재활 치료에 들어가는 비용이 약 100만원. 


수술보다는 내과적 치료를 시도해 볼 수 있는 상황이라는 수의사의 판단으로 반나절만에 뒷다리를 쓰지 못하는 코코를 조심하게 안고 늦은 밤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여전히 따듯했지만 통증에 연신 우는 코코를 데리고 돌아오는 길에 대형 철제 펜스를 구입했습니다. 수술보다 약보다 우선되어야 하는 치료법이 운동제한이라면서 넓이까지 그려준 수의사의 강력한 권고 때문에요. 


코코는 결국 우리를 만났던 10년 전 두 달 때처럼 커다란 용변 패드와 방석 하나가 들어찰 정도의 공간에 가둬졌습니다. 최소 한 달은 그렇게 해야 수술로 가지 않을 수 있다고 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어제 아내와 펜스 안에 갇혀 까만 눈동자를 껌뻑거리는 코코를 보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동물복지라는 개념조차 몰랐던 남매들 어릴 적 유행했던 펫샵 문화의 흐름에 남매들이 물들었고, 사랑스러운 표정으로 어린 생명체를 들여다보며 소중한 것을 아끼는 눈빛, 하지 말아야 할 것과 해야 할 것을 구분하는 손짓, 하기 싫어도 다른 생명을 위해 해줘야 할 것들을 신경 쓰던 어린 남매의 마음에 덩달아 철없던 우리 둘도 물들었던 겁니다. 그렇게 느닷없이 책임질 사랑을 무책임하리만큼 단박에 선택했던 겁니다. 


한참 나중에야 깨달았습니다.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었겠지요. 대량 생산 공장제 동물 유통 산업의 처절한 그늘을 말입니다. 연 30-40만 마리가 '생산'되고 매년 10만여 마리가 '재고'로 남는다는 것을. 그중 한 마리가 코코였다는 것을. 펄떡이는 심장을 단 생명체가, 눈빛으로, 촉감으로, 냄새로, 온몸으로 오로지 자신을 선택해 준 인간을 위해 사랑을 쏟아붓는 생명체가 쓰다 버리는 소모품처럼 더 작고, 더 어리고, 이쁘고, 이왕이면 적당한 '가격'에 거래되었다는 것을.  


그 사실을 뒤늦게 서로 다 깨달았지만, 사랑을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아니, 미안해서, 너무 미안해서 더 많이 안고, 아끼고, 먹였던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어릴 적 집에서 낳고 키우던 '개와 강아지'처럼 사람보다 강아지 엄마의 늘어진 젖무덤에 파묻혀 시도 때도 없이, 오랜 기간을 젖을 빨아먹던 강아지가, 인간 편하자고 강제로 거세당한 코코는 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구조적으로 미끄러운 아파트 거실, 인간을 위한 위험한 가구 위를 하루에도 수십번 오르내리면서 관절도 척추도 느릿하지만 꾸준히 손상되어 왔던 것일 테니까요. 다들 코코라고 부르지만 제가 코코를 부를 때 '타닥이'라고 부른 이유 중 하나입니다. 새벽 발코니에서 읽고 쓰고 있으면 어김없이 미끄러운 거실을 달려왔거든요. 똑똑한 척하기만 하는 한 인간이 발 구르는 소리가 미끄러지려고 약한 관절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모른 채 오히려 흐뭇하고, 반갑고, 평화로운 소리로만 해석했던 겁니다. 오늘도, 오늘도 소리를 마냥 기다리고만 있었던 겁니다.  


며칠 전 비상등을 켜고 정차한 차가 급하게 출발하고 난 뒤 도로가에 버려진 하얀 강아지를 뒤차가 제보한 뉴스를 봤습니다. 분명 아파서, 병원비가 부담되어서 버려진 것일 거라는 확신에 찬 많은 댓글들이 남의 이야기가 아니게 다가왔습니다. 다 큰 남매들은 다짐합니다. 좋아서 선택한 사랑을 지키기 위해, 사랑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이제부터 진짜 사랑을 다시 시작해야겠다고요. 제대로 안아주고 고백해야겠습니다. 코코한테 너무 미안하다고요. 너무 감사하다고요. 너무 사랑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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