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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Jun 05. 2024

#계란 삶는 동안만큼이라도  

[오늘도 나이쓰] 38

출근하는 아침마다 계란을 세 개 삶습니다. 아침으로 하나, 점심으로 하나 나머지 하나는 아내의 점심 도시락에 보탭니다. 밤새 냉장고에 있던 차가운 계란을 미리 꺼내 인덕션 위에 올려놓은 냄비 옆에 놓아둡니다. 조금이라도 바깥 온도에 적응해 뜨거운 물속에서 쉽게 갈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에서. 


인덕션 온도를 가장 높은 9로 맞춥니다. 냄비 속 물이 끓을 때까지 서서 기다리는 동안 천천히 뒤꿈치를 들어 올렸다 내립니다. 70개에서 100개 정도를 하면 물이 끓기 시작합니다. 집게로 조심스럽게 계란 개를 끓는 물속에 넣고 인덕션 타이머를 9분에 맞춘 후 온도를 7로 낮춥니다. 


새벽 발코니에서 나오면서 식탁 위에 올려 둔 휴대폰을 듭니다. 알람 어플을 터치합니다. 5분에 맞춰진 타이머가 켜집니다. 거실 책장 아래 펼쳐 놓은 매트 위에 올라 엎드립니다. 플랭크를 합니다. 처음 1분은 기본 플랭크를 합니다. 


두 번째 1분은 플랭크 자세에서 뒤로 뻗은 다리를 하나씩 번갈아 들어 올리기를 합니다. 그냥 버티기보다는 다른 동작을 하면서 움직여야 근육이 꿈틀거리고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안 다음부터 이어서 하는 동작입니다. 무조건 버티기는 쉽지 않죠. 싫죠. 지겨워 지죠. 희열이 큰 만큼 내가 나에게 실망하기도 쉬워집니다. 


한 다리에 5초씩 버티다 보면 1분에 6세트를 할 수 있습니다. 다리 하나만 바닥에서 살짝 떼어냈는데, 온갖 번뇌가 내 안에서 꽹과리 소리를 냅니다. 세 번째 1분은 배를 매트 위에 꼭 붙인 후 천천히, 천천히 코브라 자세를 합니다. 천천히 들어 올려 멈춘 후 온몸을 느끼는 기분이 아주 좋습니다. 다시 시작해 볼 자신감이 생깁니다.  


네 번째 1분은 눕습니다. 양쪽 다리는 직각으로 세웁니다. 천천히 엉덩이를 들어 올려 수직으로 만듭니다. 느리게 20회 정도를 하면 1분이 됩니다. 마지막 1분은 다시 플랭크 자세를 만듭니다. 이번에는 한 손은 앞으로 뻗고 다른 한 손은 온몸을 지탱합니다. 이 동작을 6번 반복합니다. 얼른 그만두고 싶은 동작중 하나입니다. 


세 개의 계란이 뜨거운 물속에서 익어가면서 날아오르다 부딪히는 소리가 들립니다. 도도도도도도도도록. 뜨거운 물을 부어내고 찬물을 가득 채워 저처럼 온몸이 뜨거워진 계란 세 알을 식혀주는 동안, 미리 손질해 둔 양배추 두부면을 슬쩍 볶아 도시락을 싸고, 남은 양은 접시에 담습니다. 아침입니다. 


찬물에 담가 둔 계란을 꺼냅니다. 하나는 자그마한 위생백에 담아 식탁 위에 올려두면 아내가 챙겨갑니다. 나머지 두 개는 껍질을 벗깁니다. 이 소리를 들으면 새벽밥을 이미 다 먹고 따님 옆에서 다시 잠들었던 타닥이가 어느새 식탁 밑으로 나와 늘어지게 기지개를 켭니다. 


새까만 눈동자와 콧등이 하얀 털 사이에서 정확하게 삼각형이 됩니다. 자그마한 삼각형안에 온 세상이 다 들어차 있습니다. 계란을 먹으러 나온 겁니다. 월요일 아침에만 계란 한 개의 3분의 1 크기만큼만 줍니다. 계란 하나는 제 도시락 통에 넣습니다. 점심입니다. 타닥이를 나눠주고 남은 3분의 2는 접시 위에 올립니다. 아침에 보탭니다. 


계란이 삶아지는 동안 넉넉한 뱃살속에 종잇장처럼 파묻힌 복근이 묻습니다. '마음대로 되는 세상이었다면 이 세상이 지금처럼 이렇게 되어 있지는 않지 않겠어? 만약에 그런 게 가능하다고 한들 그런 세상에서 살아가는 법은 알고 있는 거고? 내가 나를 밀고 나가는 원동력은 뭔데?'. 


차츰차츰 몰아쉬는 숨소리에서 들립니다. '지금껏 수영을 배운 적도 없으면서 만나는 물속마다 깊이도 모른 체 뛰어들었던 건 아니니? 내밀하게 나를 들여다보는 연습, 나에게 말을 거는 연습, 그 연습 과정을 기록하는 연습을 넉넉하게 해보지도 않으면서 말이야!'.


끊어질 듯 밑으로만 쳐지려는 아픈 허리가 그럽니다. ' 자그마한 열쇠 구멍으로만 들여다 보인 세상이 전부인지 알고 문을 열어 볼 시도조차 여전히 하고 있지 않은 건 아니고? 책과 산책 대신에 다른 이들의 가십거리에 빠져 들면서 쉬는 거라, 위로받는 거라, 잘 살아내는 거라며 내 시간을 남의 것으로 채우는 건 또 어떻고?'.


내 몸과 연결된 숫자가 늘어나도 상황에 따라 더 급해지고, 많이 방만해지고, 오히려 애매해지는 나를 발견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습니다. 그럴수록 인상은 애매한 미소뒤에 가려지고 있다는 것도 말입니다. 그렇게 다 괜찮은 듯 표현하면서 내부의 불안에 더 휩싸입니다. 나이가 들면 자연스레 지혜로운 사람이 될 줄 알았나 봅니다.  


계란을 직접 삶기 전에는 자신을 세심하게 들여다보지 않았습니다. 아니, 그 짧은 시간조차 나에게 내어주는 자그마한 습관이 없었던 겁니다. 혀를 먼저 달달하게 만들어 놓고, 눈과 귀를 현란하게 만드는 데 시간과 돈을 끊임없이 쓰면서 말입니다. 


그럴수록 더욱 크고 작은 욕망이 충족되지 않은 상태로 불만 속에서 살아가는 패턴이 반복됩니다. 인생이란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욕망이 나를 이끌고 살아가는 꼴이라는 지젝의 일갈처럼. 그러면서도 여전히 확신하는게 스스로 아이러니 합니다. 나이 잘 먹어간다는 테는 얼마나 지혜로운가에서 드러나는 게 분명하다고.


나무의 나이테는 나무가 잘려나가야 드러납니다. 여기저기가, 여러 군데에서 잘려 나가기 전에 지혜의 테가 스며 나오는 사람으로 살아내는 혜안을 내일도 삶아질 계란을 들여다보면서 다시 몸과 마음에 물어봐야겠습니다. 


저의 유일한 탁월함은 꾸준함이라는 것을, 꾸준함이 다라는 것을, 내가 나를 밀고 나가는 유일한 동력이라는 것을, 어김없이 새벽에서 아침으로 이어지듯 꾸준히 계란을 삶을 수 있는 것이 내 안의 평화라는 것을 이제야 좀 차분하게 알게 된 까닭입니다. 잊지 않고 기록으로 남기는 연습을 잃지 않겠다고 계란에게라도 먼저 약속g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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