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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13. 2024

정정당당하게 잘 하기

[노랫말싸미] 17

어느 순간 내게 들어와 남아 있는 아름다운 문장들은 두 군데에 나눠 저장되어 있습니다. 한 곳은 내 안 어딘가고, 또 다른 한 곳은 나를 둘러싼 세상 속에요.  


내 안 어딘가에 저장된 문장들은 처음 접했을 때 입속에서 톡톡 터지는 형형색색의 알갱이처럼 알싸했지만  흐릿해진 기억에 적어 둔 메모를 찾아야 다시 '아, 맞아. 이 느낌이었어'하는 문장들이죠.


반면 세상에 저장된 문장은 햇살만 느껴도, 바람만 불어도, 빗방울이 몇 개만 떨어져도, 그곳에만 서 있어도, 당신을 만나기만 해도 툭 하고 튀어나옵니다.


짧은 문장을 내뱉은 뒤 계속 음미하게 만드는 후자에 해당하는 문장(들)중 지금껏 제 마음에 남아 있는 명문장은 의외의 것입니다.


책 속에서 만나 내 안에 담긴 수많은 명언을 제친 문장은 오래전 억지로(?) 졸업시킨 꾸러기가 쌀로 밥 짓는 이야기만 해대는 제게 툭하고 내뱉은 문장입니다.


다른 학교에서 문제가 있어 퇴학되었다가 우리 반으로 편입한 복학생이었습니다. 학교에서 하루를 다 채운 날이 거의 없을 정도로 힘들어했습니다.


그러면서 어설픈 어른들보다 훨씬 더 유불리에 밝아 자신에게 손해 보는 행정적인 행동은 절대 없었죠.


다만, 한두 살 어린 학급 아이들 앞에만 서면 아가처럼 얼굴이 발그레해진다는 점이 때로는 귀엽기까지 하곤 했습니다.



'저는  주는 사람한테는 합니다'



한참 뒤 알았습니다. 이 말이 빈 말이 아니었다는 것을요. 지역에서 유명한 밥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는데, 무려 퇴학한 기간을 포함하면 2년 넘게 한 곳에서 일했다는 사실을.


어린 나이에 결코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다양한 이들 사이에서 막 굴리는 흔한 돌멩이처럼 이리 치이고 저리 밟히면서 보냈을 텐데요.


정말 돈 주는 사장님과의 사이에 '인정과 신뢰'가 형성되어야만 가능한 기간일 텐데 학교에서 시도 때도 없이 내비친 저항적인 태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았거든요.


그 아이가 졸업한 후 한참을 지나오면서 입시 시스템 안에서 이런저런 이유로 잘 적응하지 못하는 (그 아이와 비슷하게) 안타까운 아이들은 꾸준히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 아이처럼 한 곳에서 일관되게 한 가지 일을 해내는 아이를 본 적은 없습니다. 물론 그 아이가 내뱉었던 '잘한다'는 돈을 받지 못할 상황을 만들지 않겠다는 각오 정도였겠지만 말입니다.


비록 자기 계발이나 자아 성취의 수단으로 일을, 돈을 활용하는 계획까지는 없었더라도 (꽤나) 엄격했을 규정 속에서 정정당당한 노동을 했다는 점은 분명하니까요.


지금껏 만나고 있는 꾸러기들에게 '정정당당하게'라는 말에 제가 힘주고 있다는 사실을 아마 서른이 갖 넘었을 그 아이는 모르겠지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학교에서 어쩔 수 없이 한시적으로) 꾸러기 캐릭터를 선택한 아이들도 (바깥에서는 언제나)정정당당하고 게다가 잘하는 게 있다는 저의 믿음을 확신으로 만들어 주었기 때문입니다.


확신 덕분에 꾸러기들을 외면하지 않고 덜 괘팍하게 잔소리를 하다 보니 오히려 서로 존중하고 아끼면서 잘 지내는게 내 안에서 자연스러워졌거든요.


꽉 닫힌 마음에 살짝 벌어지기 시작한 틈으로 친절한 햇살도 부드러운 바람도 지지하는 온수가 드나들기 시작하면 말이죠. 꾸러기들이 감정 표현에 더 솔직하거든요. 사람을 기분 좋게 해주는 반응이 아주 순수하거든요. 인정받는 체험적 방법을 잘 알거든요.  


그렇게 더 벌어진 틈 덕분에 그 아이도 지금쯤은 돈 주는 사람한테 여전히 잘하면서, 사람들과 '마음'도 주고받고, '사랑'도 주고받는 따듯한 어른이 되어 가고 있기를 응원하는 마음이 한결 가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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