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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Tea Sep 20. 2024

원래 이래도 됩니다

[노랫말싸미] 18

올 추석은 세 번째 시도(?)만에 완벽하게 놀았습니다. 정말 계속 쉬었습니다. 오고 가는 길에 만난 교통 체증도 마음의 체쯩 전혀 없이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 각자의 삶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끝말 있기를 하고, 노래 선곡 DJ를 서로 하려고 티격태격하면서도 럭키비키를 외치고.


이번 추석 연휴의 놀 것과 먹을 것, 동선 모두 언제나 명절의 히어로인 아내에게서 출발했습니다. 아내가 처남과, 아내가 재수 씨와 함께 기획하고, 진행하고, 마무리까지 했습니다. 전 옆에서 그저 '그거 좋다, 괜찮다, 정말 좋다'라고 추임새만 연신 넣었습니다. 운전을 위해 허리 근력 강화 운동 연휴 전 내내 매일 했습니다.


저의 히어로인 아내 시점으로 친정, 시댁 부모님들은 모두 '기본파' 명절 세대였습니다.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당신들의 과거에 비해서는 '약소하지만' 기본적인 절차는 지켜야 한다는 생각이 마음보다 몸이 먼저 기억하고 있는. 그런 평범하게 어정쩡한 상태에 결혼 후 20년간 참가했었던 거고요.


친정에서는 이렇게 놀았습니다. 어머님 팔순 잔치를 겸해 장인어른, 처남네와 같이 서해안의 한 섬에서 1박 2일 펜션 놀이를 했죠. 너무나 외딴곳이라 모든 식구들이 밤 11시가 넘어서까지 노래, 노래 부르다 쓰러졌습니다. 다음은 노래 부르는 내내 손을 꼭 잡으신 어머님 장인어른 포함 아홉 명이 돌아가면서 불렀던 노래 제목입니다.


위대한 약속/안동역에서/카스바의 여인/땡벌/애상/찔레꽃/들국화 연인/빗속에서/신호등/노을빛 서해 대교/

홍연/그리움만 쌓이네/내 아픔 아시는 당신께/사랑하게 될 줄 알았어/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그래 늦지 않았어/언제나 그 자리에/라라라/기억속으로/흔들리는 꽃들 속에서 네 샴푸향이 느껴진 거야/사랑 two/어디에도/사랑아/혼자가 아닌 나/사랑하면 할수록/거꾸로 강을 거슬러 오르는 저 연어들처럼/사랑/이 밤이 지나면/사랑은 창 밖에 빗물 같아요/사랑은 유리 같은 것/그 아픔까지 사랑할꺼야



시댁에서는 이렇게 놀았습니다. 추석 당일날 근무신 아버지 일정 때문에 추석 전날 출발했죠. 우리 넷, 동생네 넷, 엄마아버지. 열명이 차 두대에 나눠 타고, 집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캠핑장으로. 출발하기 전 꾸러기인 초4는 '큰아빠'를 외치면서 와락 달려와 설 연휴 때처럼 안겼습니다.


이제 막 사춘기가 시작되었다는 중1 누나가 원래 그랬었거든요. 쭈뼛거리면서 멀뚱이 서 있었지만 저와 아내에게 먼저 손을 내밀어 잡아주었습니다. 참 따듯했습니다.


차와 사람들로 가득 찬 캠핑장에서 우리 열 식구를 위해 마련된(듯한) 자리는 가장 넓었고, 계곡물이 흐르는 실개천 바로 옆자리였습니다. 전날 밤샘 근무를 하신 아버지도, 새벽 도시락을 싸서 보내고 다시 새벽에 맞이하신 엄마도 '야, 야, 여기 참 좋다, 좋아'를 연발하셨습니다. 채수국을 끓이고, 동태 전을 부치던 벌건 얼굴들이 아니었죠.  


날은 뜨거었습니다. 장작불 앞에서 소고기-오리고기-돼지고기로 이어지는 총 7팩(이것도 장을 보는 아내한테 많다해서 2팩을 뺀 양입니다)을 동생과 번갈아 서서 굽느라 더 뜨거웠습니다. 그런데 전혀 힘들지 않았죠. 접시에 담는 족족 먹어주었기 때문이었죠. 입이 짧은 어린 남매들도, 양이 적은 엄마도 물러나지 않고.


엄마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말라한 아내한테 약속을 지켰다며 표고버섯이 큼지막하게 들어간 된장찌개, 산골에서 고모가 보내서 어쩔 수 없이 무쳤다는 산도라지 무침, 먹다 남은 게 있어서 그냥 막 부쳤다는 팽이버섯호박전, 즉석밥보다는 낫겠지 싶어 그냥 나오다 들고 오셨다는 오곡약밥을 십 인분이나 챙겨 오셨습니다.


삼 년 전. 처음으로 설에 차례를 지내지 않고, 대신 집에 모여 이것저것 먹기만 할 때 추석 당일 처음으로 근처 공원으로 나들이를 가 강변 잔디밭 위에 펼쳐 둔 그늘막에 누워 하늘을 올려다보시면서 엄마가 하신 말씀이 있었습니다. '내가 이래도 되나'. 칠십이 넘은 명절날에 하늘을 본 건 고사하고 눕는 건 생각도 못하고 전을 핑계 삼아 앉았던 엄마니까요.


자그마한 물에 몇 마리 풀어놓지 않았지만 미꾸라지를 잡겠다고 냉전 중이라던 아빠옆을 졸졸 따라다니며 한 시간 넘게 함께 한 열넷 사춘기의 표정은 핑크볼이 넘치는 해방감으로 비쳤습니다. 외할머니 팔순 잔치 이트로를 기획한다며 용돈으로 바리바리 사고 불고 붙인 짠순이 우리 따님은 웃느라 팔자 주름이 걱정이라 너스레였습니다.


당일 캠핑이었지만 저에게 안겨서 '큰아빠, 캠핑 처음 가'라고 신나서 소리 질렀던 열한 살짜리는 아빠랑 애써 잡은 미꾸라지 여섯 마리를 개천가에 무릎을 꿇고 고이고이 뿌연 흙탕물속에 다 풀어주었습니다. 그 모습을 몰래 찍다 들킨 저에게 오히려 머쓱한 표정을 지으면서 " '아빠가 차에 가는 동안 죽으면 어떡하지'라고 해서"라고 하며 짓는 미소가 천사의 그것이었습니다.    


저의 어린 시절 명절은 외삼촌이 사 오신 커다란 종합 선물 상자 안 오리온 밀크 카라멜처럼 두고두고 달달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죄를 짓지는 않았지만 주눅 들 듯 불편했고, 음식은 많았지만 먹고 싶을 만큼 맛있는 거 별로 없었고, 몰랐지만 반갑게 인사를 나눠야 했습니다. 항상 해야만 하는 의무만 있었고, 해도 된다는 허용은 없었습니다. 어리다고 취급하면서도 음복하라고 막걸리를 주시는 어른들의 아이러니가 불편했습니다.


각자 다 바쁘고, 힘들게 살다 모이면 언제나 잘 모르는 죽은 자들 이야기만 했습니다. 저와 동생에게 관심을 보이는 이는 (거의) 없었습니다. 무조건 '공부는 잘하지?'가 전부였고 그마저 저보다 낫지 않았던 동생은 친구들과 약속을 잡고 밖으로 돌았습니다. 산 자들이 죽은 자들을 챙기느라 아직 살아있는 사람들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기도 했습니다.


노래가 다 끝나고 잠들기 전. 백발의 어머님이 노래방 기기 앞으로 다시 나오셨습니다. 말씀하셨습니다. '저의 팔순 잔치를 이렇게 만들어 주시고, 함께 해주신 아드님, 작은 따님은 물론이고 특히 며느리, 우리 사위 모두 모두 감사합니다.' 그러시면서 우리 가족들에게 절을 하셨습니다.


한결 가벼워진 차보다 더 가벼워진 마음으로 7시간 만에 다시 엄마 아버지 댁 아파트 주차장에 다시 모였습니다. 그제야 열넷 소녀가 드디어 저한테 와서 안겨줬습니다. 그때 엄마가 아내를 뒤에서 안으면서 말씀하셨습니다. '00야, 네가 우리 집 빛이다, 빛!'.


외딴 섬에서 밤새 같이 불렀던 노래들을 보니 모두 다 '사랑하면 살겠다는 약속'을 하느라 부르질렀던 가 봅니다. 사는 게 빈틈이 없어 빛을 보지 못한 엄마. 어머니. 아버지. 장인어른. 이제라도 서로가 서로에게 낮에는 햇빛, 밤에는 달빛, 별빛이 쭈욱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 빛을 보면서 기다려지는 명절, 손잡고 싶은 친적, 안아주고 싶은 가족이 정말 좋은 것이라는 것을 아이들이 마음껏 느끼면서 우리가 되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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