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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02. 2024

내 안의 천사

[다들 그렇게 살아요. 뻔한 이유로 행복하게] 14

['다 들'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는 바로 당신이고 나이다. 당신이 나이고 내가 당신인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뻔한 이유로 뭉근한 행복을 바라는 당신의 가슴이 나의 등을 밀어주고 나의 가슴이 당신 이 되어 주면서.]



지난주 내내 심한 오한과 고열이 하루를 주기로 오르락내리락했다. 39도가 넘는 고열은 태어나 내 기억 속에는 처음이었다. 늘 다니던 동네 의원에서 감기 몸살약을 처방받아 이틀 정도 먹었다. 


보통이면 그 병원에서 그 주치의한테 처방받은 약을 한두 번 먹으면 금세 좋아졌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렇지 않았다. 가장 다른 점은 평소에 약하던 편도는 괜찮은데, 열이 39도 이하로 떨어지지 않는 것이었다.


동네 주치의가 써준 소견서, 전원신청서 등의 서류를 들고 이곳저곳을 전화로 알아보다 당일 접수가 가능한 근처 종합병원을 찾았다. 당일 접수, 당일 진료, 당일 입원으로 종합병원 병상을 차지한 게 퇴원하고 보니 기적에 가까웠던 거였다. 


입원한 내내 몰랐다. 내 안에 숨어 지내던 천사가 움직이기 시작했었다는 것을. 개인적으로 5일의 입원 기간이 결코 짧지는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내가 나를 '환자'로 받아들이지 못한 것. 


반나절 만에 환자복을 입고, 링거를 꽂은 채 아무것도 하지 않고 늘어져 있는 상태가 여간 불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코줄을 하고 낮밤으로 썩션을 하면서 스스로 움직이지 못하는 환자들 사이에서 쥐 죽은 듯 있는 상황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예상치 못한 소음(?)때문에 깊은 잠을 못 잤다. 사흘에 10시간을 체 잠들지 못했다. 결국, 병원에서 권유하는 일정보다 이틀 일찍 퇴원을 요구했다. 퇴원하는 날 저녁 한번도 깨질 않고 11시간을 넘게 잠들었다. 


푹 자고 일어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래, 누구나 환자가 될 수 있어. 하루가 아니라 잠깐 사이에라도'. 하룻만에 갑자기 환자가 되어 보니 느닷없이 천사가 떠올랐다. 내 마음속의 신이 나라는 형체 속에 오래전부터 심어 두었던 오가지 선한 목적을 가진 천사. 


나와 옆에 나란히 누워 있는 이들에게 찾아온 질병이 씻은 듯 얼른 낫기를 바라는 진심 어린 바람. 과정에 고통이 조금은 하기를 바라는 사랑 가득한 바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사랑스러운 마음. 


일찍 퇴원을 했다는 말에 타박 섞인 걱정을 하는 주치의가 그런다. 폐렴을 일으키는 여러 가지 균 중 80% 이상은 마이코플라즈마라고. 우리가 흔히 말하는 아동기 폐렴의 원인균이란다. 


아동기 폐렴이 오십이 넘어서 걸린 건 혹시 그 균이 내 몸에 들어왔을 때 내 안의 어린 천사가 아직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밀어낼 수 있는 어른스러운 천사로 성장하지 못했다는 의미이지는 않을까.


내 안에서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갇혀 지내던 어린 천사가 염증으로 심술을 부리면서 경고를 보낸 것일지도 모른다. 천사는 자기 자신을 가장 먼저 사랑할 줄 알아야 된다고 신이 나와 함께 살도록 보내신 혈액이고, 뼈이고, 근육이고 마음이었다. 


말로는 내가 나를 사랑한다, 고 믿었지만 실제로는 내가 나의 몸을 계속 테스트하고 있었던 거였다. 언제 쓰러지나, 어떤 상황에서 쓰러지나 하고. 그 모습을 내내 참고 있던 내 안의 어린 천사가 나를 지키기 위해 날갯짓을 다시 하기 시작했던 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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