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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Nov 08. 2024

아주 비싼 먼 나라 그네 타기

[다들 그렇게 살아요. 뻔한 이유로 행복하게] 15

['다 들'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는 바로 당신이고 나이다. 당신이 나이고 내가 당신인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뻔한 이유로 뭉근한 행복을 바라는 당신의 가슴이 나의 등을 밀어주고 나의 가슴이 당신 이 되어 주면서.]




근무시간인데 화면에서 보이스톡이 울렸다. 아드님이었다. 시차를 감안하면 캐나다는 밤 10시가 넘은 시각. 이 시각에 톡이 아니라 전화가 온다는 건 다급한 일이 생긴 게 분명하다, 는 생각으로 화면을 손가락을 내렸다. 마음이 급해서 그런지 한참을 팝업이 주르륵 화면을 채우지 않아 꽤나 여러 번 손가락을 반복했다.


'무슨 일이야?'

'네~ 여기 지금 병원인데요. 급해서...'

'병원? 왜? 어디 아파?'


전화를 걸기 며칠 전. 아드님과 함께 생활하고 있는 따님이 주말에 그네를 타다 앞으로 고꾸라져 넘어졌단다. 넘어지면서 얼굴을 부딪혀 광대뼈 부분이 벌게진 사진을 찍어 보낸 것을 아내톡에서 본 적이 있다. 그리고는 사흘이 지났는데, 왜 갑자기 병원?


아침부터 어지럼증이 심해서 등교도 못하고 참다가 오후 1시쯤 오빠와 함께 집에서 10여분 걸어가면 되는 곳에 있는 종합 병원 응급실을 찾았단다. 그리고 9시간째 대기 중이라고. 지인한테 익히 들어 그곳의 응급실 시스템을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의식이 있고, 본인 스스로 움직일 수 있으면 무조건 기다려야 한단다. 왜 왔냐고 묻지도 않고, 접수도 하지 않은 상태로. 몇 시간을 기다리면 그제야 접수를 하라고 한다고. 그리고 또 몇 시간을 기다려야 하고. 무엇보다 괜찮다가 사흘정도 지나 어지럼증이 생겼다고 하니 머리에 문제가 생긴 건 아닐까 하고 내심 걱정이 들었다.


아드님 성격에 전화를 한 타이밍은 바로 접수를 하고 안내를 받고 난 다음이었다. 간호사한테 증상을 이야기하면서 헤드, 브레인 이러니 간호사가 물었단다. 의사가 검진한 후 CT, MRI 검사를 할 수도 있는데 한국에서 보험을 들었는지, 들었다면 그 항목들이 보험 처리가 가능한지 알아보고 검사를 할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해 달라고.


따님은 아드님과 다르게 아직 법적으로 유학생 신분이 아니라 현지 의료보험 카드를 발급받지 못한 상태였다. 몇 개월 후 본과 입학을 한 후 발급이 될 예정이었던 거다. 단순하게 관광객 신분으로 체류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걱정(?)이 된 간호사가 컨펌을 요구했다는 거다.


천만다행인 게 유학생인 오빠를 따라나서는 따님 여행자 보험을 들었다. 문득 그러고 싶었다. 오히려 남매 어릴 적 몇 번 다녔던 가족 여행 때도 들지 않았었는데. 나이가 들면, 경험이 쌓이면 자잘한 걱정에서 출발한 두려움도 마일리지처럼 쌓인다. 100일간 4만 원이 조금 안 되는 비용을 지불했다. 특별한 제한은 없었고 여타 보험 청구처럼 병원에서 발급받은 관련 서류를 제출하면 된다는 안내를 받았다.


그렇게 통화를 마치고 몇 분 뒤. 진료를 받았다는 톡을 안내한테 아드님이 보냈다. 9시간 대기에 2분 진료. 일어났다 앉았다 1회, 앉아서 머리 기울이기 몇 번. 그게 다였단다. 달팽이관이 흔들려 그런 증상이 일시적으로 나타날 수 있다는 간단한 설명과 함께. 아드님이 걱정한 추가 검사도 필요하지 않고 처방조차 없이 '그냥' 나왔단다. 병원비 결재도 안 하고 진짜 '그냥'. 남매가 안타까워 보여 그냥 보낸 건 아닐 텐데 말이다.


그런데 2분 진료에 대한 비용은 엄청났다. 990 CAD. 원화로 약 99만 3천 원. 이 금액도 아드님이 현지에 있으면서 알게 된 금액일 뿐 실제는 얼마가 나올지 모르는 것이었다. 무엇보다 지금껏 진행 중인 진료비 계산 방식은 난해하다. 진료 내역이 담긴 청구서를 아드님이 기록한 메일로 추후에 보내 준다고 했단다. 그러면 그 메일에 첨부된 링크로 들어가 납부하는 거라고. 그런데 몇 주가 지난 지금도 메일 자체가 오지 않고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만큼 병원 다니기 좋은 나라 없다, 는 사실은 지인들을 통해 자주 들었지만 실제로 겪으니 실감이 제대로 든다. 폐렴 때문에 종합병원 4인실에 5일간 입원하고 이런저런 검사를 하고 매일 주사액을 투여하고 세끼 병원밥을 챙겨 먹었는데 총입원비가 40만 원이 되질 않았다. 물론 수술이 없었다고 하더라도 하루 동안 먹고 자고 의료서비스를 받는 비용이 채 10만 원도 되지 않는 것이다. 거기에 비하면, 외국인이라는 신분이라도 2분 진료에 100만 원이라는 비용은 어마어마하긴 하다.

 

하기야 아드님이 초등 저학년 때 태국 외국인 병원에서 ear wax(귀지)가 귀에서 수영장 물에 불어 통증이 있었던 병원 진료에서도 30만 원을 지불했었다. 물론 현장에서. 관광객이 귀한(!) 손님임이 분명하다. 아드님이 나중에 그런다. 그 병원 진료비 항목을 보니 간단한 검사 하나에 수백 불이 책정되어 있단다. 간혹 뉴스에 보험 적용이 안되어서 수천만 원의 진료비가 나왔다는 외국 사례가 충분히 우리 남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던 거다. 솔직한(?) 의사를 만난 덕을 톡톡히 본 셈이다.


따님은 어릴 때부터 그네를 너무나 좋아했다. 열아홉 살인 지금도 그네만 보면 어디에서건, 어떤 옷을 입었던 무조건 달려가 앉는다. 그리고 꼭 내가 뒤에서 그네가 기둥에 한 바퀴 감아 돌아내려 올 정도로 밀어줘야 직성이 풀린다. 그때마다 따님은 표정은 천사가 된다. 아주 비싼 천사가 하늘에서 그네에 내려앉은 모습을 보지 못한 아쉬움을 청구서로 달래야만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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