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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담 Oct 25. 2024

진정한 독서력

[다들 그렇게 살아요. 뻔한 이유로 행복하게] 13

['다 들' 그렇게 살고 있는 '우리'는 바로 당신이고 나이다. 당신이 나이고 내가 당신인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다. 뻔한 이유로 뭉근한 행복을 바라는 당신의 가슴이 나의 등을 밀어주고 나의 가슴이 당신 이 되어 주면서.]



1. 오늘의 문장

시대와 공간을 초월하여 누구에게나 해당하는, 죽기 전에 꼭 읽어야 할 책이란 없다. 읽기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는 '어떻게' 읽는가이다. 읽기란 자기 자신만큼 읽는 것이다. 같은 책을 읽어도 각 개개인은 자신의 가치관·세계관, 그리고 자신이 씨름하는 물음들이나 살고자 하는 삶의 방향 등에 따라서 한 책으로부터 각기 다른 것들을 얻는다. 어떤 이는 니체로부터 심오한 생명철학을 찾아낸다. 반면 '나치주의의 공식 철학자'라고 일컬어질 만큼 니체의 글은 나치 사상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읽히기도 한다. .... 세계 곳곳에서 각기 다른 정황 속에서 매일 살아가고 있는 이들에게 그 시대와 공간을 초월한 '영원한 고전'이란, 그런 의미에서 허구적이다. ... 하나의 책은 거대한 도시와 같다. 큰 거리·작은 골목·유명한 장소·무명의 장소 등 무수한 공간들이 모여 있는 거대한 도시처럼, 다양한 개념·세계·가치를 담고 있다. 한 도시를 다룬 여행 책자의 안내문이 그 도시의 무수한 다층적 모습을 담아낼 수 없다. 오히려 이러한 표피적인 안내서는 그 도시를 깊이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경우도 많다. 마치 그 여행 책자에 열거된 곳들을 겉핥기식으로 돌아다니는 것으로 그 도시를 안다고 착각하게 하기 때문이다. ... 무엇보다도 책 읽기에서는 '나는 어떠한 문제의식 및 물음들과 씨름하고 있는가'가 중요한 출발점이다. '나만의 물음'이 부제 할 때, 아무리 추천 도서를 모두 읽었다 해도 자신을 성숙하고 풍요롭게 할 수 있는 지적 자양분을 얻기는 어렵다.(211쪽)

-<정의를 위하여> 강남순, 2017, 동녘



2. 나의 이야기

이 글을 만난 이후부터 조금 용기(?)를 낸 게 분명하다. 다른 이가 극도로 희열을 느꼈다는 책들이 내게는 그만큼으로 와닿지 않을 수 있고(물론 더 큰 감동이 있을 수도 있고), 세일즈포인트가 0에 가까운 책이 나의 영혼을 뒤흔들 수도 있다, 는 나에 대한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돈들여)읽다가도 아니다 싶으면 접는다. 그런 후 한참 지나 다시 발췌한 부분을 읽어 보면 또 색다르게 다가오기도 한다. 본 영화 또 보는 것하고는 다른 차원이다. 그러다 보니 지금은 얼마 동안 몇 권 하는 식으로 읽어낼 수가 없다. 읽은 쪽을 또 읽고 덮었다가 또 읽고, 다 읽은 책에서 메모해 둔 내용을 다시 꺼내 읽느라.


대신 동시에 여러권의 책을 읽는 버릇이 생겼다. <오늘부터의 세계>와 <오십에 시작하는 마음공부>는 요즘 새벽 발코니에서 읽는 책이고, <채식주의자>는 침대옆에 나누고 다시 읽고 있고,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는 도저히 들고 다닐수가 없어 화장실에 있다. <몸의 일기>는 출근할 때 도시락과 함께 챙겨가는 에코백에 넣어 다니는 중이다.


그런데 이것만이 아니다. 휴대폰만 챙기면 수백권이 책들이 나와 늘 함께 한다. 와닿는 문장, 단어를 이렇게 정리하고 난 후부터다. 책을 읽으면서 구글렌즈를 켜놓는다. 읽다가 나에게 와닿는 문장바로 찍는다. 그리고 바로 구글 KEEP으로 옮겨 쪽수를 써넣으면서 붙여 넣기 한다. 읽고 있는 책, 한  번만 읽은 책, 두 번 이상 읽은 책은 색깔로 구분해 둔다.  


몇번 한 메모안에 많은 내용(얼마나 많은 내용인지, 몇글자인지 모르지만)을 넣다가 '00자 남음  Google Docs로 복사'라는 팝업을 만났다. 하지만 문제될 것 없다. 메모장을 하나 더 만들면 되니까. 그렇게 어떤 책은 제목1, 제목2, 제목3으로 메모장을 만들기도 한다. 어찌되었건 요즘은 새로운 책을 선택해 구글 KEEP에 메모장을 하나 더 추가하는 게 아주 큰 행복이다.


그런데 나 혼자 머쩍은 건 번역으로, 메모용으로 각각 잘 사용하다 어느 날 새벽 발코니에서 '아!'하고 내 안에서 기능 조합이 일어났다는 거다..아무튼 이 꿀조합을 모르고 책을 읽었던 기간이 아까울 정도다. 독서를 좋아하시는데 아직 모르신다면 얼른 해보시기를 추천한다. 어딜가도 폰만 있으면 기다리는 시간이 지루할 틈이 없다.


이번 금요문장에 인용한 위 문장도 오래 전에 읽은 어렴풋한 기억으로 구글 KEEP에서 다시 찾아내어 인용한 것이다. 밑줄도 긋고, 접어 놓고, 표지도 만들어 끼우고, 알록달록한 포스트잇을 사용해 봤어도 지속가능한 독서법, 언제나 읽을 수 있는 독서력을 키우는 데 이 만한 방법은 없다. 적어도 나에겐 말이다.


독서 이야기를 하다 잠깐 어플 소개로 빠진 듯 하다. 그런데 위에서 작가도 이야기하듯 '나는 어떠한 문제의식 및 물음들과 씨름하'는지는 '자주' 자신에게 물어봐야 어렴풋하게라도 지혜로운 답을 얻을 수 있지 싶다. 제대로 만난 책 한권이 인생을 바꿀수도 있다, 는 말은 책 자체가 넘쳐나는 지금에도 그래서 유의미하다.


그렇다면 책 자체가 귀하디 귀한 그런 시절을 나 스스로 만들어 보면 어떨까. 여러 삶을 동시에 사느라 바쁜데 일부러 애써 돈써 좇아가며 책을 읽는다면 푹 빠진 몇권의 책을 읽고 또 읽어도 좋겠다.


왜냐하면 작가의 말처럼 '나만큼' 읽어내는 범위내에서 나에게 평생 조언이 되고 위로를 해주는  문장들을 만날 수 밖에 없을테니까 말이다.


진정한 독서력은 내게 와닿은 문장이 나의 내면에서 나의 것으로 소화되어 나의 일상에,  삶에 반영되어 내 삶의 변화될 때 비로소 완성이 된다고 믿는다. 그 문장을 곱씹는 자기만의 독서 방법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낯선 언어 표현은 자주, 자꾸 보는 방법보다 좋은 방법은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이미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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