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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놀기 위해 제대로 비우기

[ 잘 놀 줄 아는 사람 ] 04

by 정원에 Mar 13. 2025

오호! 이렇게나 넓어졌어요!


주말. 집에 놀러 온 아내의 지인들 4인방이 우리 집에 모여 이구동성으로 외쳤습니다. 그 전주 금토일. 사흘간에 걸친 대 분리수거의 결과를 보고 외친 거였죠. 오래 전부터 미니멀, 미니멀했지만, 연예인 누가 해도, 친구 이웃의 윗집이 시원하게 덜어냈다 해도 내 이야기가 될 만큼 와닿지 못합니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다르죠. 보통 나의 (거의 모든) 삶의 기준은 내 마음속에 들어있는 친구 또는 지인의 기준과 비슷하거나 또는 살짝 높게 설정되게 됩니다. '아는 만큼' 도전해 보게 되는 거죠. 너무 높아 넘사벽이거나 너무 낮아 수준이 안 맞는가 싶으면 정서적, 심리적으로 거리감을 느끼게 마련일 테니까요.


그렇게 우리 둘은 근처로 이사 온 친구네 새 아파트를 다녀온 뒤 더욱 버리고 버린 우리 집도 너저분하게 꽉 들어차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괜히 잘 있던 우리 집, 물건들에 미운털이 박혀 버린 거죠. 결국 털어낼 수밖에 없습니다. 사흘동안 그렇게 거실의 (거의) 모든 걸 분리 수거해 버렸습니다. 십오 년 넘은 6인용 소파도 십 년 넘은 이케아 테이블도 그보다 더 오래된 4인용 원목 식탁도. 당연히 새것을 사지 않는다는 전제로 말입니다.


우리가 그랬듯이 그 영향이 날갯짓이 되어 이 집 저 집 날아다니고 있는가 봅니다. 아내의 말로는 4인방 모두 지금 거실 되찾기 운동 중이라네요. 아내는 '버리니까 너무 좋아'의 캠페이너 campaginer가 되어버린 것입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있던 일흔 다섯 우리 순자 씨의 눈빛도 그런 의미로 유난히 반짝였습니다. 스물몇 평 아파트에서 이십 년을 넘게 사시면서 이고 지고 산 것들이 너무 많다, 고 드립 커피 한모금마다 내뱉으셨죠.


맞은편에 앉아 있던 아내가 또 외쳤습니다. '어머니, 우리랑 같이 해요. 이/번/기/회/에'. 그렇게 약속한 경호 씨-순자씨네 아파트 거실 되찾기 캠페인. 우리 집 거실에서 시작된, 아니 친구네 새집 거실에서 날아든 미니멀 순풍이 이제 경호 씨-순자씨네 거실까지 날아들었던 겁니다. 눈이 비가 되고 얼음이 녹아 물이 된다는 경칩을 며칠 앞둔 지난 주말에. 새벽에 잠깐 사나웠던 겨울 끝바람도 이미 봄날인 듯 산들해진 맑은 하늘 아래.


'아버지, 종량제 큰 봉투 사다 놓은 게 몇 개 있으세요?', '어, 2개나 있어. 그거면 넉넉해. 그냥 올라오게'. 경호 씨 목소리는 이미 달구어져 있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아내와 올라갔더니 급하게 신난 순자 씨는 경호 씨를 설득해 이미 분리수거를 시작 중이었셨죠. 순자 씨는 꺼내놓고 경호 씨는 14층에서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가만 보니 경호 씨는 주말에 분리수거하는 정도로 생각하는 듯이 보였습니다.


언제나 버릴까 말까를 가르는 기준이 여전히 애매합니다. '언젠가는', '다 돈인데', '그게 어떤 건데'하면서. 순자 씨는 눈빛으로 나와 아내에게 연신 도움을 구했습니다. '십 년 전에 얻어 온 소파야', '다리가 다 갈라졌어'하면서. 그런데 경호 씨는 달랐나 봅니다. 여전히 '멀쩡한' 소파였고, 조금만 손을 보면 되는 '아까운' 가구였죠. 구분이 되어 있어도 시간이 걸릴 일에 마음이 맞지 않았나 봅니다.


그때가 오전 11시가 조금 넘은 시각. 역시 순자 씨는 지혜롭습니다. 콩가루위에 들깨를 솔솔 뿌린 봄동 찜, 미나리굴전, 코다리찜으로 먼저 밥상을 차렸죠. 아침 일찍 일꾼들 먹일 정갈한 음식을 미리 준비해 두신 거였습니다. 전날 근무하고 새벽에 퇴근한 경호 씨가 두어 시간 마른 잠을 청하는 동안. '먹고 하자, 먹고 해. 그래야 크고 묵직한 것도 버리고,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일을 할 수 있지. 얼른하고 너희도 내려가 쉬어야지.'


순자 씨의 전략대로 당연히 밥 먹는 동안 마음 약한, 아내한테 약한 경호 씨 마음이 우리 입을 거쳐 대대적인 분리 작업으로 옮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거실에 비해 꽤나 컸던 소파도, 작은방에 덩그러니 역할을 잃고 잡동사니가 쌓여가던 장롱도, 용도가 애매한 수납장도, 둘이 사는 집 여기저기에 있던 9개가 넘는 원목 의자들도 모두 분리수거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그렇게 밥을 먹고 오후 4시가 다 되어 쭈꾸미 볶음으로 마무리할 때까지. 대용량 종량제 봉투 2개면 충분하다던 경호 씨의 야무진 손에서 빵빵한 솜이불처럼 담겨 무려 7개가 나의 캠핑용 캐리어에 실려 버려졌습니다. 그러는 사이 두 분이 쓰시던 5인용 소파도 하나하나 분해해서 1층 도로변으로 나 앉았죠. 유리문이 베란다로 들이친 태양에 불투명하게 변한 거실 수납장 2개, 갈라진 다리가 수납장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원목탁자 포함 의자, 탁자만 9개를 실어 내렸습니다.


아내는 순자 씨 옆에서 주방 삼단 싱크대 문을 죄다 열고 접시, 컵, 냄비류 등을 일일이 용도 파악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순자 씨는 '아고 그게 거기 있었구마. 그런데 안 써, 이제는 못써, 색깔도 변했어'하면서 쿵쿵 짝 쿵짝 아내의 '버려요'라는 제안에 힘을 얻어 경쾌해지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막내 고모가 보내온 사과상자를 3번 채울 정도로 식기류가 쏟아져 나왔죠. 그룻만 보면 오백 년 대대로 물려받은 종갓집 부엌이 부럽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게 끝이 아니었죠. 스물몇 평 집안 곳곳에 있는 화분은 마블도 몇 개 있었지만 거의 도자기여서 무거웠습니다. 다육이, 야자수, 금전수, 여인초, 산세베리아, 선인장류, 해피트리, 행운목, 뱅갈고무나무, 인삼벤자민, 황금죽... 심지어는 옹기에 새순을 띄어다 오랫동안 피운 옹기 화분도 여러 개. 그렇게 크고 작은 화분이 41개(경호 씨 말씀으로는 많을 때는 57개였는게 그나마 줄은 거랍니다. 오랜 친구한테 마음먹고 슬쩍 일러주는 듯 삐죽거리는 입술이 괜히 기분이 좋아졌나 봅니다).


가지고 내려간 식기류, 화분들은 분리수거하는 곳 뒤쪽 화단아래 종류별로 가지런히 늘어놓았습니다. 경호 씨가 미리 그날 근무자분과 이야기를 나눈 대로. 특히, 대형 종량제 봉투가 서너 개 버리는 사이 서너 번에 걸쳐 내려다 놓는 화분들은 다시 가지고 내려오기가 무섭게 사라졌습니다. 옹기에 담긴 인삼벤자민에다 아내가 써서 붙인 '화분 나눔' 안내 덕분이었죠. 벼룩시장 열린 듯 여섯, 일곱의 주민들이 나를 둘러싸고 '예쁘다', '아깝다'를 연발하면서.


삼십 년 넘는 경력의 식집사의 아들로 살아온 게 무한하게 뿌듯해지는 것 같았네요. 철마다 화분을 구입한 게 아니라 원래 화분에서 새순을 받아 만든 화분들이 거의 다 여서 더욱 그랬나 봅니다. 새 집을 찾은 생명이 새 주인의 손에 들려 직접 옮겨가는 뒷모습이 그렇게 기분 좋을 수가 없었습니다. 언제 따라 내려왔는지 내 뒤에서 물끄러미 그들을 바라보던 순자 씨. 짠하면서도 속 시원함이 시선 가득 배어 올라오는 것 같더군요.   


스물둘 손자가 대여섯 살 때. 캠핑짐 옮기는 용도로 샀던 몇만 원짜리 캐리어. 경호 씨는 엘리베이터를 오르내릴 때마다 숨을 몰아쉬면서도 칭찬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습니다. '야, 오늘 이 구루마 덕을 크게 본다, 크게 봐. 이거 잘 샀다, 잘 샀어'. 15년 만에 듣는 칭찬이라 내가 다 어색했습니다. 집 안에서 이리 옮기고, 저리 돌리고 하면서, 스무 번 넘게 오르내리는 사이 별도로 걷지도 못했는데, 만 육천보가 넘어 있더군요.



어째, 다 사셨어?



어느 어르신 한분은 우리가 연신 내어 놓는 물건들 옆을 한참 떠나시지 못하셨습니다. 시선을 도자기에서 소파로 다시 원목 탁자로 옮기다 허공에서 경호 씨를 들여다보듯 쳐다보면서요. 그러다 던진 말씀입니다. 경호 씨가 '어르신, 아, 아니랍니다. 애들 덕분에 쌓아뒀던 걸 이제야...'  '아, 아드님이시구나. 맞아요, 맞아. 나는 절대 못 버려. 누가 옆에서 자꾸 찔러야, 그렇게 해줘야 뭐라도 되지. 혼자는 아무것도 못하지. 못해'


나는 내 것을 버리는데 주저하게 됩니다. 큰 아이 두어 살 때 밤마다 읽어줬던,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같이 샀던, 이 집에 처음 이사 온 기념으로 구입했던, 거기 같이 갔던 기념으로 받았던, 발령 동기가 직접 만들어 줬던, 둘째 초등 때 한참을 유용하게 썼던, 내가 병가였을 때 아주 힐링이 되었던, 1년간 파견근무 나갔을 때 사무실 후배가 챙겨 줬던 것들.


하나하나 이야기가 묻어 있지 않은 물건이란 없으니까요. 이고 지고 사는 건 물건이 아니라 그 이야기 들이니까요. 시간은 지나갔지만 물건에 묻어 있는 나 그리고 우리가 가족이고 식구라는 걸 선명하게 드러내는 이야기가 덕지덕지 묻어 있으니까요. 그렇게 우리를 둘러싼 대부분의 물건들은 과거가 됩니다.


공간은 사람의 몸과 마음을 지배합니다. 주어진 공간에 맞춰 몸이 움직이고 그 움직임에 맞춰 마음이 작동하죠. 그 공간을 과거에게 빼앗기고 갇혀 사는 시간이 많아질수록 조급하고 예민하고 주눅 들고 힘들고 귀찮아지고 너저분해지는 시간은 늘어나기 마련입니다. 그럴 때 치워도 치워도 티 나지 않는 공간을 탈출하고 싶은 욕망을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그러면 욕망이 말해 줍니다.


상실감이 들 때마다 잃은 듯한 무언가를 그것들로 채우고 채우고 채워왔다고. 정말 버려야 할 것들은 그게 아닐지 모른다고. 상실 없이 우리 삶이 더 나아질 수는 없다고. 정말 다 살기 전에 조금 넓어진 공간에 그 덕에 넉넉해진 마음 안에 안부도, 배려도, 아끼는 마음도, 내 마음대로 고집하지 않는 연습도, 너그럽게 기다리는 여유도, 같이 웃을 수 있는 유머도, 소식하는 습관도, 눈 맞추고 손잡는 습관들로 가득 채워 보는 게 어떻겠냐고.


하루 종일 오르락 내리락 하는 내내 욕심이 욕망이 된다는 것을, 미움대신 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낍니다. 제대로 비워내야 그 공간에서 내 마음대로 놀 수 있다는 사실을 또 한번 깨닫게 된 하루였습니다.




https://blog.naver.com/ji_dam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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