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족한 가시가 둥근 약이 되는 순간에
[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 10
세상은 가위바위보 같아요. 주먹은 가위를 이기지만, 보자기에 덥석 잡히죠. 우리는 이걸 ‘상성(相性)’이라 불러요. 뱀이 개구리를 보듯, 혹은 물이 불을 끄듯 서로가 서로를 밀어내는 그런 기운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생각합니다. 이 ‘물고 물리는’ 상성이야말로 우리 영혼의 식탁에 올라온 가장 진귀한 향신료일지도 모른다고요.
상성은 적대적 공생입니다. 나를 괴롭히는 그 ‘가시’ 같은 존재가 사실은 내 삶의 늘어진 근육을 팽팽하게 당겨주는 퍼스널 트레이너라는 사실을요. 저는 사실 맛의 깊이를 모릅니다. 그저 입안이 얼얼하면 ‘아, 이게 인생의 매운맛인가 보다’ 하고 땀을 닦는 수준이죠.
미식가들은 평양냉면의 육수에서 육향을 찾는다지만, 저는 식초와 겨자를 듬뿍 넣고 나서야 <아, 국물 맛이 선명해졌네!>라고 소리칩니다. 제게 상성이란 그런 식초와 겨자 같은 존재입니다. 밋밋하고 밍숭맹숭한 내 삶의 육수에 억지로라도 활력을 불어넣는 강렬한 자극제 말이죠.
나를 힘들게 하는 대상의 까칠한 말투, 도무지 이해되지 않는 침묵. 그것들은 나를 공격하는 화살이 아닙니다. 오히려 내가 어디까지 유연해질 수 있는지, 내가 얼마나 단단한 그릇인지를 시험하는 질감의 도구입니다.
거친 사포가 나무를 깎아낼 때, 나무는 아프겠지만 결과적으로는 아기 피부처럼 매끄러운 결을 얻습니다. 그렇듯 상성의 대상은 우리를 깎아내는 사포입니다. 나를 아프게 한 그 사람이 사실은 나의 모난 부분을 갈아주고 있었던 셈이죠.
저는 매일 밤 잠들기 전, 낡은 운동화 상자에 그날 나를 힘들게 했던 사람의 이름을 적은 포스트잇을 한 장씩 넣습니다. 그리고 혼자 중얼거립니다. <오늘도 덕분에 내 마음의 굳은살이 0.1mm 두꺼워졌네. 고마워, 나의 뾰족한 선생님.>
이것은 체념이 아닙니다. 나를 지키는 가장 적극적인 포용입니다. 상대를 이기려 들면 내가 부러집니다. 하지만 상대를 ‘내 삶을 완성하는 퍼즐 조각’으로 인정하는 순간, 상성은 독약에서 보약으로 변합니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누군가의 상성일지도 모릅니다. 나 또한 누군가에게는 소름 끼치는 존재일 수 있고, 누군가의 평화를 깨뜨리는 불청객일 수 있죠. 이 보편적인 진리를 깨닫는 순간, 타인을 향한 날 선 마음은 눈 녹듯 사라집니다.
<어떻게 하면 나를 괴롭히는 환경 속에서도 나를 잃지 않고 매일 조금씩 단단해질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명확합니다. 그 상성을 피하지 마세요. 대신, 그 뾰족함을 내 성장의 밑거름으로 ‘슬쩍’ 가져다 쓰세요. ❤️
_내 마음의 한 문장
“나를 아프게 찌르는 가시는, 사실 내가 세상으로 나갈 수 있게 껍질을 깨뜨려주는 병아리의 부리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