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을 지키고 있다는 신호
[ 괜찮아, 그래도 괜찮아 ] 9
어제저녁, 싱크대 배수구에 낀 고춧가루 한 알을 실리콘 솔로 털어내다 문득 깨달았습니다.
딱 달라붙어 쉽게 떨어지지 않아 그냥 내버려 둘까 했거든요. 그러다 그 빨간 점 하나가 의외로 삶의 급소를 찌르더군요.
맞아요. 인생의 거창한 비극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운석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매일 무심코 밟고 지나간 ‘n분의 1’짜리 사소한 균열들이 모여 만든 거대한 구멍, 즉 싱크홀입니다.
도로 위에 툭 불거진 포트홀을 보신 적 있죠? 그건 도로가 게을러서 생긴 게 아닙니다. 오늘 아침 출근길을 서두르던 낡은 트럭의 무게, 어젯밤 차갑게 내린 진눈깨비와 염화칼슘의 마찰, 수만 번의 타이어가 스치고 간 뜨거운 마찰열의 합이죠.
결국 포트홀은 열심히 살았다는 ‘성실의 흉터’입니다. 우리의 일상도 비슷합니다. 퇴근길 지하철 손잡이에 매달린 눅눅한 피로, 아이에게 무심코 내뱉은 날카로운 한마디, 운동화를 신으려다 느낀 무릎의 뻐근함. 이런 것들은 삶이라는 도로 위에서 발생하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소모품입니다.
진짜 무서운 건 싱크홀입니다. 겉은 멀쩡한데 속이 텅 비어버린 상태죠.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정성껏 필터를 입힌 인스타그램 사진 뒤에서, 정작 내 마음은 곰팡이 핀 지하실처럼 썩어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괜찮아>라는 말로 서운함을 꾹꾹 눌러 담고, 대화 대신 스마트폰 화면만 만지작거리는 저녁 식탁이 길어질 때, 우리 관계 밑바닥의 흙은 조금씩 유실됩니다. 우리는 어떻게 이 거대한 추락을 막을 수 있을까요? 답은 허무할 정도로 간단합니다. 덜컹거리는 순간 곧장 멈추는 것입니다.
아내의 눈빛이 평소보다 서늘하다면,
설거지를 멈추고 <오늘 힘들었지?>라고 묻는 즉각적인 보수.
거울 속 내 얼굴이 푸석하다면,
오늘 밤엔 넷플릭스 대신 따뜻한 우유 한 잔을 마시고 자는 미세한 교정.
이것이 바로 신이 우리에게 하루를 24시간으로 쪼개어 준 이유 아닐까요? 어제의 실수를 오늘이라는 ‘n분의 1’로 만회하라는 다정한 배려 말입니다.
<우리는 매일 밤 잠들기 전, 오늘 생긴 마음의 작은 틈새에 다정한 반창고 한 장을 붙여주고 있나요?> ❤️
_내 마음의 한 문장
“포트홀에 덜컹거리는 오늘은, 당신의 삶이 아직 무너지지 않았다는 가장 시끄럽고도 고마운 신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