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 D+1 이 시국에 퇴사라니
*20년 2월 29일에 작성된 글입니다*
퇴사 다음날, 병원 검진을 마치고 이직 준비 중인 친구와 만나서 밥을 먹고 있는데 회사 사람들과의 단톡방에 메세지가 왔다.
우리팀 후임 한 명이 코로나19 의심 증세가 있어서 보건소에서 검사를 받았고, 결과가 나올 때까지 자가격리 진단을 받았다는 내용이었다. 전날 근무할 때 발열도 있었다고 한다. 결과는 24시간 이내에 나온다고.
먹던 밥이 턱 막히는 기분이었다.
이틀 전에 나의 송별회를 함께 했고, 바로 어제도 함께 카페에 가고 점심도 옆자리에 앉아 먹은 친구였다.
고마움이 순식간에 공포로 바뀌는 순간이었다.
순간, 지금 내 앞에서 이미 나와 한 그릇에 놓여있는 밥을 먹고 있는 이 친구에게 이 이야기를 해야하나 망설여졌다.
아직 확실한 것도 아닌데, 괜한 걱정을 주고 싶지 않았다.
더 솔직히는, 그 아이의 표정 변화를 보는게 두려웠다. 우리는 조금 전까지도 코로나의 심각성에 대해 이야기했었다. 그 때까지만 해도 나는 철저히 남이었다. 걸리지는 않았지만, 피해를 입을까봐 불안한 제 3자.
이제 이 일은 나의 코 앞까지 닥쳐왔고, 나로인해 친구까지 그런 상황에 처하게 될지도 모른다.
이걸 말하는 순간 친구가 나를 원망하게 될까봐, 말하기가 두려워진 것이다.
그러니까 그냥 내일 혹시나 양성 판정이 나면 이야기를 할까, 아직까지는 내가 격리 대상자도 아니니까..
하지만 이 일을 말하지 않음으로써 미연에 방지할 수 있었던 동선을 방치하게 되지는 않을까, 친구는 좀 더 일찍 말해주기를 원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솔직하게 말했다.
- 있잖아, 지금 우리 팀원 한 명이 의심 증상이 있어서 보건소 검사를 받았대.
만약 양성 판정이 나면 나도 밀접 접촉자로 분류될 것 같아.
친구는 괜찮다고 했다. 자기는 솔직히 걸려도 상관없다며 위로해주었다.
나는 어찌할바를 몰랐다.
친구랑 같이 있으면서도 아무런 집중이 안됐다. 회사 사람들이 전해주는 소식만 실시간으로 들으며 전전긍긍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검사를 받았다는 후임에게서 전화가 왔다.
- 주임님, 소식 들으셨나요?
내가 모를 줄 알고 알려주려고 전화한거구나, 챙겨주는 그 마음이 와중에 고마웠다.
들었다고, 괜찮냐고 물었다.
- 소문이 참 빠르네요.
당황한 듯 웃더니, 이비인후과를 가려고 했는데 병원에서 코로나 음성 진단을 받아야 진료를 접수해준다고 해서 검사를 받은거라고 했다.
일단은 음성이 나올 가능성이 큰 상황이라고 했다고,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도리어 나를 위로한다. 원래 평소에도 편도선염이 있었다는 말에 조금 안심이 됐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은평구에 사는 친구다. 스스로가 이게 편도선염인지 다른 증상인지 정확하게 진단할 수는 없을 것이다.
회사는 이 친구의 결과에 상관 없이 우선 일주일간 재택근무를 시행한다고 한다.
모두 2시에 조기퇴근을 하고, 컴퓨터는 각자의 집에 퀵으로 보내졌다.
이 와중에 조금 부러웠다.
나도 재택근무 해보고 싶었는데..
왜 내가 퇴사하자마자 이런 일이 생기는 걸까.
최악의 상황을 생각해봤다.
그런 상황에 어딘가에 속해있는게 얼마나 든든한 일인지.
내가 만약 자가격리 되거나 코로나19에 걸린다면, 나는 실질적으로는 퇴사했지만 아직 연차 소진 중인데, 생활비는 받을 수 있는건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면 이렇게 상황이 심각해져서 재택근무를 하는 동안에도 월급이 들어오지만, 나는 스스로가 외출을 자중하고 집에 있을 수록 나의 활동 범위만 축소될 뿐이다.
내가 신청했던 특강도 코로나 때문에 취소됐다.
요즘 기업에서는 채용은 커녕, 있던 직원들도 정리하고있단다.
2년 동안 수고했다며 여행도 못가고, 평일 낮의 여유를 즐기지도 못하게됐다.
퇴사 첫 발자국부터 꼬인 느낌이 든다.
전세금을 다 갚을 수 있는 4월까지는 버텼어야했나. 적어도 3월까지, 아니면 다음주까지만이라도 근무한다고 했어야 했을까.
코로나 감염 자체에 대한 공포보다, 유행으로 인한 파급효과가 더 공포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