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가감정이란
1. 제 행복을 찾아 떠납니다.
그러니까, 나는 재취업을 했다. 3달만이다.
전 직장에서 외근을 나가거나 연차를 쓰고 마주하는 평일 낮의 거리가 그렇게 아름다워 보일 수 없었다.
내가 누리지 못하는 시간이 뿜어내는 생기와 여유를 자각했을 때, 물을 틀어놓은 수돗꼭지를 발견한 것처럼 계속 그것만 신경이 쓰이고 아까웠다.
퇴사를 하면 내가 누리지 못했던 자유, 젊음, 한낮의 여유같은 것들을 누릴 수 있을 줄 알았다.
지금 생각해보면 나의 퇴사는 3년 전 어학연수 때와 참 비슷했다.
인간은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던가.
항상 마음 속에 품고 있긴 했지만, 막상 저지를 땐 대책없이 질러버렸다.
핸드폰을 소매치기 당하고 산산이 부서졌던 그 때의 나처럼, 코로나로 속박당한 자유를 보며 나의 멘탈은 또 한 번 부서져버렸다.
어쩌면 당연했던 것이, 내가 회사 안에서 보았던 회사 밖의 삶은 풍요로움이 전제된 삶이었는데,
막상 회사를 나오니 돈이 들어올 데는 없고 나갈 데만 있는지라, 내가 회사 안에서 탐닉하던 것들을 누리기에는 역부족이었던 탓도 있을 것이다.
예를 들면 제주살이, 프랑스 한 달 살기(젠장 코로나!) 같은 것들.
2. 늦바람일지라도 진로 탐색기
물론 내가 퇴사를 한 것이 시간적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다른 일을 해보고 싶었다.
콘텐츠와 관련된 일, 그 중에서도 텍스트.txt와 관련된 일을 하고 싶었다.
왜냐하면 나는 글을 읽고 쓰는 걸 좋아하니까!
그래서 그걸 업으로 삼는다면 뭘 해야할까?
해서 2개의 스타트업에 각각 콘텐츠 마케터와 에디터로 잠---깐 들어갔었다.
하지만 종국엔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나는 내 색깔이 있는 글을 쓰고, 나의 인사이트가 들어간 큐레이팅을 하고 싶은건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좀 더 고민해봐야겠다.
3. 돌고 돌아 결국 여기
결국 나는 동종업계로 돌아가게 됐다.
그래도 전처럼 정해진 신제품을 출시만 하는 것이 아니라, 브랜드 기획부터 참여하는 BM으로 들어가게 되어서 기쁘다. 그 놈의, 애증의, '기획'을 드디어 하게 되었다. 공부도 많이 해야될 것 같다.
퇴사하고 깨달은 것은 생각보다 내가 이 업계에 가진 애정이 있다는 것.
나는 정말 조금의 미련도 없다고 생각했는데,
그 짧은 시간동안 알게 된 것도 배운거라고, 나중에 잊혀질게 아쉽고
친해진 사람들도 동료라고, 나중에 멀어질게 서운한 것이
계속 이 세계에 머물면서 나의 색깔을 찾아가는 것도 나쁘지 않지 않을까.
4. 취업 후 갑자기 세상이 다시 아름다워진 것에 대하여
어쨌든 간에 퇴사할 때는 길면 올해, 짧아도 상반기에는 취업할 생각이 없었는데.
결국엔 어디든 다시 취업을 할 줄 알면서도 나는 그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마음에 정해둔 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다시 취업을 했다.
어쩌면 언젠가 정말 다시 취업을 하게 될 수는 있을지 끊임없이 의구심이 들었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노(勞)독을 다 빼지도 못하고 다시 일하러 간다.
출근 날짜가 정해지자 갑자기 세상이 아름다워 보인다.
웃기지.
한 낮에 카페에 와서 앉아있는 이 시간이 어쩜 이렇게 달콤하고 소중한지.
막상 기약없이 쉴 때는 그렇게 허무하고 불안할 수가 없었는데.
쉼이란 기약이 있기에 아름다운 것인가.
여유란 언젠간 끝남을 전제해야만 생겨날 수 있는 감정인가.
이대로 그냥 출근해버리면 너무 속상할 것 같아서 에어비앤비를 예약했다.
나의 아름다운 세상을 마지막으로 마음껏 만끽할 것이다.
퇴사 후 안고 있던 절망을 제주도에서 훌훌 털었던 것처럼, 쉬는 동안 혼란스러웠던 마음을 잘 추스르고 시작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