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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링유리 Oct 14. 2021

7. 해피 크리스마스

피렌체에서 만나 제주에서 살고 있어요.

[피렌체에서 제주까지]


해피 크리스마스     



나에게 크리스마스란, 그저 나의 날이 아닌 예수님의 탄생일 정도였다.

어릴 때는 교회에서 크리스마스이브에 공연도 하고 가족들과 즐겁게 보냈지만, 성인이 되고 간호사로 일하면서 크리스마스에는 늘 근무였다. 그래서 제대로 보내 본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할 수 있다. 이브닝 끝나고 같이 근무했던 선생님들과 술 한잔하면서 맛있는 거 먹으면서 보냈던 것이 다였다.

그런데 살다 보니 크리스마스를 유럽에서 보내게 되었다. 꿈은 이루어진 건가. 

십 년 동안 간호사로 일하면서 버킷리스트 중 하나는 해외에서 크리스마스, 생일, 연말 보내기였는데 말이다. 이 버킷리스트는 전부 클리어한 것 같다.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포르투갈 리스본에서 크리스마스이브를, 크리스마스에는 반짝거리는 피렌체로 돌아간다.

우리 둘은 크리스마스를 즐기기 위해 아침부터 분주했다. 에그타르트도 끼니마다 먹어야 하기 때문에 눈 뜨자마자 가게 문 열자마다 우리는 에그타르트를 먹기 시작했다. 우리의 포르투갈 여행은 에그타르트로 시작해 에그타르트로 끝났다고 해도 정말 무방할 만큼 우리는 에그타르트를 사 먹었다. 지금도 우리 둘은 에그타르트를 참 좋아하고, 너무  그리워하고 있다. 나중에 포르투갈 간다면 에그타르트 쿠킹클래스 꼭 듣고 올 거라 다짐해본다. 하루를 달콤하게 시작했으니 다음은 쇼핑이 순서!! 단벌 신사로 여행 중인 나를 위해 아침부터 쇼핑해서 입을 옷을 골라 사주기도 하고, 리스본에 있는 상점에서 간단히 먹을 음식과 와인을 한 병 골랐다. 와인은 하나도 모르는 사람이었는데, 이 사람 덕분에 와인의 맛을 점점 알아가게 되어 기쁘다. 무엇인가를 경험하고 발전해 나간다는 건 너무 큰 기쁨인 사람이기 때문이다. 와인을 어떤 것을 고를까 둘이서 꽁냥 대다 고른 포르투갈 와인은 우리를 크리스마스 분위기에 흠뻑 취할 수 있게 해 줬다. 

파티를 제대로 즐기려고 요리를 하는데 에어비엔비 했던 집에 갑자기 전기가 나가 버렸다. 리스본에서 종종 자주 있는 일이라고 했다. 음식을 준비하려면 가스가 아닌 전기를 써야 했고, 불도 켜야 했고, 각종 콘센트에 충전기 가득 꽂아두었고, 세탁 키도 돌리고 있었기 때문에 전력이 나가버렸다. 한꺼번에 많은 전력을 쓰면 종종 있을 일이라고 했지만, 여행 중에 이렇게 정전되듯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던 것은 없었는데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나에겐 혼자가 아니라 그도 있었기 때문에 잠시 두꺼비 집을 열어 그가 이리저리 만지니 다시 전기가 들어왔다. 혼자 있었더라면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걱정으로 밤을 보냈을지도 모르는데, 그와 함께하니 이 모든 것이 에피소드가 되어 웃음이 나왔다. 우리는 또 전기가 나갈까 봐 전기사용을 최대한 줄여가며 크리스마스를 보냈던 기억이다.

그렇게 웃픈 에피소드가 있던 날 조심스럽게 그가 나에게 준 크리스마스 카드는 감동이었다. 나는 준비하지 못했고, 손편지 쓰고 받는 걸 좋아하는 나였기 때문이다. 손편지에는 첫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게 되어 행복하다는 말과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내용이 들어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그에게 해준 것이 없는데 늘 받기만 했던 것 같다. 현실과 다른 일상을 보내는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이 너무 특별한데, 내가 더 고마워야 하는데 늘 받기만 했던 내가 가끔 내가 봐도 얄미워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내 내면에는 아직도 부족해 더 사랑해주길 하는 결핍이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받고 있지만 계속 더 많이 사랑받고 싶은 마음 말이다. 크리스마스에 그의 카드가 나를 감동하게 하고 또 나를 반성하게 했다.

나도 크리스마스에 함께 해줘서 고맙다는 말을 못 했지만, 참 고마웠고 행복했다. 리스본에서 보낸 크리스마스이브는 생각보다 조용하게 보낸 것 같다. 크리스마스이브를 조용하게 보내고, 크리스마스에는 피렌체에 돌아왔다. 피렌체의 거리는 리스본보다 화려했다. 한국에서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시끌벅적 여기저기 반짝거린다. 그렇게 반짝이는 도시에서 나는 병원 안에 환자들을 돌보고 있었다. 내가 지금 이렇게 놀고 있지만, 누군가는 병원에서 힘들게 일하고 있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어 조금 마음이 그렇지만, 나도 십 년 동안 못 즐겼으니 이젠 좀 즐겨도 괜찮지 않냐고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나도 이 행복을 충분히 만끽하기로 했다. 내가 주인공이 되어 반짝반짝 빛나는 피렌체 명풍 거리를 걷고 있으니 진짜 명품 인간이라도 된 것처럼 활짝 웃고 있었다. 

리스본에서 우리가 피렌체로 돌아온 이유는 그가 피렌체에 촬영이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오게 되었다. 그의 일 때문에 피렌체로 잠시 돌아왔다. 하지만 이렇게 피렌체로 돌아오니 나는 정말 피렌체를 사랑하고 참 편안해하는구나 생각이 들었다. 누구나 고향 같은 나라가 있을 것이다. 그런 나라가 나에겐 피렌체다. 

밤이 되어도 두오모는 항상 빛나고, 베키오 다리도 늘 밝게 빛나고 있고 아르노강 위에 두둥실 떠 있었다. 그 사람 때문에 알게 된 피렌체 유학생 동생들, 다른 작가님들과 함께 우리는 크리스마스 파티를 하며 보냈다. 서로 음식을 하나씩 해와서 나눠 먹기로 했다.

우리끼리 크리스마스를 보내고 있으니 다른 곳에 사는 유학생이 와인을 반 병들고 우리 숙소로 들어왔다. 우리 숙소는 일 층이었고 문이 활짝 열려있으니 파티라도 하는 줄 알았는지, 들어와서 한국음식 등 몇 가지를 맛보고 맛있다는 손동작을 하면서 그 와인을 다시 들고나갔다. 우리한테 주는 와인이 아니었고, 심심해서 잠시 들어왔던 취객이었다. 우리는 정말 착하고 순수했다. 그런 취객에게 음식을 대접했으니 말이다. 피렌체 여기저기서 들리는 “부온 나탈레” “Buon Natale” 지내다 보니 기본적인 단어 문장들이 들리기 시작했다. 이렇게 피렌체가 익숙해질 때쯤 우리는 또 잠시 떨어져 있어야 했다. 그도 나도 장거리 연애는 안 한다고 다짐하면서 살았던 사람인데 어쩌다 보니 장거리 연애를 하면서 서로의 상황을 이해해주고 있었다. 나는 그와 여행하면서 유럽에서 체류할 수 있는 90일을 거의 다 보냈고 아직 난 여행이 끝나지 않았다. 난 혼자 여행을 떠나야 했다. 잠시만 안녕하기로 하고 난 모로코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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