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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링유리 Oct 14. 2021

11. 역지사지

피렌체에서 만나 제주에서 살고 있어요.

[피렌체에서 제주까지]


역지사지가 이런 거구나.

이미 끝난 일을 말하여 무엇하며,

이미 지나간 일을 비난하여 무엇하리.

- 공자          


역지사지란 말은 잘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 역지사지 상황이 발생했다.

피렌체 중앙시장에서 걸어오는 길에 낯선 외국인이 말을 걸어온 것이다. “혹시 너 잃어버린 거 없어? 누가 너 가방을 뒤지던데..?” 엥? 무슨 소리지? 하고 가방 안에 지갑을 먼저 보았다. 음.... 지갑은 있는데, 나는 영어로 “that’s OK, thank you”라고 하는 순간, 짝꿍이 혹시 핸드폰은? 말한 것이다. 응? 오 마이 갓!!! 내 휴대전화가 없어졌다. 너무 당황스러웠고, 말이 나오지 않았다. 분명히 내 호주머니에 있었는데 집 거의 다 올 때까지 사실 핸드폰을 넣어두었던 주머니에 손을 넣고 왔었고 뺀 기억이 없었다. 누가 우리 곁을 온 적도 없었다. 그런데 언제 누가 내 가방을 만졌다는 것이고, 내 휴대전화를 언제 갖고 간 거냐는 말이다. 나는 어이가 없었다. 백업해두지 않은 휴대전화엔 나의 추억들이 가득했는데, 한순간에 잃어버렸다는 것이 허망했다. 그리고 슬펐다. 나는 눈물이 났다. 왜 그렇게 서러웠는지 펑펑 울었다. 속상했고 또 속상했다. 지금까지 많은 나라를 여행했고, 치안이 안 좋았던 나라에서도 휴대전화기를 잃어버린 적이 없었는데 여기 사는 내 전화기를 훔쳐 갔다니 충격이었다. 이렇게까지 서럽게 울 거라곤 짝꿍은 생각하지 못했는지 당황했지만, 조용히 나를 다독여줬다. 점점 울음이 그치고, 역지사지가 이건가? 생각이 들었다. 바르셀로나 여행으로 거슬러 가보니, 바르셀로나 스타벅스에 앉아있었는데, 짝꿍 가방이 분명히 내 앞에 있었던 게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사라졌던 적이 있었다. 분명히 있었는데 안 보여 장난인 줄 알았다. 그날 아침에 가방에 넣고 싶은 것을 넣으라며 통 크게 짐을 챙기라고 했고, 나는 모자, 선글라스, 잠바 등 내 짐을 잔뜩 넣었다. 사진작가인 남편의 카메라 렌즈도 들어있었다. 유럽에서 사진을 찍는 사람이 렌즈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전쟁에 나갈 때 총에 총알을 빼먹은 거나 다름없는 것이다. 그런데 화 한번 내지 않았고, 나와의 여행 계획이 조금 틀어진 것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눈치까지 봤었다. 그날 스페인 경찰서에 갔고, 별다방 CCTV 보고, 한국으로 치면 경위서 같은 걸 작성했고, 가방 가격, 안에 든 물건의 가격 등 전체적인 가격을 측정해 적었다. 유럽이 그렇듯이 사건의 진행이 한국처럼 빠르지 않았기 때문에 답답함이 있었지만, 이탈리아의 속도를 경험한 우리는 그나마 스페인은 괜찮았다.

이렇게 경찰서에 앉아있는데, 나는 솔직히 그 가방 안에 든 내 물건이 아쉽고 또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이기적이었다. 물론 잃어버려서 어떡하지? 걱정은 했지만, 잃어버린 내 물건이 먼저 생각이 나는 지질했던 순간이었다.

그런데 화 한번 낸 적 없고, 짜증 섞인 말 한 번 한 적 없었다. 물론 연애 초기라 서로 알아가는 중이었기도 했지만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내가 잃어버리고 나서 그 평온함이 정말 대단한 거였구나 생각했다. 나는 이렇게 휴대전화기만 생각하면 눈물이 흐르는데 말이다. 사람은 역지사지가 돼봐야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건지 그땐 몰랐지만 이젠 알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에게 어떻게 그렇게 담담할 수 있었냐고 물었다. 이미 일어난 일을 후회한다고 되돌릴 수 없으니 지난 일은 지난 일이다 라고 생각했다고 앞으로 조심해야겠다고 말했다. 뚜둥! 뭔가 머리를 맞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나는 늘 지난 일을 뒤돌아보고 있었다. 내가 그때 왜 그랬지? 그때 좀 더 잘할 걸.. 생각하며 나를 다그치고 나를 비난하면서 말이다. 후회에 또 다른 후회를 얹어 나를 힘들게 했다. 생각해보면 후회 없는 일만 하며 살아갈 수는 없는데, 그 일을 통하여 앞으로는 조심하고 주의하면 되는 거였는데.. 뒤늦은 후회는 미련까지 남긴 다는 것을 알았으니 앞으로는 지난 일은 지난 일로 생각해야겠다 깨달았던 사건이었다. 우리의 삶은 뒤를 보는 게 아니고, 앞을 보며 살야아 하니깐 말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은 있다는 말처럼 나에겐 다행히 쓰지 않았던 오래된 휴대전화기가 하나가 더 있었고 유심을 새로 사서 끼우고 내 추억을 다시 시작하게 되었다. 예전에 백업했던 사진만이라도 추억할 수 있게 되어서 감사해야 했다. 아직도 그때 생각하면 어쩌다 휴대전화를 잃어버린 건지 알 수 없다. 하늘만 알 것이지만, 역지사지를 나에게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웃으면서 곱씹어 본다. 무슨 일이든 그냥 일어나는 법은 없으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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