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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블링유리 Oct 14. 2021

12.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보여주고 싶다던 곳

피렌체에서 만나 제주에서 살고 있어요.


[피렌체에서 제주까지]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보여주고 싶다던 산토리니     


어느 날 여권을 챙기고 따라오라고 했다.

사실 나는 떠나기 하루 전 휴대폰을 소매치기당했다.

아직 슬픔이 다 가시지 않았고, 내 추억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았고, 속상해서 하염없이 눈물만 나왔었다.     

지금은 남편이지만 남자 친구일 때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다면 꼭 같이 보고 싶었다던 아름다운 풍경 중 그리스 산토리니 일몰이었다. 물론 우리가 살고 있는 피렌체 일몰도 정말 끝내준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산토리니는 꼭 같이 보고 싶었다며 비행기 표를 구매했다. 나는 전날 잃어버렸던 핸드폰의 충격이 남아있어 여행을 할 맛이 안나 가고 싶지 않다고 말했다. 짝꿍은 당황을 했을 것이다. 핸드폰을 어제저녁에 잃어버리고 아침까지 휴대폰 이야기만 나오면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는 나를 보면서 그렇게 슬플까? 생각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나는 어찌나 슬프고 추억을 송두리째 날려버린 허무한 기분이었다.. 중요한 건 지금 나는 백수인데 왜 가진 거 없는 백수인 내 폰을 훔쳐가는지 원망스러웠다. 내가 돈을 벌고 있을 때 휴대전화를 잃어버렸더라면 조금은 더 쿨했을지도 모르겠다. “뭐 어쩔 수 없지, 또 사면돼”하고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가진 거 없는 배낭여행자의 삶을 살아가는 상황이다 보니 더욱더 심난했던 것 같다. 요즘 핸드폰이 백만 원을 훌쩍 넘는 고가 물건이니 말이다. 사실 여행의 맛이 안 날 것 같다고 가기 싫다고 했지만 너무 가보고 싶었던 여행지 중 한 곳이기도 했다. 신혼여행으로 많이 가는 그리스 산토리니는 사실 나도 꼭 가보고 싶었다. 짝꿍이 그만 슬퍼하라고, 핸드폰 사주겠다고 나를 설득했고, 결국 이렇게 사랑하는 사람이랑 오게 되었다. 나도 정말 사랑받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고, 인생의 드라마가 있다면 내가 주인공이지 뭐 주인공이 별거이냐는 생각도 들었다. 그만큼 너무 기분이 좋았다. 단순한 사람 중에 한 명이 나라지만, 어떻게 가기 싫다던 내가 이렇게 좋아하고 행복해하는지 나도 내가 참 신기했다. (절대 핸드폰을 사주겠다고 해서 그런 것은 아니다.) 

간단한 짐을 챙기고 우리는 그렇게 갑자기 그리스 산토리니로 여행을 갔다.

도착하자마자 나는 마을이 하얗고 지붕은 파란색이 눈앞에 있으니 아 진짜 산토리니에 왔구나 실감했다. 포카리스웨트 CF에서 봤던 절벽 위에 하얀 집들과, 파란 지붕들, 그리고 에게해까지 완벽했다. 내가 티브이 속에서, 책 속에서 보았던 것들이 눈앞에 있다니. 이건 즐겨야 해. 눈에 담아야 해. 하는 내 마음속 외침이 나를 더 아름다운 뷰에 빠져들게 했다.

어느 날은 그가 차를 빌려 해안도로를 달렸다. 우리의 차는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로 아름다운 풍경에 우리가 함께했다. 유후~~ 소리 지르며 바람을 만끽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뷰에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사진인데, 내가 갖고 온 옷은 몇 벌 없었고 예쁜 원피스 하나 챙기지 않은 나 스스로를 원망했다. 그 마음을 알았는지 그는 나와 함께 절벽에 있는 상점을 둘러보며 어울릴만한 원피스를 골라주고, 사주었다. 내가 입어보면서 이것보다는 저게 더 잘 어울린다고 해주는 사람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 같다. 지금까지의 남자 친구와 내 옷을 사러 다녀본 적이 없었는데, 그는 늘 이렇게 세심하게 골라주고 챙겨주는 사람이었다. 사실 유럽에서 지내면서 나도 모르게 체중이 늘어 옷을 입을 때마다 스트레스 아닌 스트레스받을 때가 있는데, 늘 사진을 예쁘게 해주는 짝꿍 덕분에 내가 살이 그렇게 불어나 있는지도 모른 채 지내게 되었다. 무슨 자신감인지 살이 한 껏 올랐지만 그가 사준 흰색 원피스를 입고 산토리니를 누비고 사진을 남겼다. 

그날의 그 바람도 잊을 수 없을 만큼 좋았다. 현실은 해가 쨍쨍하여 두피까지 익어버릴 만큼의 더위였지만, 더위는 생각조차 나지 않는다. 그때 느꼈던 내 살결에 맞닿던 바람만 생생하게 떠오른다. 내가 알던 바다의 습함이랑 다르게 느껴졌다. 

일출과 일몰을 좋아하는 나에겐 산토리니에서 마주한 일출과 일몰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주황빛으로 물들어 멈춰버린 것 같은 시간을 오래 보려고 최대한 오래 한 곳에 머물렀다.

좋은 자리에서 일출을 보기 위해서 누구보다 일찍 일몰 보는 스폿에 가서 우린 함께 그 일몰을 기다렸다.

일몰을 바라보고 있으면, 뒤에선 버스킹이 한창이었다.

Music is MY life! 음악이 없다면 인생도 정말 재미없었을 것이다. 특히 음악과 함께 여행하면 추억에 오래 남는다. 그때 들었던 노래가 추억공간에 깊이 저장돼서 일 것이다.

우리가 함께했던 여행지 중에 산토리니는 기억 공간에 가장 많이 차지하고 있다. 음악이 빠질 수 없듯이 또 중요한 것이 사람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소중한 사람들도 잊히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에서 소식을 주고받은 만큼 친해진 사람들도 있기 때문이다. 산토리니에서 우리가 묵었던 숙소 주인이 참 정겨운 사람이었다.

매일 아침을 방으로 가져다주고, 여행에 필요한 정보도 도움을 주고, 매일 웃으며 인사를 해주는 따뜻한 사람. 말은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모든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산토리니의 이아마을, 피라마을을 많이들 사람들이 찾는다. 물론 우리도 그랬다. 그와 나는 거기보다 한적한 이메로비글리 마을을 가보았다. 역시 이아나 피라 마을보다는 사람이 없었다. 무심코 뷰가 예뻐 여기서 일몰을 보자고 한 카페에 들어갔다. 할아버지 사장님이 반갑게 우리를 맞이해 주셨다. 우리에게 다가와서 갑자기 무엇을 마실 거냐는 질문보다 어디에서 왔냐고 질문을 했다. 우린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본인이 전쟁 때 우리나를 위해 싸웠었다고 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말해주셨다. 그러나 전부 알아듣진 못했지만, 뭔가 고맙기도 했고, 뭉클해지는 순간이었다. 누군가가 타국을 위해 몸 바쳐 싸워줬다는 그 마음을 잊지 못하겠다. 입장 바꿔서 지금 나보고 어떤 나라를 위해 싸우라고 하면 싸울 수 있을 까? 솔직히 우리나를 위한 일이라고 해도 선뜻 나서기 쉽지 않았을지 모르겠다. 그만큼 너무 감사한 사람을 여기서 만나게 되었다. 할아버지와 많은 대화가 참 따뜻했던 기억으로 남아있다. 이 마을 사람들도 너무 따뜻하구나 싶은 이유 중 하나는 할아버지 때문일지도 모르겠다. 

산토리니에서 짧은 여행이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하니 이 짧았던 시간이 영원할 것만 같았다.

이기적이라면 참 이기적인 나에게 혼자 하는 여행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하는 여행이 정말 행복하다고 느낄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 우리가 비록 비싼 뷰 좋은 호텔에 묵고, 신혼여행처럼 호화로운 여행은 못했지만, 에어비엔비를 통하여 정말 여기 현지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을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고, 같이 구글 검색하며 식당을 찾는 소소한 기쁨이 있어 좋았고, 옷 하나를 사기 위해 여러 상점을 기웃거리며 골랐던 우리의 모습이 귀여웠다.

그냥 모든 게 그와 함께 해서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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