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chumann Fantasie in C, Op.17 mov.1
이부스키, 넓은 잔디 언덕 아래로 바다가 펼쳐져 있던 노천 온천에서 알몸으로 내달리며 저 멀리 보이는 유람선을 향해 팔짝팔짝 뛰며 두 팔을 흔들었다.
여중 여고 여대를 다녔고 집에서 남동생보다 지원을 많이 받았다. 자라는 동안 운 좋게도 여성이라는 이유로 차별받을 환경에 많이 노출되지 않았다.
하지만 밤길은 언제나 무서웠다. 밤길에 마주칠지 모를 귀신은 괜찮았지만 남자가 보이면 바짝 긴장을 했다.
힘으로 어찌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고 미디어에서 상대방을 해치는 쪽은 주로 남성이었기에 일단은 모두가 경계 대상이었다. 불편하면서도 불편한 줄 몰랐고 불편해야 함에 의문을 가진 적이 없었다. '여자는 그저 조심하는 것'이 도리였다.
하지만 무의식은 먼저 불편에 저항하고 있었을까, 안전이 보장된 끝없이 펼쳐진 광야를 나체로 질주하는 나 자신이 언제부턴가 마음속에 이상처럼 그려져 있었고 여느 인상이나 기억처럼 꺼내기 전까지는 쉽게 드러나지 않는 곳에 조용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다.
길고 짧은 만남으로 개개의 남성을 접하다 사회에 나오면서 다수의 남성이 있는 환경 속에 놓이게 되었고 여성성에 대한 강요, 불쾌한 언어, 두려운 접근을 이따금 경험했다. 인간적인 교감을 기대했던 남성에게 했던 호감 표시는 오해를 사는 행동이 되기도 했고 화살은 내게만 꽂혔다.
결정적으로 20대 후반의 연애에서 나의 여성성은 극도로 불편한 것이 되었다. 사회가 여성에 프레임을 씌웠 듯 상대방은 나를 그 소견머리만 한 프레임에 구겨 넣었다. 여성이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당하는 대상화, 편견, 부조리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오랫동안 나도 모르게 쌓였던 불편함이 이유를 찾아 갔다. 여성은 누구나 페미니스트거나 잠재적 페미니스트라고 했다. 나는 이렇게 페미니스트가 되었다.
그 무렵 어느 날 꿈속의 나는 알몸으로 달리고 있었다. 자유를 박탈당하지 않았다면 마음속에 조용히 자리만 차지하고 있었을, 꾸지 않았을 꿈이었다. 벗어나고 맞서고 부수어야 할 것을 인지하자 내 무의식이 어떤 단서를 주듯 꿈을 보여줬다.
끝없이 펼쳐진 벌판에서 귀에 심장소리가 쿵쿵쿵쿵 들릴 때까지 나체로 질주하기.
현실의 거리에서 알몸으로 달렸다가는 풍기 문란으로 잡혀갈 뿐이라면 다행이다. 나를 한낱 흥미로운 고깃덩이로 여길 시선들로부터 내 존엄을 지키기 위해 목숨 걸고 도망쳐야 한다. 내 몸과 영혼은 꿈에서 처음으로 가장 자유로웠다. 실 한 오라기 걸치지 않은 상태로도 내 존엄을 지킬 수 있는 곳은 오직 환상에만 있었다.
꿈의 질주는 내가 나에게 보내는 명령이었다. 여러 차례의 투쟁 끝에 겨우 그와 단절되었다. 비로소 그전까지의 작은 자유로나마 돌아올 수 있었다.
이후 남성과 엮이지 않으려 2년 넘게 눈 마주치기조차 피하며 고립되었고 그 안에서 안정을 되찾아갔다. 아무것도 원하지 않는 사람처럼, 무딘 사람처럼 살면서도 진실된 사랑을 꿈꾸는 괴리가 씁쓸했지만 관계 속에서 무시되거나 착취되었던 나의 본질은 고립에서 더 편안했다.
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이른 봄,
남쪽 땅 끝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드넓은 언덕, 훈기가 모락 대는 노천탕에 우리 엄마, 이름 모를 아주머니 두 분이 웃으며 내 등 뒤를 지켜 주시는 순간,
나는 추운 줄 모르고 냅다 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