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ch's 2 pieces
어릴 땐 잡기를 잘도 익혔다.
손가락 끝 마디 구부리기, 혀끝을 꽃모양으로 말기, 양 손바닥을 비스듬히 맞대어 움직이며 뽁 뽁 소리 내기, 휘파람 불기 등 하고 싶은 게 생기면 될 때까지 반복했다.
어릴 때 못 익힌 재주를 남이 하는 걸 보면 ‘아, 나도 저것도 해 놓을 걸’ 하는 생각을 했다.
어느 주말 회사 동료들과 남한산성에 갔고 하산길에 뛰어내려왔다. 한동안 아무 생각 없이 통 통 날뛰다 돌부리에 걸렸는지 모래에 미끄러졌는지 아무튼 공중으로 붕 떴다가 무릎으로 땅을 쓸었다. 바지에 피가 물들고 엉겨 붙기까지 했다. 걷기가 불편할 정도로 아팠는데 희한하게 재미있는 기분이 들었다. 뛰다가 넘어져서 무릎이 까지는 건 중학생 이후로 처음이었다. 내가 넘어지다니, 잠깐 동안 어린 나로 돌아간 듯했다.
며칠 후 우연히 TV에서 성악가들이 목을 풀면서 혀로 아르르르 소리 내는 것을 봤다. 저거 내가 제일 하고 싶은 거였는데. 평소대로 ‘어릴 때 저걸 익혔어야 했는데’ 생각하다 느닷없이 넘어진 게 생각났다.
생각이 이상하게 이어졌다. 넘어지기도 했는데 그것도 할 수 있지 않을까?
다음 날 퇴근길에 아무도 없는 길을 따라 걸으면서 “아르르르”를 시작했다.
되도 않게 목으로 “아르” “아르” 말하듯 소리를 내다가 문득 대학생 때 친구가 입술로 “푸르르르” 하면 된다고 했던 말이 기억났다. 방법을 알려준 친구도 ‘아르르르’를 못했기에 믿음은 안 갔지만 속는 셈 치고 푸르르르 연습부터 했다. 집까지 걸어오는 40분 동안 푸르르르 위주로 연습하고 이따금씩 아르르르를 했다.
집에 거의 다 왔을 때쯤 아르르르할 때 혀끝과 입천장에서 약간의 진동이 느껴졌다!
헉 소리를 내고 멈춰 섰다. 미미한 성공을 재현해 보려고 같은 동작을 반복해 봤더니 진짜 됐다. 이게 연습으로 되는 거였다니. 조건을 달리해가며 소리를 더 키워봤다.
아르르르는 정말 푸르르르 할 때 공기를 내보내는 힘을 사용하는 거였다. 초심자는 생각보다 한 번에 강하게 공기를 내보내며 혀에 힘을 빼야 감을 익힐 수 있었다. 이삼일 시행착오 끝에 자유롭게 소리 내는 법을 익혔고 ‘세뇨르르르’처럼 말하면서도 할 수 있게 됐다.
스스로 자유로운 사람이라 생각하며 살아왔지만 “아르르르” 내 입천장에서 진동이 느껴지기 전까지는 아주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오래된 관념 하나로부터 해방됐다. 어린 감각과 근육으로만 익힐 수 있는 줄로 알았던 잡기도 그냥 공부처럼 음악처럼 정성을 들이면 되는 거였다. 딱히 쓸데는 없지만 분명 성취감과 해방감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하산길에 넘어졌을 때는 머릿속이 일순간 민트 잎을 여러 장 씹는 것처럼 상쾌해졌고.
조만간 손 짚고 옆 돌기도 물구나무서기도 해내고 싶다.
이 작품들은 꼭 내가 피아노 위에서 뛰어다니며 노는 것 같아서 피아노 앞에 앉을 때마다 한 번은 꼭 친다.
그러기 시작한 지 15년이 넘었는데도 여전히 엉망으로 친다. 일부러 열심히 연습하지도 않고 마음 내키는 대로 치는, 내가 가장 사랑하는 노래 두 곡.
학교 끝나고 전 재산 300원을 내고 퐁퐁 타는 것이 최고의 낙이었던, 학교 가는 길이 온통 퐁퐁으로 깔렸으면 좋겠다고 하늘에 기도했던 시절, 그 마음으로 살아가라고 나에게 끊임없이 주문을 거는 노래.
남한산성에서 나를 넘어뜨린 마법이었을 수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