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화. 왔나? 니 꼬라지가 와 이 모양이고

by 연경

서울 하늘 아래 내 몸뚱이 하나 뉠 곳 찾는 게 이토록 서러운 일인 줄은 예전엔 미처 몰랐다. 연희동의 가파른 언덕길은 오늘따라 유난히 가팔랐고, 어깨에 매달린 가방 줄은 살을 파고드는 것만 같았다. 면접 탈락 소식을 확인하며 걷느라 구두 뒷굽이 보도블록 틈에 끼어 툭, 하고 부러진 건 그야말로 정점을 찍는 불운이었다.


"진짜... 되는 일이 하나도 없네."


절뚝거리며 도착한 골목 끝자락. 거기엔 이 동네와는 어울리지 않는 낡고 육중한 초록색 대문이 하나 서 있었다. 대문 옆 담벼락엔 작은 칠판 하나가 걸려 있었는데, 분필로 투박하게 적힌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오늘 메뉴: 시래기 된장국이랑 고등어 무조림. 늦지 말고 밥 묵으러 오나.]


환영인지 명령인지 모를 그 문구 앞에서 잠시 망설이다가, 나는 녹슨 대문 손잡이를 조심스레 밀었다. '끼이익-' 하는 소리가 적막한 골목에 크게 울려 퍼졌다. 마당에 들어서자마자 코 끝을 강렬하게 찌르는 건 진한 멸치 육수와 구수한 된장 냄새였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서기도 전이었다. 부엌 쪽에서 쨍그랑하며 쟁반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더니, 곧이어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왔나? 니 꼬라지가 와 이 모양이고!"


앞치마를 질끈 동여매고 국자를 든 채 튀어나온 건 이 집의 주인, 정희 씨였다. 그녀는 내 부러진 구두 굽과 엉망이 된 머리카락, 그리고 금방이라도 눈물이 터질 것 같은 내 얼굴을 위아래로 훑어내렸다.


"서울 밥은 무도 살이 안 찌나 보네. 사람은 와 이리 얄브리해졌노. 니 어디 길바닥에서 쌈박질이라도 하고 왔나? 와 이리 때깔이 거무튀튀하냐 말이다."


걱정인지 타박인지 모를 사투리가 좁은 현관을 가득 채웠다. 나는 대답 대신 고개를 푹 숙였다. 여기서 한마디만 더 들으면 정말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어버릴 것만 같았다. 내 속마음을 읽기라도 한 걸까. 정희 씨는 콧방귀를 한번 '흥' 뀌더니 고개를 돌리며 툭 내뱉었다.


"댔다. 말해봐야 입만 아프지. 서 있지 말고 퍼뜩 들어와서 손부터 씻어라. 국 다 식는다 아이가. 니 안 오면 고등어조림 무가 다 물러터질 판이다."


나는 홀린 듯 화장실로 들어가 손을 씻었다. 거울 속엔 퀭한 눈의 사회초년생 하나가 서 있었다. 거실로 나오니 이미 식탁 위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과 뚝배기 가득 담긴 시래기국, 그리고 빨갛게 양념이 잘 밴 고등어조림이 차려져 있었다.


"무라. 딴 생각 하지 말고. 사람 배가 비어 있으니까 마음에도 바람이 드는 기다. 꽉꽉 채워 넣으란 말이다."


정희 씨는 내 밥그릇 위에 두툼한 고등어 살점을 툭 얹어주었다. 젓가락을 들자 손등 위로 뜨거운 눈물 한 방울이 툭 떨어졌다. 서러워서가 아니었다. 이 투박하고 거친 사투리 속에 숨겨진, 갓 지은 밥 같은 온기 때문이었다.


"와 우노? 고등어가 맵나? 가시 걸렸나? 가마 있어 봐라, 물 가져다주께!"


당황해서 펄쩍 뛰며 물컵을 찾아 허둥대는 정희 씨의 뒷모습을 보며,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어쩌면 이 연희동 단칸방에서 보내는 시간이 그리 춥지만은 않을지도 모르겠다고. 나는 눈물을 훔치며 밥 한 수저를 크게 입안으로 밀어 넣었다. 달큰한 무와 짭조름한 고등어 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살 것 같았다. 아니, 이제야 진짜 숨을 쉬는 것 같았다.

토, 일 연재